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한 사람에 대한 사랑

고석근

그러니까 우리는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해. 금지된 일들을 한 번도 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악당일 수 있어. 그 반대도 가능하고, 대개는 그저 편의상의 문제인 거야! 게으르고 생각하기 싫어하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복종해 버려. 그편이 쉬우니까 

 

- 헤르만 헤세, 『데미안』에서

 

 

나는 대학 시절 철학자의 꿈을 꿨다. 철학자가 되어 ‘이상사회(理想社會)’라는 불후의 명저를 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아마 플라톤의 ‘국가론’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을 것이다. ‘이상사회의 이론대로 사회를 건설하기만 하면, 이 세상은 지상낙원이 될 거야!’

 

하지만, 대학원에 진학할 학비가 없었다. 나는 철인(哲人)의 꿈을 안고 교사 생활을 했다. 그러다 나는 나의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1988년 봄이었다. 대학 후배 ㅊ이 나를 찾아왔다.

 

“교사 모임이 있는데 한 번 가보겠어요?” 

 

나는 그를 따라 인천에 있는 한 성당에 갔다. 화사하게 웃는 교사들, ‘도깨비 빤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그 후 나는 교사 공부 모임에 들어갔다. 함께 공부하고, 근처의 순댓국집에서 뒤풀이했다. 우리의 모임은 후에 지역의 교사협의회로 발전했다. 전국교사협의회가 구성되고 다음 해에는 전교조(전국교직원노동조합)를 결성하게 되었다.

 

나는 그때 경이로운 경험을 했다. 참교육을 알게 되면서, 학생 한 명 한 명이 눈에 들어왔다. 그전에는 한 학생이 결석하면, ‘결석 1’이었다. 숫자 1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1이 한 인간으로 보일 때, 기적이 일어났다.

 

한 학생의 아픔이 보이고 그 학생을 둘러싼 그의 가족들, 친구들, 이 세상, 삼라만상이 보이게 되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말했다. 

 

“온 인류를 사랑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내 곁의 이웃 한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

 

그렇다. 나는 온 인류를 사랑했다. 사바세계(娑婆世界)에서 인류를 구원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상사회를 구상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추상화된 인간밖에 없었다. 피와 살이 있는 인간은 없었다. 한 인간의 아픔은 없었다. 나의 인류애는 진심이었을까? 노르웨이의 작가 입센은 말했다. 

 

“한 사람도 사랑해 보지 않았던 사람은 인류를 사랑하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허공에 둥둥 떠 있는 나의 관념론에 진저리를 쳤다. 나는 비로소 허공에서 내려와 지상에 발을 굳게 딛게 되었다. 나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나를 느꼈다. 신화학자 조셉 캠벨은 말했다. 

 

“삶은 의미가 아니라 살아 있음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는 대심문관이 나온다. 그는 지상에 나타난 예수에게 말한다.

 

“대다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지상의 빵’이지 ‘천상의 빵’이 아니며, 당신이 가르친 영혼의 자유는 양심의 고통만 더 해줄 뿐이다. 인간은 무력하고 비열한 족속이므로 차라리 노예 상태에 남겨진 채 단순한 물질적 만족만을 보장받는 편이 낫다.”

 

그러자 예수는 조용히 그에게 다가가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당황한 대심문관은 예수에게 어서 지상을 떠나 달라고 부탁을 했다. 대심문관의 눈에는 구체적인 한 인간이 보이지 않는다, 추상화된 인간이 보일 뿐이다.

 

그가 구체적인 한 인간을 사랑했다면, 그 한 인간이 천상의 빵이 아닌 지상을 빵을 원하는 것에 대해 깊은 슬픔과 사랑을 느꼈을 것이다. 큰 도시에서는 인간은 익명(匿名)이 된다. 이름이 사라진 인간은 향기를 잃어버리게 된다.

 

대심문관이 진정으로 예수를 믿었다면, 익명이 되어 있는 신도들의 이름을 불러 모두 꽃이 되게 했을 것이다. 예수의 정신은 길 잃은 한 마리의 양을 찾아가는 것이니까. 현대사회에서는 공공연히 공리주의(公理主義)를 내세운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그럼 최소의 소수는 어떻게 되는가? 소수를 제외하고서 다수가 행복할 수 있을까? 천지자연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현대 양자물리학에서는 천지자연을 하나의 에너지장으로 본다.

나는 전교조 활동을 하며 ‘주인의 삶’을 알게 되었다. 그러자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사랑이 피어났다. 중국의 임제 선사는 말했다.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 어디에 있건 주인이 되어라. 그러면 그곳에서 진리가 드러난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가르쳐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주인의 삶을 살아라!’

 

“그러니까 우리는 ‘허락된 것’과 ‘금지된 것’을 스스로 알아내야 해. (...) 게으르고 생각하기 싫어하고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그냥 복종해버려. 그 편이 쉬우니까.” 

 

주인의 삶을 살지 않을 때, 우리는 온갖 망상에 빠지게 된다. ‘이웃 사랑, 애국, 인류애’라는 최면에 걸려 한평생 악몽을 꾸게 된다.

 

 

  만약 내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다면,

 나 헛되이 사는 것은 아니리.

 

 - 에밀리 디킨슨, <만약 내가> 부분

 

 

우리가 한 사람의 가슴앓이를 멈추게 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의 가슴에 들어가 본 사람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 삼라만상을 다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세상의 비의(秘義)를 다 알게 될 것이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제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daum.net

 

작성 2024.05.02 11:34 수정 2024.05.02 1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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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