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집을 향한 그리움으로
둥근 달이 되는 한가위
우리가 서로를 바라보는 눈길이
달빛처럼 순하고 부드럽기를
우리의 삶이
욕심의 어둠을 걷어내
좀 더 환해지기를
모난 미움과 편견을 버리고
좀 더 둥글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려니
하늘보다 내 마음에
고운 달이 먼저 뜹니다
한가위 달을 마음에 걸어두고
당신도 내내 행복하세요. 둥글게!
- 이해인 시 ‘달빛기도 – 한가위에’
설혹 우리가 달이 되지 못하더라도 달무리는 될 수 있지 않으랴.
어렸을 때 읽은 동화가 평생토록 잊혀지지 않는다. 벌이 나비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비는 벌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꽃밭으로 아름다운 꽃들만 찾아다녔다. 그러다 어느 날 밤하늘에 두둥실 떠오르는 보름달이 나비로 보여 벌은 하늘로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그리움에 사무친 벌의 숨이 차다 못해 달무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2020년 7월 14일자 코스미안뉴스에 나는 다음과 같은 글을 올렸다.
[이태상 칼럼] 미지의 피해자 고소인께 드리는 글
고(故) 박원순 시장이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사실이 알려진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피해자인 고소인의 신상을 캐내거나 피해자를 향한 비판을 쏟아내는 등 심각한 2차 가해가 확산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고 엊그제 박 시장님 영전에 바치는 글을 쓴 사람으로 조금이라도 위로의 뜻을 전하고 싶어 이렇게 다시 몇 자 적습니다.
나 자신이 남성이지만 다섯 딸의 아빠이고 너무도 사랑스런 다섯 살짜리 외손녀를 두었을 뿐만 아니라 어려서부터 여성을 여신처럼 숭배하고 흠모해온 사람으로 '가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설상 가상의 그 얼마나 더 큰 충격을 받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을지 나도 가슴이 많이 아픕니다.
언행일치를 영어로는 'Walk it like you talk'를 줄여 'Walk the Talk'라 하지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도 남도 속일 수 없고, 사소한 몸짓 하나가 그 사람의 전부를 나타내며, 그 일부를 통해 나머지를 다 알 수 있다는 의미로 추일사가지(推一事可知)라 하지요. 이를 내가 좀 풀이해보 자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실되고 성실히 대하는 것이 곧 만인 에게 그러는 것이고, 한순간 한순간을 열심히 사는 것이 곧 영원을 그렇게 사는 것이며,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한 것 이상으로 순수하고 진실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나 자신부터 좋은 걸 싫다고 할 수 없듯이 싫은 걸 좋다고 할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리고 좋고 싫은 건 내가 마음 먹는다고 될 일이 결코 아니고 절로 좋든가 싫든가 자연의 순리를 따를 수 밖에 없지 않겠어요. 그런데도 억지로라도 나를 좋아해달라고 할 일이 절대로 아닌데 사회적인 지위나 권력 또는 금력으로 강요할 일이 아니란 말입니다.
자고로 위인은 작은 소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의 큰 사람됨을 나타내는 법이고 약자를 괴롭히는 자는 너무도 찌질하고 비겁한 인간이지요.
짝사랑과 스토킹의 차이가 무엇인지 한 번 생각해 볼까요. 짝사랑은 누군가를 혼자 좋아하는 것이지만 스토킹은 상대를 괴롭히는 게 아닙니까.
3대 독자에다 유복자로 태어나 자식을 열다섯이나 보신 선친께서 자식들은 물론 모든 어린이를 극진히 사랑하는 마음에서 손수 지으신 동요와 동시 그리고 아동극본들을 모아 경술국치 후 일제 강점기 초기에 우리말로 '아동낙원'이란 책을 자비로 500부 출간 하셨는데, 단 한 권 집에 남아있던 것마저 6.25동란 때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글을 처음 배우면서 읽은 '아동낙원' 속의 '금붕어'란 동시 한 편의 글귀는 정확히 기억을 못해도 그 내용만은 잊혀지지 않습니다. 어 느 비 오는 날, 어항 속 금붕어를 들여다보면서 어린아이가 혼잣 말 하 는 내용입니다.
헤엄치고 늘 잘 놀던 금붕어 네가
웬일인지 오늘은 꼼짝 않고 가만있으니
너의 엄마 아빠 형제들 그리고 친구들
모두 보고 싶고 그리워 슬퍼하나 보다.
