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본연의 코스미안으로 복낙원 하리

이태상

가정의 달, 5월 5일 어린이날이 있는 5월에 동심을 동경한다. 라틴어로 ‘Finis Origine Pendet’란 말이 있다. 영어로는 ‘The beginning foretells the end.’ 우리말로는 ‘시작이 끝을 말해 준다’로 ‘시작이 반이 아니라 전부다’란 뜻이 되리라. 뉴욕타임스 일요판에 기고한 글 ‘우리가 애독하는 이야기들이 우리를 만든다.’란 제목의 글에서 필자인 인도계 영국 작가 살만 루슈디는 이렇게 글을 맺는다. 

 

“이 많은 모험담, 탐험담에서 영웅이 되는 건 어린아이들이다. 흔히 어른들을 위험에서 구조/구출/구제해 구하는 건 아이들이다. 우리 모두 어렸을 때의 우리 자신들, 어른이 된 지금도 우리 안에 있는 어린이들, 경이로운 세계를 이해하고 이 이야기들 스토리의 진실을 아는 아이들이 이 진실들을 잊어버린 어른들을 구원하는 아이들 말이다.” 

 

‘올재’의 홍정욱 대표의 말처럼 이 출판사는 저작권 문제가 없는 동양과 서양의 고전을 최대한 읽기 쉬운 한글 번역본과 누구나 갖고 싶은 멋스러운 디자인으로 출판하여, 대기업에서 후원을 받아 한 권당 2,000원에서 3,000원 대의 가격으로 대중에게 판매하고, 전체 발간 도서의 20%를 저소득층과 사회 소수계층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는 일종의 소셜 비즈니스 회사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교육제도는 해마다 바뀌고 여러 정책이 늘 제시되지만 정작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우리 사회의 가치관이다. 우리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이들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여러 동서양의 고전을 통해 지식을 살찌우고 지혜롭고 창의적인 사고를 하며 건강한 가치관을 정립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올재’를 설립했다.”

 

1970년과 2012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나의 달콤한 오렌지 나무’가 있다. 1968년 출간되어 브라질 초등학교 강독 교재로 사용됐고, 미국, 유럽 등에서도 널리 번역 소개되었으며, 전 세계 수십 개 국어로 출판되었다. 한국에서는 1978년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로 첫선을 보인 후 50여 곳 이상의 출판사에서 중복 출판되어 400만 부 이상이 팔린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2003년 ‘MBC 느낌표’에 선정되었고, 지금도 꾸준히 사랑 받고 있는 성장 소설의 고전이다. 

 

저자 바스콘셀로스는 1920년 리우데자네이로의 방구시에서 포르투갈계 아버지와 인디언계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권투선수, 바나나 농장 인부, 야간 업소 웨이터 등 고된 직업을 전전하며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이 모든 고생이 그가 작가가 되는 밑거름이 되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모든 나라에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모든 어린이들에게 바치는 ‘헌사’라고 할 만한 이 저자의 자전적 소설에서 독자는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다. 

 

극심한 가난과 무관심 속에서도 순수한 영혼과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여덟 살짜리 소년 제제가 티 없이 짜릿 풋풋한 눈물과 웃음을 선사한다. 장난꾸러기 제제가 동물과 식물 등 세상의 모든 사물과 자연 만물과 소통하면서 천사와 하나님이 따로 없음을 실감케 해 준다. 

 

바스콘셀로스는 이 작품을 단 12일 만에 썼지만 20여 년 동안 구상하면서 철저하게 체험을 바탕으로 했다고 한다. 한 권의 소설을 한 줄로 쓰는 것이 시라면, 마찬가지로 한 권의 자서전을 한 편의 단문으로 쓰는 게 에세이나 수필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뿐만 아니라 그림을 그리든 글을 쓰든 화가나 작가가 어떤 가치관을 갖고 어떤 색안경을 쓰고, 그리고 쓰느냐에 따라 그 내용이 판이해지듯 그림을 보고 글을 읽는 사람도 어떤 시각과 관점으로 보고 읽느냐에 따라 보고 읽는 내용이 전혀 달라지는 것이리라. 

 

그러니 동심의 눈으로 보면 모든 게 꽃 천지요 별세계다. 돌도 나무도, 벌레도 새도, 다 내 친구요 만물이 다 나이며, 모든 것이 하나이고, 어디나 다 놀이터 낙원이다. 이렇게 우리는 모두 요술쟁이 어린이로 태어나지 않았는가. 일찍이 중국 명나라 때 진보적 사상가인 이탁오는 그의 대표적 저술로 시와 산문 등을 모아 놓은 문집 ‘분서焚書’에서 말한다. 

