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八月)은 꿈을 키우는 계절, 꿈이 익는 시간이다. 뜨거운 햇볕을 받으며 구름은 뭉게뭉게 몸을 불린다. 한껏 부풀었다 한순간 사납고 맹렬한 소나기가 되어 지상에 내리꽂힌다.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매미 또한 꿈을 키워왔다. 언젠가는 땅 위에서, 싱그러운 나뭇잎에 매달려 원 없이 울어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흑암의 시간을 견뎌왔을 것이다.
7년의 꿈, 아니 더해서 17년의 기다림도 있다. 얼마 전 마이크 앞에 선 조 바이든(Joe Biden) 미국 대통령을 소스라치게 만든 생명체. 보통의 매미와는 달리 17년이란 시간을 기다렸다가 미국 전역을 휩쓴 이 몹쓸 개체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막무가내로 덤벼든다. 33년 기다림의 대선배 조 바이든(1988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처음 참여한 이후, 직전 47대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 소요된 시간은 33년이다)을 ‘나 몰라라’ 하면서…. 오랜 기다림이 선의를 펼치지 못하는 인식 불가능한 생명체의 아쉬운 종말이니 가볍게 웃을 수밖에.
구름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매미의 울음처럼 귀에 들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눈에 띄지 않는 씨앗의 기다림은 더욱 간절한 것. 드러나지 않는 들판의 한적한 곳에서, 심산유곡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씨앗은 바람을 타고 흙이 날라온 이불을 덮고 오랜 시간을 참고 기다린다. 이후에도 조용하고 지난한 기다림을 거쳐 마침내 한 포기의 풀로, 한 줄기의 나무로 성장할 테니 말이다. 그런 기다림에는 못 미치더라도, 생각을 잇고, 생각에 생각을 덧대고, 다시 생각의 씨앗을 뿌려온 글들이 이제 하나의 몸을 빌려 세상에 나오는 팔월.
글쓰기의 과정, 나아가 출판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나, 책이 한껏 치장하고 세상에 나왔다. 과하지도 않고 모자라지도 않게. 오랜 시간 동안 제법 많은 땀을 머금으면서, 이제 옷을 입고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아쉬움이 없지는 않으나, 나름으로 소박하고 안정된 모습에 안도하고 위안을 받는다. 바람은 이제 필자의 손을 떠난 그 책이 낮은 곳으로 내려가 많은 사람의 손을 탔으면 하는 것이다. 밥 한 끼 비용으로 정신의 양식이 되어주고, 낯선 곳 모르는 이에게 다가가 친구가 돼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래전 썼던 글의 한 구절, 인용했던 한 구절이 생각난다. ‘저마다의 운명으로’라는 칼럼에서 “독자의 능력에 따라 책들은 운명을 달리한다(Pro captu lectoris habent fata sua libelli)”는 표현을 차용했었다. 어떤 사연을 갖고 어떠한 우여곡절 끝에 세상에 나온 책일 지라도, 저자의 손을 떠난 책은 나름의 평가를 받게 마련이다. 책이 감당해야 할 무게. 책을 내어놓으며 제대로 읽혔으면 하는 범부의 마음은 다를 바 없다. 늘 생각하듯, 책이 글의 무게로 평가받는다면 그 책은 책으로서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니 필자로서는 한없이 기쁜 일이다. 반면 책이 종이 무게로 평가받는다면, 책은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는 것이니 필자 또한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매미의 떠나갈 듯한 울음이 인고의 세월을 견디고 난 기쁨의 노래인지, 한 달간의 짧은 생을 아쉬워하는 슬픔의 노래인지 알 길이 없다. 배송된 책을 책상 위에 펼쳐놓으며, 한껏 무더운 여름에 태어난 아이를 생각한다. “사람들이 뜨거운 도심을 피해 푸른 바다로 향할 때, 너는 여행 가방 한구석에 실려 가면 좋겠다. 번잡한 도심을 연결하는 고속철과 전철 안에서 너는 승객들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는, 그래서 잠깐 열어보다가 단잠을 초래하는, 쉼터가 되어주려무나. 메마른 현실에서 갈증 나는 목을 적셔주는 시원한 청량제가 되어주려무나.”
초 대
밤길을 걸어와
여명을 바라보다
세상을 듣고 떠나는 아이
시리고 살가운 꿈,
함께 가려 합니다
중 략-
몇 개의 산을 넘었는지
어떻게 강을 건넜는지 알 수 없지만
싱그러운 잎으로 온 아이가,
태어나지 않은 생명을 초대하는
향기로운 노래로
그렇게 아이가 온다.
신연강, 「초대」 부분
팔월은 뭉게구름이 되어, 가슴 벅찬 매미의 울음이 되어, 그렇게 온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소박한 얼굴로 온 책. 팔월의 꿈은, 또 그렇게 영글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