저 물나라 네 고향 생각에 젖어
밖에 내리는 빗소리 들으며
난 네가 한없이 좋고
날마다 널 보면서
이렇게 너와 같이
언제나 언제까지나
한집에 같이 살고 싶지만
난 너를 잃고 싶지 않고
너와 헤어지기 싫지만
난 너와 떨어지기가
너무 너무나 슬프지만
정말 정말로 아깝지만
난 너를 놓아주어야겠다.
너의 고향 물나라
저 한강 물에
Goldfish
Always happy at play swimming
Around and around
Gaily and merrily
You were,
My dear goldfish.
Why then are you so still today,
Not in motion at all?
What's the matter with you?
Maybe you're homesick
Missing your Mom and Dad
Your sisters and brothers,
All your dear friends,
Soaked with memories and thoughts of
Your home in the water-land,
Far away. over yonder of yore.
I do like you so very much.
I do want to live with you
Forever and ever in this house.
I don't want to lose you.
I don't want to part company from you.
I'll be very sad to be separated from you.
I'll be missing you so very much.
And yet I'll have to set you free.
I must let you go home,
Yes, my dearest goldfish,
In the Han River.
It breaks my heart to see you
Looking so sad.
It hurts so very much
To keep you away
From your folks.
I can't be happy
If you are not happy.
I just want you to be happy.
That's all I wish.
그토록 어린 나이에 받은 깊은 인상과 감상 때문이었을까. 이때 부터 나는 '금붕어 철학'을 갖고 80여 년을 살아온 것 같습니다. 어려서 벗들과 놀때도 언제고 어떤 친구가 조금이라도 싫다 하면 아무리 내가 하고 싶은 일이었어도 그 당장 그만두곤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잃어버린 기회, 놓쳐버린 아가씨들이 부지기수였습 니다. 흔히 여자가 No 하면 Maybe로, Maybe 하면 Yes로 새겨 들으라지만 나는 고지식하게 상대방의 말을 곧이곧대로, 액면 그 대로, 받아들여 거듭 낭패만 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렇다 해도 저 '어린 왕자'의 저자 생텍쥐페리의 말처럼 정녕 삶이 란 있을 법하지 않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세상에 어떤 기쁨도 참된 인간관계 밖에서는 맛볼 가망조차 없으리라고 생각 합니다.
미국의 시인 헨리 워즈워스 롱펠로가 말한 것처럼 흐르는 샘물 처럼 비록 목마른 이의 타는 목을 적셔 주지 못하는 때에도 냇물로 흐르면서 바다로 향하다가 가뭄이라도 만나면 온데간데없이 말라 없어진 것 같지만 증발된 그대 사랑의 샘물은 결코 없어진 것 아니 고, 저 푸른 하늘 떠도는 구름 되었다가 빗물로 쏟아져 내려 그대 가슴의 샘을 그 더욱 넘치게 채워주리오.
Talk not of wasted affection, affection never was wasted,
If it enrich not the heart of another, its waters returning
Back to their springs, like the rain shall fill them full of refreshment;
That which the fountain sends forth returns again to the fountain.
Henry Wadsworth Longfellow
US poet (1807 - 1882)
어떠한 경우에도 생각보다는 느낌 대로, 가슴 뛰는 대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은 바꿀 수 있지만 우리 마음과 혼은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머리 돌아가는 대로 행동하지 않을 경우에는 하루 이틀 후회하게 되지만 가슴이 뛰는 대로 살지 않고 엇가다 보면 평생을 후회하게 되는 까닭에서이지요.
부디 어서 악몽에서 깨어나 새롭게 아름다운 꿈을 꾸시기를 진심 으로 축원합니다.
이어서 2020년 5월 4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칼럼도 옮겨보리라.
[이태상의 항간세설] 컨택트(Contact)와 언택트(Untact)
코로나19가 앞으로 세상을 많이 바꿔놓을 거란 전망이다. 코로 나 19 이전이 대면(對面)의 컨택트(Contact) 시대였었다면, 비 대면으로 이뤄지는 ‘언택트(Untact)’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조짐 (兆朕)이다. 일종의 만인과 만물과의 ‘블라인드 데이트(Blind Date)’가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리라.
