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흉노는 아틸라의 훈제국을 끝으로 사라졌다
흉노는 어디에 있었으며 어떤 민족 국가인가는 대부분 모른다. 흉노는 기원전·후 대제국을 이루어 세계를 휘어잡은 패권 국가였다. 중앙아시아와 몽골고원을 둘러싼 기마 유목 민족으로 스키타이족, 위구르족, 동호족, 선비족. 거란족. 돌궐족. 여진족, 만주족 등 다양한 나라로 구성되어 있어서 역사 기록은 없고 다만 소수 흉노 소국의 역사만 있을 뿐이다.
고대 아시아는 유목제국과 중화제국의 대결이었다. 중국은 흉노와 수 세기 동안 숙명적인 대립으로 시달렸다. 그들을 흉악한 북방 유목민족이란 뜻으로 흉노라 불렀다. 흉노의 탄생은 산시성과 칭하이성, 내몽고를 기반으로 유목 생활을 하던 두만선우(왕)가 동호와 원지를 점령하고 강력한 기병대로 나라를 세웠다. 아들 묵돌선우는 흉노의 대제국을 만들어 한나라 역대 정부를 괴롭혔다. 국경인 황하의 오로도스에서 매년 충돌하여 한나라가 번번이 패했다.
흉노에 공녀로 간 왕소군의 불행한 말로
한은 전쟁에 진 보상으로 미인 왕소군을 흉노에 공녀로 보낸다. 그녀는 1대, 2대 아들, 3대 손자의 왕비가 된 불행한 여인이었다. 오르도스는 흉노와 한 제국의 충돌 지대였다. 천고마비, 하늘이 맑고 말이 살찌면 흉노가 쳐들어온다. 그리고 해마다 한나라는 오로도스에서 흉노의 침해를 받았다. 한 시조 유방은 산시성 백등산에서 대대적인 흉노 정벌전에 나갔다가 전사하였다. 흉노의 묵돌은 엄청난 보상금을 받아내고 미인을 조공으로 바치게 하였다. 묵돌은 과부가 된 여황후를 우롱하며 한나라를 가지고 놀았다.
그 후 한무제는 흉노에게 죽임을 당한 시조 왕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흉노와 전쟁을 시도했지만, 여지없이 패하여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다. 한은 천하절색 왕소군을 흉노의 허려건 선우(왕)의 왕비로 선사하였다. 허려건 선우는 한나라에서 조공으로 받은 미인 왕소군을 사랑했다. 둘 사이에서 2명의 자식을 낳고 한나라로 돌아가지 못했다. 허려건이 죽자 취수 혼 의식에 따라 아들인 호한야의 왕후가 된다. 그는 어머니를 왕후로 맞는다. 호한야 왕과 왕소군 사이에 두 딸을 낳는다. 호한야가 죽은 후 왕소군은 후계인 손자 복주루 선우의 왕비가 되어 아들을 낳는다. 그녀는 3대 왕의 후궁으로 5명의 자식을 낳아 할머니, 어머니, 아내 신분으로 불행한 인생을 살았으나 끝내 한나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오로도스에서 죽음을 맞았다.
흉노의 멸망과 고구려의 패권
BC 201년 몽골고원에 살던 두만 선우(왕)가 창하이성에서 흉노를 건국하고 BC 174년 아들 목돌(모돈)은 아버지 두만의 목을 치고 정권을 잡은 후 북만주 동호를 점령하고 중앙아시아의 원지와 중원의 오환을 정복하여 북아시아에서 대제국을 건국하였다. 그렇게 번성하던 흉노도 제13대 선비의 호리견 선우 때 5명의 선우가 본국, 동·서·남·북국으로 분리 통치하였다. 호리견 선우는 고구려의 주몽의 누나 고실을 황후로 맞았다. 둘 사이에 질지와 호한야 왕자가 태어났다. 동생 호한야가 본 흉노를 이어받았으나 형 질지가 반란을 일으켜 동·서·남·북을 치고 서흉노로 통일한다. 동생 호한야는 한나라(한무제)와 BC 146년 동맹을 맺고 질지의 서흉노를 공격하여 멸망시키고 호한야 선우가 흉노제국의 맹주가 된다. 동명왕 주몽의 조카였다.
흉노가 서쪽으로 간 이유는?
흉노는 호한야의 남흉노와 질지의 북흉노로 양분되고 번창하였고 서흉노(돌궐)는 코카서스로 가서 튀르키예 민족으로 정착하였고 동흉노는 중국 남방에서 소수민족으로 전락하였다. 북흉노(질지 후손)는 몽고에서 유연이란 나라로 번창하였고 남흉노(호한야 후손)는 선비. 오한. 고조선으로 400년 문명을 이룩하였다.
그런데 후한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개마무사 기마병을 흡수하여 북흉노 유연을 공격하였다. 후한의 장수 곽거병과 위청은 남흉노의 호한야 후손과 손잡고 북흉노를 친다. 마침내 북흉노는 멸망하였다.
