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자·27
-웅덩이
시인의 의자가 있는 쓰레기장에 작은 웅덩이가 생겼습니다.
비가 올 때마다 웅덩이에 빗물이 고였습니다.
수초가 우거지고 모기떼들이 우글거렸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쓰레기장을 뒤지던 재활용 폐비닐, 플라스틱을 수거하던 할아버지가 웅덩이의 주변의 풀을 베어내고 웅덩이에 무안 회산백련지와 나주 우습제에서 가져온 연뿌리를 심었습니다. 해마다 웅덩이에서 하얀 연꽃이 피어나기 시작하더니 연뿌리가 웅덩이 진흙 바닥에 깊이 뿌리내리고 점점 새끼를 쳐 점점 웅덩이는 연밭이 되었습니다.
물가에는 줄, 부들, 갈대, 창포꽃이 피기 시작했고, 개구리밥 · 부레옥잠 · 통발 · 생이가래 · 자라풀 등은 뿌리를 물 속에 담그고 동동 떠 다녔습니다.
물 위에는 소금쟁이가 놀고, 물속에는 하루살이, 강도래, 날도래, 물매암이, 장구벌레, 수채가 살기 시작했습니다. 웅덩이는 작은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찾아왔습니다. 백련꽃이 필 때면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쓰레기장 주변이 연꽃 향기로 넘쳐났습니다. 할아버지는 재활용 종이 박스를 줍고 나서는 틈나는 대로 웅덩이 주변에 사람들이 찾아와 버리고 음료수 캔, 과자 껍질을 줍는 웅덩이 관리원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자 당국에서는 관람객들이 연꽃을 구경하기 좋게 길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큰 도로에서 웅덩이로 접어드는 갈림길에는 “시인이 사는 연꽃 세상”이라는 이정표를 붙여졌습니다. 해마다 구경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시인이 사는 연꽃 세상”은 텔레비전 방송에 보도되었습니다. 시인의 의자에 얽힌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널리 알려졌습니다. 당국에서는 할아버지를 웅덩이 관리원으로 특별 채용하여 이제 종이 상자 줍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시인의 의자에서는 날마다 연꽃 향기가 풍겨왔습니다. 가짜 시인들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습니다. 함안의 성산산성에서 발굴되었던 700년 전의 연 씨가 썩지 않고 다시 긴 잠에서 깨어났다는 “아라홍련”의 생생한 이야기와 쓰레기장의 웅덩이를 연꽃세상으로 가꾼 할아버지의 “시인의 의자” 실제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시를 쓰지 않고 감투 다툼 시인놀이를 했던 사람들이 시다운 시를 쓰기 위해 힘겨운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모두 이 세상에 아름답게 살다간 흔적을 남기 위해 좋은 시를 쓰기 위해 시인의 의자에 앉았습니다. 웅덩이에서는 날마다 고운 시향이 넘쳐났습니다. 벌 나비, 잠자리가 웅덩이 주위를 멤돌며 하느님의 시를 낭송하고 있었습니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