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행복의 조건

이태상

‘부조리의 연극’이라 불리는 극작품들이 있다. 1950년대와 1960년대 초 유럽과 미국 극작가들의 작품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말 그대로 인생의 부조리를 극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연극의 기능이고 작업이란 뜻이다. 

 

이 ‘부조리’라는 실존주의 철학 용어로써 사용되는 단어는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부조리 철학에 의해 알려진 것으로 인생에서 삶의 의의를 찾을 희망이 전혀 없는 한계 상황적, 절망 상황을 가리키는 데 쓰인다. 산다는 것이 부조리하다는 생각은 1942년 카뮈의 에세이 ‘시지프스의 신화’가 발표되면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 에세이에서 카뮈는 말한다. 

 

신(神)들은 시지프스에게 쉴 사이 없이 바위를 산꼭대기까지 굴려 올리는 형벌을 가하였다. 산꼭대기에 이르면, 바위는 그 자체의 무게로 말미암아 또다시 산 아래로 굴러떨어지고 마는 것이었다. 그가 이렇게 무익하고도 끝날 가망이 없는 노동이란 무섭고 끔찍한 형벌을 받게 된 것이 신들을 경시한 그의 태도와 행위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것이다. 시지프스가 부조리의 영웅임을 이만하면 알 수 있으리라. 그의 고뇌뿐만 아니라 그의 정열로 인해 그는 부조리의 영웅된 것이다. 신들에 대한 그의 도전, 죽음에 대한 그의 반발, 생명에 대한 그의 애착과 열정이 결단코 성취될 수 없는 일에 그의 온 힘과 전 존재를 다 바쳐 일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이 절망적인 형벌을 그는 초래한 것이다. 

 

이상과 같이 세상이 부조리하다고 정의하는 것은 인생이 본질적으로 신비하고 풀 수 없는 수수께끼 같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고 이와 같은 인식은 삶의 방향과 목적과 의욕을 상실하는 데서 오는 당혹감에서 출발한다. 이 같은 인간실존의 부조리성을 다룬 작품으로 아일랜드 출신이면서 프랑스 파리에 거주한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가 있다. 

 

‘고도(Godot)’란 누구일까? 1952년 발표되어 그다음 해 1953년 파리에서 프랑스어로 무대에 오른 이후 세계 각국에서 여러 나라말로 거듭 상연되어온 이 극작품에는 에스트라곤과 블라디미르라는 두 부랑자가 등장한다. 이들은 고도라는 이름의 신비스런 인물을 끝없이 기다리면서 이렇다 저렇다 다투고 있다. 

 

그가 올 예정된 시간과 장소가 어느 때 어느 곳 언제 어디라고 서로 질세라 우겨대면서 이들은 재치문답의 말장난을 하며 놀고 있다. 2막으로 된 이 연극의 각 막이 끝나 갈 무렵 한 소년이 나타나 고도의 왕림, 도래가 임박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그는 오지 않고 제1막, 제2막 다 두 부랑자의 다음과 같은 대사로 막이 내린다.

 

“자, 이제 우리 갈까?”

“그러지, 이제 우리 가세.”

 

그러나 둘 다 움직이지 않는다. 동정과 연민, 희망과 기지가 가미된 인간의 무지와 착각 때문에 생기는 무기력한 마비 상태가 상징적으로 설득력 있게 잘 묘사되고 있다. ‘고도’란 ‘신(God)’의 지소사인 ‘Godot’임이 분명하지만 어쩌면 신(神)이라는 ‘God’와 바보라는 ‘idiot’란 두 단어를 복합한 합성어 ‘고도(Godot)’를 통해 어리석은 인간의 허망허탄(虛妄虛誕)한 허탕을 꼬집고 인간의 참된 구원과 행복의 조건은 외재하는 것이 아니고 내재하는 것임을 암시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시지프의 신화’에서와 같이. 행복이란 누가 갖다 주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만들어 누리는 것임을.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6.01.31 10:11 수정 2026.01.31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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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