흔히 삶은 불공평하다(Life is unfair)고 말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영어로 ‘죽음은 모든 사람을 평준화한다.(Death levels all men.)’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세상에 태어나는 건 그렇지 않아 보인다. 얼마 전부터 한국에선 금수저니 은수저니 동수저니 흙수저니 하는 수저론이 있다지만 우리 좀 살펴보자.
사람이 쓴맛을 본 연후에라야 단맛을 제대로 음미할 수 있듯이 수고 없이 주어진 건 제대로 누릴 수 없지 않던가. 우리 모두 빈손 으로 왔으니 뭘 얻고 갖게 되든 다 남는 장사하다가 다 놓고 떠나게 되지 않던가. 여름 휴가철 아이들이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모래성 쌓고 놀다가 집으로 돌아가듯 말이어라.
어디 그뿐이던가. 세상 사는 이치가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이 있고,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이 있게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동안에도 언제나 평준화가 이뤄지고 있다.
숨을 내쉬어야 들이쉬게 되고, 배설을 해야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으며, 시장기가 최고의 반찬이라고 하지 않는가. 그 한 예로 사람들의 선호대상인 건강하고 잘생긴 미남미녀의 잣대를 살펴 보자. 몸은 건강해도 마음이 불구이거나 외모는 아름다워도 심보 가 고약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 않은가.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Victor Hugo1802-1885)의 1831년 출간된 장편소설 ‘파리의 노틀담(Notre-Dame de Paris, 영어명 은 The Hunchback of Notre-Dame)’을 많은 사람들이 기억할 것이다. 1939년 처음으로 아일랜드계 미국 여배우 모린 오하라 (Maureen O’Hara 1920-2015)와 영국 남배우 찰스 로튼 (Charles Laughton 1899-1962)주연으로 영화화되었다가 1956년 이탈리아 여배우 지나 롤로브리지다(Gina Lollobrigida 1927- )와 멕시코계 미국 남배우 앤소니 퀸(Anthony Quinn 1915-2001) 주연으로 다시 만들어진 영화에선 앤소니 퀸이 맡은 ‘콰지모도’ 역은 겉이 추해도 속이 아름다움이 진정한 아름다움이 라는 화두를 던진다. 픽션에선 그렇다 하더라도 실제로도 그런 예를 하나 들어보리라.
26살의 리지 벨리스케스는 한때 세상에서 가장 추한 여자로 불렸 다. 키 157센티미터, 몸무게 26kg에다 지방이 별로 없어 뼈만 앙상한 데다 한쪽 눈까지 멀었고, 조로증과 아무리 음식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는 거미손 증후군을 앓고 있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2015년 10월 28일 미 의회 상-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연방 차원 의 학교 왕따 방지법 입법의 필요성을 호소했다.
남들에게 어떻게 보이든 그녀의 부모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예쁜 아이로 자라다 유치원에 간 첫날부터 괴롭힘을 당하기 시작했고, 17세 되던 해 유튜브에 뜬 자신의 영상을 보고 ‘괴물이다’, ‘불에 타 죽어버리라’는 등의 악성 댓글을 대하며 많이 괴로웠지만 극복 했다. 텍사스 주립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그녀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다룬 ‘용감한 사람’이란 다큐멘터리로 제작돼 9개 영화제에서 호평을 얻었다. 이 영화를 만든 사라 보르도 감독은 “리지의 이야기는 독특하다”며 “괴롭힘 을 당하는 감정, 다른 사람의 비열한 행위의 희생자가 되는 감정은 모든 사람이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2월 공개됐던 그녀의 ‘기술, 오락, 구상 회의(TED Talk-Technology, Entertainment, Design)’ 연설은 큰 화제를 모으 며 아름다움의 새 기준을 제시했다. 자신과 다르다고, 상품화된 마네킹 같지 않다고, 남의 진가를 못 알아보는 사람들이야말로 눈 뜬 장님들이 아니랴. 아니, 그보다도 자신의 추하고 못난 모습을 세상이라는 거울에 비쳐 보는 것이리라. 예부터 겉이 화려하면 속 이 빈약하다고 외화내빈(外華內貧)이라 하지 않나. 약방의 감초 같은 이야기를 하나 해보리라.
내가 젊었을 때 바람둥이 친구가 하나 있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이 친구야말로 일찌감치 도통한 입신지경에 도달하지 않았었 나 싶다. 이 친구는 얼굴이 못생겼거나 몸맵시가 없어 남자들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여자들만 상대하는 것이었다. 이 친구 말로는 못생긴 여자일수록 속궁합은 훨씬 더 좋더란다.
