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연강의 인문으로 바라보는 세상] 가져갈 것은 많지 않습니다

신연강

편집부 기자

작성 2020.03.23 12:28 수정 2020.03.23 12:47




봄이 올 즈음 홍수가 왔습니다. 전에 없던 강력한 코로나바이러스가 지구를 뒤덮고, 우리 사회를 강타했습니다. 사람들은 바이러스가 일으킨 격류에 허우적거리며 쓸려가고, 가족을 떠나보낸 사람들은 망연자실 충격과 슬픔에 빠집니다.

 

영화에서나 봄직한 현실이 펼쳐지고, 거리는 사라마고(Jose Saramago)눈먼 자들의 도시처럼 황량하기 그지없습니다. 사람들 마음도 황폐해져서 알 수 없는 분노가 치솟아나고, 이유 있는 분노가 특정한 표적을 향해 꽂힙니다.

 

말수가 적어지고, 서로 대면하길 꺼리면서, 마스크를 한 얼굴은 마음의 벽을 쌓아갑니다. 세계화 속에 무너졌던 국경은 어느새 인의 장막을 치면서 견고한 성을 쌓고, 국가적. 인종적 혐오와 경계가 심화됩니다.

 

이 위급한 시국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이성을 잃지 않는 집단지성이 가동하고, 대중의 냉철함이 흔들리지 않고 원칙과 지침을 따르며, 의료방역 관련기관과 인력들이 사명감과 봉사정신으로 최선을 다해준다는 것입니다. 간혹 상혼으로 눈먼 자들이 있기는 하나, 대다수 시민이 각자의 몫을 감당하고 나눔과 배려의 마음을 가지는 것이 이 사회를 지탱하는 근간이 되고 있으니 참 다행이고 고마운 일입니다.

 

박쥐의 마음은 어떨까요? 이 작은 생명체가 이번 신종 바이러스의 발원지라고 하니,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는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말고도 이전의 사스, 메르스 등 여러 건의 사고를 친 이 개체는 정말 사람하고는 담을 쌓을 작정인가 봅니다. 작고 까만 얼굴에 못생긴 이를 드러내고 울 때의 그 모습이 결코 달갑지 않습니다. 몸체에 비해 특이한 큰 날개가 그나마 볼만 하지만, 이것 빼고는 뭐하나 인간에게 호감을 줄만한 것이 없기에, 박쥐의 설움은 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크게 사고를 쳤으니, 이제 박쥐와 인간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어느 경우든 이번처럼 죽음은 예기치 않게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재차 확인하면서, 한편으론 삶의 가치를 생각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세상 떠나는 일에 챙겨갈 것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개인적 죽음이든, 집단적 사망이든 간에, 인간이 세상을 떠남에 있어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까요. 만 원권 지폐 한 장 가져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육신입니다. 수조, 수천억, 아니 단 몇 백 만원이라도, 이승을 떠나는 길에 그런 것이 어떤 의미가 있겠습니까.

 

지난해 모친을 떠나보내면서 세속적 가치와 형식은 다 부수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살아서의 모든 형식과 절차, 손에 쥔 모든 것을 다 놓고 새처럼 가볍게 떠나는 것이 우리 삶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살아서는 먹고 살 만큼 있으면 되고(물론 100억일 수도, 10억일 수도, 또는 몇천 만원일수도 있고요,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 다를 것입니다), 죽으면서는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즐거운 기억과 기쁨만을 가져간다.”라고요. 하지만 돌아서면 또 금방 망각하는 것이 우리 인간이지요...

 

處陰以休影

 

처음이휴영(處陰以休影)이라 했습니다. “그늘에 들어야 그림자가 쉰다.”는 것이지요. 생명체가 바쁜 만큼, 그 그림자도 고되었을 것입니다. 자신을 따라다니던 그림자를 쉬게 하고 휴식을 취하게 하는 것이지요. 일평생 따라다니느라 고생했을 그림자를 이제 그만 놓아 쉬게 하고, 편안히 이승을 떠나시길 바랍니다.

 

한국의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서고 전 세계적으로 186개국에서 12천명을 넘어섰습니다. 홍수처럼 우리 사회를 쓸고 간 코로나바이러스에 희생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망자(亡者)를 황망히 떠나보내야 하는 많은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망자들이 이제 그림자를 내려놓고, 본시 가져갈 것이 많지 않은 우리 삶으로부터 가볍게 떠나시길 축원하면서.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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