[김희봉의 삶의 향기] 베니스의 운하

입력시간 : 2019-03-29 10:20:00 , 최종수정 : 2019-04-02 16:15:43, 편집부 기자

 



기차는 정겨우면서도 약간 서럽다.  

 

중학을 졸업하던 , 난생처음 홀로 10시 보통급행을 타고 서울로 떠나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른다. 깊은 역사(驛舍)에 사람들은 오래 머물지 않았다. 결국 나는 혼자 힘겨운 짐을 끌고 낯선 열차에 올랐다. 그런데 떠나는 적적함을 밀치고 설레임이 몰려왔다. 미지의 세상에 대한 기대였다. 설레임을 불러일으킨 것이 우렁찬 기차의 기적 소리였다.  

 

로마의 '테르미니' 역은 옛 서울역을 연상케 했다. 인파들이 바닷물처럼 밀려오고 쓸려 나갔다. 낯선 유럽의 한가운데 서서 오랜만에 기적소리를 들었다. 정겨운 소리였다.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설레임이 다시 꿈틀거리며 되살아났다. 세계에서 제일 아름답다는 물의 도시, 베니스로 떠나는 기차. 깨끗이 정돈된 침대 속에 몸을 누이며, 서울행 기차의 기적소리를 생각했다.  

 

밤새 달린 기차는 새벽녘에 베니스 근교를 지나고 있다. 이탈리아 영화 철도원 배역을 연상시키는 호방한 여객 전무가 아침식사를 날라준다. 철도원 영화를 생각하면 로셀리니나 펠리니 같은 이탈리안 영화의 귀재들이 떠오른다. 이들은 네오리얼리즘의 기치를 들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 위해 사상이나 교양 등을 철저히 배제했었다. 전쟁의 충격 속에서 갈등하는 군상들이 소재였다. 그래서 이들의 영화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애처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배역들이 많았다. 의 젤소미나가 그랬고 철도원의 아버지도 그랬다. 인간 내면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유럽 여행 중 인간의 모습을 것은 의외로 신의 형상이 가득한 바티칸 성당에서였다. 시스틴 채플, 전면에 그려진 미켈란젤로의 대작, 최후의 심판 앞에서 나는 멈춰 섰다. 화면 속 수많은 군상들 가운데 인간의 모습 - 고뇌로 일그러진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쥔 채, 손가락 사이로 밖을 내다보는 겁에 질린 나상의 모습이었다. 신으로부터 구원받아야 타락한 인간을 부각한 미켈란젤로의 성화 속의 집념, 또한 인성을 회복하려는 르네상스의 예술혼이 담긴 이탈리아 영화 속의 갈등이 아직도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새삼 느끼는 것이었다.   

 

베니스는 아침 해를 받으며 물안개 속에서 피어나고 있었다. 아드리안 , 바닷바람을 맞으며 베니스 앞에 나갔을 , 정말 놀랍게도 포장로 대신 물이 찰랑거렸다. 선착장엔 바포레토라고 불리는 수상 버스와 곤돌라들이 능숙하게 사람들을 실어 날랐다. 베니스는 둘레 11Km 밖에 안되는 면적에, 120개나 되는 작은 섬들과 꼬불꼬불 170개의 운하들로 연결돼 있다고 했다. 13세기-15세기, 베니스는 막강했던 베네치아 공화국의 수도로 동서무역의 최대 항구였다. 그러나 희망봉을 도는 인도 항로의 발견과 터키의 세력 증대로 점차 쇠퇴하고 만 것이다.   

 

베니스의 중심은 마르코 성당이었다. 마가복음의 저자, 마가의 유해를 모신 . 9세기경 이집트에서 마가의 유해를 옮길 이슬람교도들의 반대에 부딪쳤다고 한다. 그때 상술 좋은 베니스인들은 기지를 발휘해 회교도들의 금기인 돼지고기를 관에 채워 몰래 통과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마르코 성당은 동양의 영향을 받은 비잔틴 건물로 세계 제일이라는 칭송을 받을 했다. 제일 천장엔 창세기부터 구약 이야기 전편이 황금빛 모자이크로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고 다른 4개의 돔 들엔 신약 이야기와 사도들의 모습들이 깨알같이 박힌 타일로 점철돼 있었다. 중앙 제단쪽의 팔라도로(Pala d'odo) 제단화도 10세기경 세공된 금장식과 수천 개의 보석이 박혀있는 부신 보물이었다.  

 

우리는 베니스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운하 (Grand Canal)' 바포레토로 지났다. S자를 거꾸로 같은 2km 길이의 중앙 통로다. 이곳 주위는 베니스의 노른자위로 1100년에서 1800 사이에 지어진 대리석 건축물들이 아직도 수려한 자태로 있었다. 15세기에 지어진 베네시안 고딕식의 황금 궁전(Ca'dOro), 작곡가 와그너가 살았던 르네상스식 칼레르기 궁전, 로마네스크에서 바로크식 건물들이 발목까지 찰랑찰랑 물에 차 있어도 수백 년을 용케 버텨내고 있었다. 사이사이, 명동 뒷골목같은 좁은 보도에 여행자들을 상대로 한 최고급 부티크 가게, 첨단 유행의 선물가게들이 즐비했다. 베니스의 상인, 후예들이었다.  

 

운하의 물은 비교적 깨끗했다. 들고나는 바닷물인데다 수년 , 운하 바닥에 고인 침전물을 걷어내 수질 상태가 한결 좋아진 듯했다. 한때는 근교 산업 지대의 개발로 지하수를 과다하게 퍼내 베니스의 지반이 매년 5mm 물속에 가라앉았다. 다행히 지하수 과용을 금지한 1975 이후 지반 침강이 멈췄다 한다.  

 

그러나 바다 곁에 있는 베니스에게 수난은 숙명적인 지도 모른다. 겨울 폭풍이 불면 바닷물이 밀려들어와 ' 마르코광장'을 포함한 시가가 홍수 사태를 겪는다고 했다. 1966년의 대홍수 , 박물관에 소장된 보물들과 그림들까지 손상을 입었다. 그러나 봄의 베니스는 따스한 낙원이었다.  

 

물안개에 잠긴 베니스를 깨울세라 우리는 새벽 일찍 떠났다. 이탈리아 영화 '종착역'에서 봤음직한 시계가 걸린 플랫폼을 뒤로하고 기차는 서서히 빠져나갔다. 떠남을 알리는 기적 소리는 예나 지금이나 약간은 서럽고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설레임을 안겨 주었다. ‘이탈리아의 진주 베니스는 이렇게 우리들 마음 깊이 각인되었다.  





[김희봉]

서울대 공대,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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