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전명희 [기자에게 문의하기] /
1592년
3일(신묘) 맑았다. 아침에 다시 여러 장수들을 격려하여 개도1)를 협공하니 [왜적들이] 이미 달아나 사방에 남은 무리가 없었다. 고성 등지로 가보고 싶었으나 병력이 외롭고 약하므로 울분을 느끼며 머물러 숙박을 하였다.2)
[주]
1) 『임진장초』의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狀)」(1592년 6월 14일)에는 이날 ‘추도(楸島)를 향하여 출발하여 근처의 섬들을 협공 및 수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개도(介島)는 추도를 포함한 그 일대의 섬들을 함께 일컫는 것으로 생각된다. 추도는 지금의 경남 통영시 산양읍 추도리의 추도이다.
2) 이 문장 뒤의 원문 ‘水使領…翌宿于’는, 초고본을 살펴보면 그 내용의 일부가 삭제 표시가 되어있고 대부분의 내용이 다음날의 일기와 중복되기 때문에 일기를 교정하다가 그만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부분은 번역을 하지 않았다.
[원문] 初三日 晴 朝更勵諸將 挾攻介島 則已爲奔潰 四無餘類 欲徃固城等地 則兵勢孤弱 憤欝之際 留宿 水使領舟師縣帆而來 將士無不踴躍 合兵約束 翌宿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