어쩜 그래서 자고로 미인은 흔히 불행하거나 병약하여 요절하는 일이 많다고 미인박명(美人薄命)이라 하고, 하고, 재인부덕 (才人 不德)하다고 하는 것이리라. 재주고 재산이고, 명예고 권력이고,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에 상당하는 대가를 지불 해야 하는 것이다. 영어로는 You get what you pay for라고 한다. 남 보기에 좋다고 또는 나쁘다고 반드시 그렇지가 않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삶은 공평(公平)한 것임이 틀림없어라.
슬픔을 동반한 우울한 정조(情調)나 의학적으로 우울증(憂鬱症) 을 가리키는 멜랑콜리(melancholy)는 그리스어 ‘melancholia’ 에서 유래한 말로 검은색을 뜻하는 멜란(melan)과 담즙(膽汁)을 의미하는 콜레(chole)의 합성어인데 마치 달무리 같은 덧없는 아름다움이 배어있다.
고대 그리스에선 인간의 체액(體液)을 네 가지로 분류해 그중 한 가지인 흑답즙(黑潭汁)이 과도하게 분비되면 우울증을 비롯한 정신병이 발생한다고 믿었다 한다.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 (John Keats 1795-1821)는 탄식한다.
멜랑콜리송(頌)
불현듯 하늘에서 눈물 흘리는 구름처럼
발작같이 멜랑콜리 증상이 일어나면
아름다움으로 머물지만 사라지는 아름다움일 뿐
Ode on Melancholy
But when the melancholy fit shall fall
Sudden from heaven like a weeping cloud
She dwells with Beauty – Beauty that must die
영어로 ‘depression’이라는 병적으로 의기소침한 우울증과는 달리 멜랑콜리라 할 때는 어떤 낙담스러운 현실과는 상관없이 삶 의 실존적 애잔한 슬픔이 애절할 뿐이다. 그 덧없음이 입김 어린 안개 같고 달빛처럼 몽환적이다.
“성(性)노동은 단지 일이다. 나한테는 정직한 일이었다. 난 젊었을 때 성노동자였다. 힘든 일이었지만 보수가 좋았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다.”
“Sex work is simply work. For me it was honest work. I was a sex worker when I was young. It was hard but well paid. There’s no shame in it.”
이렇게 몇 년 전 한국계 미국 코미디언 마가렛 조(Margaret Cho, 1968 - )가 인터넷에서 밝히자 많은 논란을 빚었지만, 수많은 전(前)현직(現職) 성노동자들의 성원이 있었다. 세계 어느 시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언제 어디에서나 항상 남녀의 인연을 잠시 나마 맺어 준다는 월하(月下) 노인이 지닌 주머니의 붉은 끈 월로 승(月老繩)에 묶인 달 속의 궁전 월궁(月宮)이 있어오지 않았나.
요즘 영어로는 바이폴라(bipolar)라는 정신의 억울과 조양 (躁揚) 상태가 번갈아 또는 한쪽만이 나타나는 정신병 조울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영어로 실성한 사람을 ‘달빛을 쏘였다’고 ‘moonstruck’이라 하는데, 특히 사랑에 빠져 약간 미쳤다는 뜻으로 쓰인다.
그뿐더러 성숙한 여성의 자궁에서 정기적으로 며칠 계속하여 출혈 하는 현상 ‘멘스’를 우리말로 월경(月經)이니 월사(月事)라 하고, 바다의 조수(潮水)와 한가지로 달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지 않는 가.
불교에서는 열둘의 대서원을 발하여 중생의 질병을 구제하고, 법약을 준다는 약사여래의 오른쪽에 모시는 ‘일광보살’과 함께 상수에 있는 보살을 ‘월광보살’이라고 한다. 그리고 절세의 미인을 가리키는 말로 월궁(月宮)에 산다는 선녀를 ‘월궁항아(月宮姮娥)’ 라 한다.
조선 후기의 관료이자 화가로서 산수화와 풍속화를 잘 그린 호 (號)가 혜원(蕙園)인 신윤복(申潤福 1758-1814)의 은밀한 남녀의 만남을 그린 작품 ‘달빛 연인’(제작연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에서 여인은 한결 다소곳한 모습이다. 한밤중의 어슴 푸레한 달빛 속에 밀회를 나누는 표정이 생생하다. 한쪽 손으로 장옷을 여미고 있지만 여인은 남정네의 시선을 의식한 듯 볼이 발그레하게 상기되었다.
