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연재] 역사자료로 보는 난중일기

1592년 5월 29일(음력)

이순신 씀 / 윤헌식 주해

사진=코스미안뉴스


1592년 5월

29(무자) 맑았다. [전라]우수사 [이억기]가 오지 않으므로 혼자 여러 장수들을 이끌고 새벽에 출발하여 곧장 노량1)에 이르니 경상우수사 [원균]이 약속한 곳으로 와서 모여 그와 서로 의논하였다. 왜적이 정박한 곳을 물었더니 적의 무리는 지금 사천2) 선창3)에 있다.”고 하기에 바로 그곳으로 갔더니 왜인들이 이미 육지에 내려서 봉우리 위에 진을 치고 그 배들은 봉우리 아래에 줄지어 정박하였는데 빠르고 굳게 항전하였다. 나는 여러 장수들을 독려4)하여 한꺼번에 돌진하며 화살을 빗발치듯 쏘아대고 각종 총통을 바람과 우레처럼 어지럽게 퍼부으니 적의 무리가 두려워하며 물러났다. 화살을 맞은 자가 몇 백 명인지 알 수 없었고 왜적의 머리도 많이 베었다. 군관 나대용이 탄환을 맞았고 나도 왼쪽 어깨 위에 탄환을 맞아 등으로 뚫고 나갔지만 중상에 이르지는 않았다. 사부와 격군5) 중에도 탄환을 맞은 자가 많았다. [적선] 13척을 불태우고 물러나왔다.


[]

1) 지금의 경남 하동군 금남면 노량리와 경남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사이의 해협을 가리킨다.

2) 지금의 경남 사천시 사천읍, 사남면, 정동면, 용현면 일대이다.

3) 지금의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에 있었던 것으로 비정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7호 사천선진리왜성(泗川船津里倭城)이 있다.

4) 원문 督令의 용례를 선조실록에서 찾아보면 명령으로써 독촉한다는 의미이다.

5) 원문 射格은 활 쏘는 군사인 사부(射夫)와 노 젓는 군사인 격군(格軍)을 가리킨다.


[원문] 二十九日 晴 右水使不來 獨率諸將 曉發直到露梁 則慶尙右水使來会約處 与之相議 問賊倭所泊處 則賊徒今在泗川船倉云 故直指同處 則倭人已爲下陸 結陣峯上 泊列其船于峯下 拒戰急固 余督令諸將 一時馳突 射矢如雨 放各樣銃筒 乱如風雷 賊徒畏退 逢箭者不知幾百數 多斬倭頭 軍官羅大用中丸 余亦左肩上中丸 貫于背 而不至重傷 射格之中丸者亦多 焚滅十三隻 退駐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7.08 17:26 수정 2021.07.08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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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