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역사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1592년 4월 15일(음력)

이순신 씀 / 윤헌식 주해

사진=코스미안뉴스


1592년 4월

15(갑진) 맑았다. 나라의 제삿날1)이라 업무를 보지 않았다. 순찰사 [이광]에게 [보낼] 답장과 별록을 써서 곧바로 역자2)로 하여금 급히 보냈다. 해 질 무렵에 온 영남우수사3)의 전통4) 중에 왜선 90여 척이 나와서 부산 앞 절영도에 정박했다고 하였다. 또한 이와 동시에 수사5)의 공문도 왔는데 왜적 350여 척이 이미 부산포 건너편에 도착했다.”고 하였기에 곧바로 계문을 쓰고 아울러 순찰사 [이광], [전라]병사 [최원], [전라]우수사 [이억기]에게 공문을 보냈다. 영남방백 [김수]의 공문도 왔는데 이와 같았다.

[]

1) 성종 비 공혜왕후(恭惠王后)의 제삿날이다.

2) 역자(驛子)는 역에서 말의 관리, 문서 운송 등의 신역(身役)을 담당하였다. 경국대전병전-역마(驛馬)에 의하면 긴급한 군사정보의 전달 등에는 역마가 이용되었다.

3) 당시의 경상우수사는 원균(元均)이다. 그의 자는 평중(平仲), 본관은 원주(原州), 생몰년은 1540~1597년이다.

4) 원문 傳通전달하다’, ‘전달문서등의 의미를 가지며, 공문, 봉화, 구두(口頭) 등의 제반 수단에 의한 의사 전달을 가리킨다.

5) 경상좌수사 박홍(朴泓)으로 서술한 경우가 많지만 임진장초인왜경대변장(因倭警待變狀)(1592415)에서 경상우수사 원균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임진장초와 이날 일기의 기록은 전반적으로 일치하지만, 임진장초에는 왜선의 척 수가 350여 척이 아닌 150여 척으로 기록되어 있다.

[원문] 十五日甲辰 晴 以國忌不坐 修廵使答簡及別錄 即令驛子馳送 日沒時 嶺南右水使傳通內 倭船九十餘出來 釜山前絶影島駐泊 一時又到水使關 倭賊三百五十餘隻 已到釜山浦越邊云 故即刻馳啓 兼移廵使兵使右水使䖏. 嶺南方伯關 亦到如是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5.26 11:27 수정 2021.05.2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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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