푸른 옥색 치마는 허리춤에서 질끈 동여매고 치마 아래로 역시 백설같이 눈부신 속곳 가래가 달빛에 비친다. 고개를 숙이고 다소곳이 장옷을 잡은 여인의 저고리 붉은 소매 깃은 사내의 심상치 않은 시선을 이끌고 있다. 이와 같이 혜원의 여인들은 한결같이 속곳을 드러내고 있는 ‘끼’있는 여인네들로 표현되지만, ‘미인도’는 당대의 젊은 여인의 자태가 가장 아름다운 여성미로 완벽하게 표현되어 압권을 이루는 작품이란다.
초승달 같이 가는 실눈썹과 단정하게 빗은 머리 위의 뽀얀 가리마, 윤기가 흐르는 크고 탐스러운 칠흑의 트레머리로 한껏 멋을 부렸 다. 미소를 머금은 여인의 얼굴에선 아직도 앳된 모습이 역력하지 만 풍성한 치마 아래로 살짝 내비친 속곳 가래와 흰 버선에서 단정 한 여인의 색정이 느껴진다.
아, 달빛이 없다면 햇빛이 무슨 소용이랴!
된장녀나 김치녀를 들먹이는 여성 혐오가 최근에 와서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데, 이를 “한국의 저출산, 저성장에 대한 해법은 여성의 지위향상”이라고 스웨덴의 카로린스카 대학 (Karolinska Institute) 인구문제 석학 한스 로슬링 (Hans Rosling1948-2017) 교수도 지적했다지만, 어서 한국에서도 성(性)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라져야 하리라. 마찬가지로 청년 실업자 문제에 있어서도 그 해법은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을 타파 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 그리고 임시직의 구분 이 없어지는 추세 에 적응해가는 것이리라.
얼마 전부터 미국에서 ‘기그 경제(gig economy)’란 신조어가 유행이다. ‘기그(gig)’란 1920년대 미국의 재즈 공연장 즉석에서 수시로 임시 연주자를 구해 공연하게 된 데서 생긴 단어이다. ‘파트타임(part-time)’, ‘프리랜서(freelancer)’, ‘온 디맨드(on demand)’, ‘우버(uber)’ 등과 같은 임시 고용 방식을 말한다.
소위 하드웨어(hardware)로 일컫는 일자리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로봇, 드론과 3D 프린터 등 기계로 대체되어가는 마당에 고등 교육 조차도 더 이상 평생직장을 보장해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표준형 인력을 양성하는 대신 창의성 있는 인재를 키워 각 분야에 서 필요한 소프트웨어(software)를 제공하도록 해야 하리라.
그렇게 함으로써 각자는 각자의 재능과 자질을 살려 어떤 조직에 도 구속되지 않은 채 사회에 공헌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자유로운 삶을 즐길 수 있게 되리라. 말하자면 우리 모두가 날품팔이 예술 인, 과학자, 작가, 철인이 되어 봉이 김선달이나 방랑 김삿갓처럼 또는 황진이 같이 살아보리라.
김억(金億), 호는 안서(岸曙)로 호를 따라 김안서(1896-?) 작사, 김성태(金聖泰1910-2012) 2012) 작곡으로 ‘꿈’이라는 제목 으로 가곡으로도 만들어진 황진이(黃眞伊 1506-?)의 시조, 시조 ‘상사몽(相思夢)’을 우리 한 번 같이 읊어보리라.
상사상견지빙몽(相思相見只憑夢)
그리워라. 만날 길은 꿈길밖에 없는데
농방환시환방농(儂訪環時歡訪儂)
내가 임 찾아 떠났을 때 임은 나를 찾아왔네.
원사요요타야몽(願使遙遙他夜夢)
바라거니, 언제일까 다음날 밤 꿈에는
일시동작로중봉(一時同作路中逢)
같이 떠나 오가는 길에서 만나기를
“애초에 짜놓은 각본 드라마. 그 안에서의 난 그저 들러리일 뿐. 근데 누가 날 주인공으로 바꿔놨어? 바로 나였어.”