 

“어린아이는 사람의 근본이며 동심은 마음의 근본이다. 동심은 순수한 진실이며 최초의 한 가지 본심이다. 만약 동심을 잃는다면 진심을 잃게 되며, 진심을 잃으면 참된 사람이 되는 것을 잃는 것이다.”

 

우리 윤동주의 동시를 읊어보자. 

 

반딧불

 

가자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 주우러 숲으로 가자

그믐달 반딧불은 

부서진 달 조각

가자가자 숲으로 가자

달 조각 주우려

 

소년 시절 나는 함석헌(1901-1989) 선생님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너무도 감명 깊게 읽고 분통이 터졌었다. 한국 역사의 흐름이 크게 잘못되기 시작한 것이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라 본 것이다. 고려말 1388년 (우왕 14년) 명나라 홍무제 주원장이 철령 이북의 영토는 원나라 영토였다는 이유로 반환하라는 요구에 맞서 최영 장군은 팔도 도통사, 조민수를 좌군 도통사, 이성계를 우군 도통사로 삼은 요동정벌군이 압록강 하류의 위화도까지 이르렀을 때 이성계가 개경으로 회군한 사건 말이다. 

 

2015년 ‘글씨에서 찾은 한국인의 DNA’란 책의 부제가 붙은 <어린아이 한국인>이 나왔다. 2009년 항일운동가와 친일파의 필적을 비교 분석한 책 <필적은 말한다>를 펴냈던 저자 구본진이 비석과 목간-방패-사리함 등 유물에 남아 있는 글씨체에서 우리 민족성의 본질을 찾아내는 <어린아이 한국인>을 출간한 것이다. 

 

“지금 한국인의 발목에는 격식과 체면과 겉치레라는 쇠사슬이 잘가당거리지만, 이는 오랜 중국화의 역사적 산물일 뿐, 원래 한민족은 인류 역사상 가장 네오토닉(유아기의 특징이 성년까지 남아 있는 현상)한 민족이었다”며 우리 민족은 자유분방하고 활력이 넘치면서 장난기가 가득한 ‘어린이 기질’을 갖고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우리 민족의 이런 ‘어린이스러움’은 고려시대 이후 중국의 영향으로 경직되었으나 19세기 이후 중국의 위상이 떨어지면서 부드럽고 자유로운 한민족 고유의 품성과 글씨체가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다. 저자는 향후 연구 과제도 제시한다. 중국 만리장성 외곽에서 발견된 ‘홍산문화’가 우리 민족과 관련된 문화일지 모른다는 주장인데, 그 근거 역시 글씨체다. 황하문명보다 1,000년 이상 앞선 홍산문화 유물에 남아 있는 글씨체가 고대 한민족의 글씨체와 유사하다면, 이야말로 세계역사를 바꿔놓을 단서임이 틀림없다. 

 

어떻든 이 ‘아이스러움’이란 우리 한민족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세계 인류 모든 인종과 민족에게 공통된 특성이 아닐까. 이 순수 하고 경이롭고 신비로운 ‘동심’을 갖고 우리 모두 태어나지만 타락한 어른들의 잘못된 세뇌교육과 악습으로 ‘아동낙원兒童樂園’을 잃는 ‘실낙원失樂園’의 비극이 시작되었어라.

 

 아, 그래서 나의 선친 이원규 李源圭(1890-1942)도 일제강점기에 손수 지으신 동요, 동시, 아동극본을 엮어 <아동낙원兒童樂園>이란 책을 500부 자비로 출판하셨는데 집에 남아 있던 단 한 권마저 6·25동란 때 분실되고 말았다. 아, 또 그래서 나도 딸 셋의 이름을 해아海兒(첫 아이로 ‘쌍둥이를 보고, 한 아이는 태양 ‘해’ 그리고 또 한 아이는 바다 ‘해海’로 작명했으나 조산아들이라 한 아이는 난 지 하루 만에 세상 떠나고), 수아秀兒, 그리고 성아星兒라 이름 지었다. 평생토록 젊음과 동심을 갖고 살아주기를 빌고 바라는 뜻에서다. 

 

간절히 빌고 바라건대 바다의 낭만과 하늘의 슬기와 별들의 꿈을 먹고 살라고. 이와 같은 기원과 염원에서 아이 ‘아兒’ 자字 돌림으로 한 것이다. 정녕코 복福이야 명命이야, 우리 모든 어른들도 어서 잃어버린 동심을 되찾아 우리 본연의 코스미안으로 ‘복낙원復樂園’ 하리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4.05.04 04:39 수정 2024.05.04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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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