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봉 칼럼] 뛰모와 기모

김희봉

 

얼마 전, 한국 일간 신문에 실린 어머니의 조건이란 글을 가가대소(可可大笑))하며 읽었다. 요즘 한국 어머니들을 풍자적으로 분류했는데 그것들은 밀모’(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식을 팍팍 밀어붙이는 엄마), ‘뛰모’(자녀와 예습 복습하며 함께 뛰는 엄마), ‘지모’(공부하는 아이를 옆에서 지켜주는 엄마). 그리고 주모’(아이 공부와 상관없이 주무시는 엄마)등이었다. 아내는 이 글을 일고 얼굴을 붉히며 자기는 주모에 가깝지만, 그래도 자기 전에 아이들을 위해 늘 기도하는 축이니 기모로 분류함이 옳다고 했다.

 

신혼 초, 아내가 큰아이 시몬을 가졌을 때 우리는 유학생 단칸방에 더부살이하듯 살았다. 호수가 많기로 유명한 미네소타주, 램지 카운티병원에서 처음 검진받던 날, 의사는 가난한 아시아 땅에서 막 수입한 듯한 우리 부부를 아래위로 훑어보더니 넌지시 낙태를 권하였다. 나는 학생신분으로 아직 밥벌이도 제대로 못 하는 가장이란 자격지심에 반승낙 조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평소 숫기가 없어 외국인만 보면 내 등뒤에 숨던 아내가 갑자기 나를 밀치고 나서며 (No)!”하고 단호하게 외치는 것이었다.

 

큰아이가 태어났을 때, 나는 놀라운 창조의 신비를 담은 그의 영롱한 눈망울을 내심 부끄러워 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는 당당히 시몬 엄마로 불리길 즐거워했는데, 벌써 그때부터 녀석은 심성이 제 엄마를 많이 닮아 있었다. 큰아이는 없는 우리 형편을 헤아리기라도 하듯, 병원 신세 한번 안 지고 튼튼하게 자라주었다.


이젠 그 아이가 벌써 고등학교 졸업반이 되어 최근 대학입학 합격통지를 받았다. 예일대와 스탠퍼드, 버클리대와 노스웨스턴대, 네 대학을 놓고 고민하다가, 7년 만에 의과대학을 마칠 수 있는 특혜가 주어지는 노스웨스턴대로 정하였다. 기도하고 쿨쿨 자는 기모옆에서도 내내 깨어서 공부하더니, 전국에서 40명만 뽑는 의대 특별프로그램을 제 손으로 골라서 들어갔다.

 

"어머니, 아버지의 기도 덕분입니다." 하며 부모들이 어디 가서 자기 자랑을 하면 질색하는 아이. 밤늦게 공부하다 제 동생의 차버린 이불을 덮어주고, 엄마, 아빠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고 잠드는 속 깊은 아이. 그를 볼 때마다 내 좁은 소견 때문에 하마터면 놓칠 뻔한 귀한 열매를 주신 조물주께 무릎 꿇을 수밖에 없다.

     

그러함에도 나는 자식에 대한 욕심이 지나친 이민 1세 특유의 옹졸함을 아직도 벗지 못해 부끄러울 때가 많다. 얼마 전, 미 전역에 선풍적인 인기를 모은 소설 조이럭 클럽 (The Joy Luck Club)”을 쓴 중국계 2세 작가, 에이미 탠의 자기 어머니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읽으며,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얼굴이 뜨거웠다. “조이럭 클럽이 전국 베스트셀러에 당당 3위로 오르자 모처럼 칭찬을 기대했던 딸에게 어머니는 미간을 찌푸리며, "얘야, 1등은 누구냐?" 하며 되물었다고 한다.

 

에이미 탠은 젊었을 때, 이런 뛰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죄책감에 의대를 중퇴하고 히피들과 어울려 유럽으로 도망쳐 다녔다고 했다. A를 맞으면 A플러스를 원하고, A플러스를 맞으면 로드장학생이 되기를 원하는 아시안 이민 1세 부모의 이기적인 요구에 진저리를 쳤다고 고백했다.

 

그러다 서른이 지나면서 동양 부모들의 극성이, 비록 병적이긴 하지만, 당신들이 이루지 못한 꿈을 2세가 이뤄 주길 원하는 변형된 사랑임을 깨달으면서 어머니를 조금씩 이해하게 되었다고 했다.

 

우리 집에선 아내는 물론, 나도 아이들을 뛰밀모처럼 들볶지 않는다. 그러나 내 속 저변에 변형된 사랑이 도사리고 있음을 숨길 수 없다, 자그마한 시몬이가 공부는 물론, 육척장신의 미끈한 미남자로 컸으면 하는 욕심 때문에 자꾸 잔소리가 나온다. 먹는 것, 운동하는 것, 자는 버릇까지 은연중에 간섭한다. 그럴수록 말이 없어지는 녀석은 학교 전체가 떠들썩한 상을 타고도 아빠에겐 "별 것 아니에요" 하고 꿍친다. 아예 "아빠의 비현실적인 기대에 부응하기란 불가능해요." 하는 무언의 시위 같아 보인다.

  

사실 좋은 부모란 자식을 있는 그대로, 아픈 그대로, 못난 그대로 사랑하고 감싸 줘야 하는데 나는 이 아이를 더욱 더 외롭고 슬프게 만드는 존재가 아닌지? 과연 이 녀석이 인생의 가장 어렵고 지친 심연에 처했을 때, 이 아빠를 제일 먼저 찾아 줄런지? 나도 갑자기 외로워진다. 단지 여전히 아내가 옆에서 묵묵히 기모로 남아주는 사실이 고맙다.



[김희봉]

서울대 공대 졸업

미네소타 대학원 졸업

Enviro 엔지니어링 대표

캘리포니아 GF Natural Health(한의학 박사)

수필가, 버클리 문학협회장

1시와 정신 해외산문상수상

김희봉 danhbkimm@gmail.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09.17 11:12 수정 2021.09.1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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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