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끝나고 나서 전란에 참전했던 동양 3국 중 명은 멸망했고, 일본은 정권이 바뀌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은 망하지 않고 정권이 유지되었다. 『인조의 나라』는 독자들에게 적어도 두 가지의 질문을 던진다. ‘주자학은 조선후기를 어떻게 망쳤나?’ 하는 것과 ‘주자학이 망친 조선후기를 지금 우리는 제대로 극복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앞의 질문을 이 책의 부제로 삼고 있다면, 뒤의 질문은 이 책이 지향해야 할 목표이자 이정표에 대한 희망을 묻고 있는 셈이다.
인조반정이라는 정변(政變)으로 시작된 인조의 나라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라는 일본과의 7년 전쟁에 대한 전후복구는커녕 오히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이라는 청 나라의 침략을 자초하고 말았다. 명나라를 숭배하고 금 나라를 배척하는 외교적 기조 속에 적(敵)을 눈앞에 두고 남한산성에서 벌어진 척화파(斥和派) 김상헌과 주화파(主和派) 최명길의 다툼은 『남한산성』이라는 영화에서도 볼 수 있듯이 공리공론의 극치를 이룬다.
주자학의 사고 체계와 이기주의의 왕권이 결탁한 조선후기는 왜곡과 아집과 파탄의 역사를 기록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은 쇄국을 고집하는 위정척사(衛正斥邪)라는 이름의 고질병에 스스로 유폐된 채 한일합방를 맞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인조의 정변 이후 조선이 망할 때까지 예외 없이 인조의 후손들이 왕권을 차지했다는 사실은 별로 이상할 것도 없지만, 조선후기가 변화와 개혁의 기회를 한 번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고사(枯死) 상태로 망국의 길로 접어들었다는 사실은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조선후기, 나아가 주자학이 지배했던 조선이라는 나라를 극복할 수 있을까?
오늘날의 우리나라 정세는 여전히 이념과 지역과 세대 간의 대립과 갈등을 겪고 있는데, 이것이 어쩌면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조선후기 상황의 연장선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흔히 ‘내로남불’이라는 말로 특징지어지는 지금의 사회 지도층도 걸핏하면 ‘사문난적’을 입에 올리던 당시의 사회 지도층처럼 무책임하고 이기적이라는 점에서 주자학의 탁상공론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정민 기자 jhlbsl@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