고조선의 여인들이 한나라를 뒤흔들다. 고실과 위자부였다. 위자부는 고조선 여인으로 한무제의 후궁이 되어 막강한 실력을 발휘하여 빼앗은 고조선에 동생 위만을 보내 위만 조선을 만들고 형인 위청을 대장군으로 만들어 곽거병 장수와 같이 북흉노 유연을 멸망시킨다. 전쟁에 패한 질지의 후예 북흉노는 알타이산맥 넘어 중앙아시아 스키타이 아랄로 가서 유목민족으로 번창한다. 그들의 후손 울딘 발라미르 추장은 아랄 초원에서 훈이란 나라를 건국하였다.
4~5세기 동북아 패권은 후한(後漢)과 고구려(高句麗)였다
4세기 북흉노 질지 선우의 후예인 대제국 유연이 후한과 선비족(고구려)이 연합 한 전쟁에서 패하여 카시피해 아랄로 떠나고 끝내 동북아시아는 후한과 고구려의 맞대결 장이 되었다. 5세기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동북아를 평정하고 후한을 위협하였다. 황하의 오로도스는 후한과 고구려의 대결장이 되었다. 광개토대왕은 방대한 영토를 만들고 사후 장남(고거련)은 왕위를 승계받아(장수왕) 동북아를 호령하는 대 고구려 제국을 만들어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패권국이 되었다. 중앙아시아 아랄에서 유목민 추장 발라미르가 고구려 광개토대왕을 찾아온다.
“대왕, 저의 조상은 고구려 고실 공주의 아들인 질지 후손이니 고구려완 형제입니다. 제가 유럽으로 발판을 넓히려고 하는데 강력한 기병이 필요합니다. 고구려 개마무사 기병대을 주십시오.”
“우린 형제 질지와 호한야의 후손이니 형제로다. 그대에게 의용병을 보내겠다.”
이렇게 약속했다. 광개토대왕 사후 장수왕은 동생인 고거평을 불렀다.
“왕자는 개마무사 기병 2,000명을 이끌고 카스피 아랄로 가라. 발라미르를 도와 대제국을 건설하라.”
그렇게 차남(고거평)은 천하무적의 고구려 개마무사 기병을 이끌고 알타이 넘어 아랄로 갔다. 추장 발라미르와 고거평은 알타이의 유목민을 통합하여 유목국가를 만든다. 고구려 개마무사 기병장 고거평은 아틸라란 이름을 바꾸고 발라미르와 같이 훈국을 건설하고 유럽에 등장한다. 라인강. 도우나우강 드네프로를 넘어 헝가리에서 훈제국을 만들고 로마를 위협한다.
훈제국 아틸라는 누구인가
광개토대왕의 차남이다. 고구려 동명성왕 고주몽의 큰 누이 고실은 흉노의 허려건 선우(왕)의 왕후로 두 아들 질지와 호한야를 낳았다. 질지의 북흉노 유연이 한나라에 망하고 발라미르가 남은 군사를 이끌고 서역으로 떠난다. 발라미르는 유목국가를 만들고 조상 할머니 나라 고구려에 원병을 청하고 광개토대왕은 차남 고거평을 앞세워 기마병 2,000명을 보내 훈국을 건설한다. 고거평 왕자는 아틸라란 이름으로 바꾸고 고구려 개마무사 기병대를 앞세워 훈국을 세우고 우랄, 돈강, 라인강, 도나우강으로 진출하여 헝가리에서 로마와 맞서는 훈제국을 만든다.
아틸라는 로마뿐 아니라 전 유럽을 공포에 떨게 한 장수였다. 그는 신의 채찍을 들고 도나우강을 점령하여 게르만 민족을 이동시키고 그 땅에 유럽의 새로운 군주로 우뚝 섰다. 마침내 아틸라(고거평)는 동로마를 멸망시키고 서로마 콘스탄틴노풀을 공략하여 조공을 받아낸다. 고구려 개마무사 기병대는 로마 기병대를 압도했다. 그는 끈질기게 로마를 괴롭힌다. 그러나 서로마는 대 연합군을 만들어 훈제국을 공략한다. 불행하게도 아틸라는 전쟁 중에 적이 숨겨논 자객에게 살해당하고 훈제국은 로마 제패의 꿈을 접고 56년 만에 역사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로마와 한나라는 그들의 없애버리고 아틸라의 훈제국은 헝가리와 불가리아 역사 속에 살아남았다.
세계를 다스린 흉노의 영웅들
흉노의 후예들이 세계사의 주역이 된 영웅들이 많았다. 흉노의 2대왕 묵돌의 후예들이다. 묵돌이 흉노제국을 만들었고. 돌궐의 부민칸은 투르크멘 셀즈크. 오스만 제국을 이룩했고, 그리고 선비의 단설(단군), 유연의 사륜칸, 거란의 야율야보기, 몽골의 징기스칸, 인도의 티모르, 금나라의 아골타, 청나라의 누르하치는 흉노의 후예로 아세아를 주름잡던 황제들이다. 흉노는 아니지만 같은 혈통의 고구려의 광개토대왕은 5세기 누구도 범하지 못한 동북아를 휘어잡은 영웅이었다.
[김용필]
KBS 교육방송극작가
한국소설가협회 감사
한국문인협회 이사
한국문인협회 마포지부 회장
문공부 우수도서선정(화엄경)
한국소설작가상(대하소설-연해주 전5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