얼마 전 케이블 채널 Mnet이 방영하는 여자 래퍼 서바이벌 프로 그램 ‘언프리티 랩스타 시즌2’에 출연하는 피애스타라는 걸그룹 멤버 예지가 탈락의 위기에 놓인 순간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며 단숨에 우승 후보로 올라 무대에서 제작진을 향해 외친 말이었다.
예지의 이 말은 우리 모두에게 울림이 큰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사람마다 다 다른 환경과 조건에 태어나 다른 현실을 살아가지만, 남이 조종하고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처럼 사느냐 아니면 제가 꿈 꾸고 희망하는 대로 자신의 독창적인 삶과 운명을 개척하느냐는 각자의 권리와 의무이며 선택사항이 아닌가.
똑같은 음식 재료를 갖고도 각자가 전혀 다른 요리를 할 수 있듯이, 똑같은 백지 종이에다 똑같은 크레용과 색색이 물감으로 각자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릴 수 있듯이, 똑같은 자연과 인물을 대상으로 한다 해도 전혀 다른 풍경 산수화와 인물 초상화가 그려지지 않던 가. 똑같은 길을 간다 하더라도 사람마다 보고 듣는 느낌과 생각이 다 다를 수 있지 않은가. 각자는 각자 대로 자신의 인생드라마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그런데 어찌 내키지 않는 공부를 할 수 있으며, 내키지 않는 직업을 갖고, 내키지 않는 결혼을 할 수 있으랴.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힘 든 줄도 모르고 일의 능률도 날 뿐만 아니라 우선 즐거워 본인이 행복하지 않은가. 따라서 주위 사람들에게도 좋은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콩이면 콩 노릇 해야지 팥 노릇을 할 수 있겠는가.
원초적인 예로 태교(胎敎)를 생각해보자. 엄마의 만족이 태아에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하지 않는가. 태어난 이후로도 요람에서 무덤 까지 각자는 자신만의 태교를 이어가면서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만족시켜 나가야 하리라.
사랑스러운 아역스타 김윤정(16)이 훌쩍 자라 2015년 개봉한 영화 ‘비밀’의 주역을 맡고,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역에서 성인 연기자로 넘어가는 데 대해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 어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 아니라 흘러가는 대로 받아들 이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에요. 어렸을 적부터 차근차근, 제 나이 때 할 수 있는 역할, 최대한 즐길 수 있는 역할을 하면서 지금까지 왔어요. 또 많이 할수록 배운다고 생각하고 처음 해 온 대로 잘 유지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억지로 나를 바꿔놓으려 하지 않겠다고 마음을 먹었어요. 20살이 되면 또 그에 맞는 역할을 할 수 있겠죠.”
아, 이것이 우리 각자가 다 자기 삶의 주역으로 사는 ‘비밀’의 열쇠 가 아니랴! 억지로 자신을 바꾸려 하지 않고 각자는 각자 대로 자신의 삶을 살 때 무질서한 카오스가 아닌 조화롭고 아름다운 코스모스가 될 수 있으리라. 그럴 때 비로소 우리 모두 하나같이 날이면 날마다 아무하고도 비교할 수 없는 유일무이한 ‘복면가왕’ 으로 새 역사를 쓰는 것이리라.
얼마 전 MBC ‘일밤-복면가왕’의 13, 14, 15, 16대에서 4연속으 로 등극한 ‘소녀의 순정 코스모스’ 같이 말이다.매회 독보적인 가창 력을 선보이며 ‘갓스모스’라는 별명으로 사랑받았다는 ‘코스모스’ 처럼 우리 모두 각자가 다 온 우주 코스모스의 화신(化身)임을 깨 달아야 할 일이어라.
자, 이제 우리 어떻게 컨택트(Contact)와 언택트(Untact)의 조합(組合/調合)을 이룰 수 있는지 13세기 페르시아의 시인 루미(Rumi 1207-1278)가 남긴 말 한두 마디 음미해보리라.
“이별이란 눈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만 있는 법. 가슴과 혼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겐 없기 때문이지. Goodbyes are only for those who love with their eyes. Because for those who love with heart and soul there is no such thing as separation.”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사랑으로 숨 쉬라. Wherever you are, and whatever you do, be in love.”
이럴 때 우리 모두 비록 달은 못되더라도 달무리는 될 수 있으리라. 이것이 바로 우리 모든 우주나그네 코스미안이 ‘우주무리’가 되는 길이리.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