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코스미안은 모두 시인이자 철인이다

이태상

언제나

당신은 당신이었고,

나는 나였었지;

우리 때가 오기 전엔

우린 둘이었었지.

 

나는 당신의 것이었어

나도 모르게,

그리고 당신 또한

언제나 나의 것이었지.

 

ALWAYS

 

You were you,

and I was I;

we were two

before our time.

 

I was yours

before I knew,

and you have always

been mine too.

 

-Lord Byron(George Gordon Byron1788-1824)

 

우리 모든 코스미안은 하나도 예외 없이 다 시인(詩人)이자 철인(哲人)으로 태어나지만 자라면서 타락한 어른들의 잘못된 세뇌교육으로 속물이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1972년 초 직장 때문에 영국으로 가족과 함께 이주해 살면서 영국 사람들이 사람을 여러 가지로 지칭하는 것이 아주 이상했다. 차 타고 다니는 사람은 모터리스트(motorist), 자전거 타는 사람은 사이클리스트(cyclist), 걸어 다니는 사람은 퍼데스트리안(pedestrian)이라 지칭하는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어도 대화가(對話家 conversationalist)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다. 아주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너는 장차 커서 뭣이 되고 싶으냐’ 물으시면 ‘나는 사람이 될래요’라고 대답했었다. 대통령이다, 중통령이다, 소통령이다라는 정치인, 회장, 사장하는 사업가, 대장, 중장, 소장 장군이다라는 군인, 가수, 배우, 스타다라는 연예인, 미술가다 화가다 음악가다라는 예술인, 대설가, 중설가, 소설가, 수필가, 시인이라는 작가, 등등 부지기수의 상품 라벨 같은 딱지가 이상하고 어색하게 들렸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업은 우리가 우리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편의상 수시로 바뀔 수 있는 하나의 방편일 뿐, 결코 목적이 될 수 없다고 나는 본 것이었다. 그중에서도 ‘시인’이란 타이틀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다. 사람이 면 누구나 언제라도 숨 쉬듯 ‘시(詩)’를 쓰고 그 어떤 ‘명작’ ‘걸작’ 이상의 생생한 ‘삶’이라는 작품을 순간순간 쓰는 것일 덴데 그 무슨 쥐뿔 나게, 그야말로 하루 24시간 ‘이슬 먹고 구름 똥 싸는’ ‘시’만 쓰는 사람인 듯, 마치 문화적인 특권층 귀족인 양, 행세한단 말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먹지도 싸지도 않고 도(道)만 닦는답시고 마치 사람 이상의 ‘신’이라도 된 듯이 성자다 위인이다 아니면 성직자, 신부, 목사, 스님이다 하면서 그 누구도 절대로 확실히 알 수 없는 초월자의 중보인 대변자로 행세하는, 소위 일컬어 ‘종교인’들을 무조건 숭상 숭배할 수가 없었다.

 

아, 모름지기 그래서 세상에는 스스로 자신을 ‘무신론자’니 ‘성상파괴주의자’니 ‘자유주의자’니 ‘불가지론자’이라 자처하는 사람들도 있으리라. 세상에 절대적인 성과 속이 따로 없고, 선과 악이 따로 없으며 옳고 그름이 따로 없이 너와 내가 하나이고 안과 밖이 같으며 사랑 이상의 예술도, 종교도, 진리도, 철학도 없다는 것이리라. 

 

 

“사람들은 날 보고 떠돌이라 하지요. 예, 떠돌이 맞습니다. 난 떠돌고 있으니까요.”

 

미국의 싱어송라이터 디온(1939 - )의 노래 ‘떠돌이’의 후렴구다. 몇 년 전 ‘태양의 후예’ 송중기가 정·재계 여성리더들의 모임 ‘미래회 바자회’에 그의 애장도서인 ‘아이처럼 행복하라(알렉스 김 지음 공감의 기쁨 2012년 3월 27일 출간)’를 기부했는데 그 책의 판매가 급증했다는 반가운 소식이었다. 이 책 제목만으로도 행복하지 못한 모든 어른들에게 너무도 절실한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가 죽은 지 404년이 되는 날 유네스코는 이날을 ‘세계 책의 날’로 정해 기리고 있다. 신과 내세 중심이던 내러티브를 인간의 현세로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대표적인 서양의 작가가 셰익스피어와 세르반테스라고 할 수 있으리라.

 

셰익스피어 작품의 주인공들이 주로 왕족이나 귀족이었다면, 성경 다음으로 널리 번역되고 2002년 노벨 연구소가 세계 주요 문인들을 상대로 한 여론 조사에서 ‘가장 위대한 책’ 1위로 뽑힌 돈키호테’는 다들 알다시피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기사 돈키호테와 하인인 산초 판사가 함께하는 수많은 모험 이야기를 통해 겉모습과 그 실체, 현실과 이상, 존재와 당위 같은 인간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 수수께끼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하는 다음과 같은 말을 우리 심사숙고해 보자.

 

“너무 정신이 멀쩡한 거야말로 미친 것인지 모를 일이다. 미친 일 중에 가장 미친 일이란 살아야 할 삶이 아닌 주어진 삶을 주어진 그대로 사는 일이다.”

 

그럼 살아야 할 삶이란 어떤 삶일까. 생각해 볼 것도 없이 ‘아이처럼 행복하게’ 사는 삶이 아니랴. 돈키호테처럼 살아 보기가 아닐까. 1605년 이 소설이 나오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고 당시 스페인 국왕 펠리페 3세는 길가에서 책을 들고 웃고 우는 사람을 보고 “저자는 미친 게 아니라면 돈키호테를 읽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말했다는 일화가 전해오고 있다. 2014년 12월 ‘돈키호테’ 1, 2권을 5년 넘게 매달린 끝에 모두 1,600쪽이 넘는 우리말 번역서를 완역한 안영옥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흔히 엉뚱한 괴짜나 황당한 사람을 두고 돈키호테 같다고 하지요. 하지만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돈키호테 원작을 제대로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처음엔 낄낄대며 웃지만, 마지막 장을 닫고 나면 울게 되는 책이지요.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돈키호테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돌진하고, 양떼를 군대로 보고 싸우는데 그가 싸운 괴물의 정체는 당시 스페인의 억압적인 정치 종교 체제입니다. 주인공을 광인으로 설정한 것도 검열이나 법적 구속에서 자유롭기 위한 장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웃음으로 모든 권위를 해체시킬 수 있었습니다.”

 

이 번역서 마지막 부분에는 돈키호테가 죽고 난 후 그의 묘비명이 나온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아, 모든 아이는 돈키호테나 김삿갓처럼 우주의 나그네 코스미안으로 태어나는 거라면, 우리 모두 현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일깨워주고 있는 오늘날의 새로운 시대정신의 화신으로서 개명천지 코스미안 시대를 열어볼거나. 우린 모두 살아 숨 쉬는, 의미도 있고 재미도 있는 삶의, 아니 우주의 책이니까. 미국 작가 로저 로젠블라트(1940 - )는 그의 에세이 ‘그게 전부인가’의 결론 부분에서 이런 영감에 대해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어찌 보면, 모든 글은 에세이 쓰기다. 호러에서 미(美)를, 결핍에서 숭고함을 발견하려는 끝없는 시도이다. 벌과 상 그리고 사랑을 거부하는, 자연적인 모든 인간사에서 처벌하거나 포상하고 사랑하려는 노력 말이다. 이는 아주 힘들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로서 마치 신(뭐라 하든 신적인 존재)을 믿는 일과 다르지 않다. 때로는 글을 쓰는 동안 내가 다른 누군가의 디자인에 따라 어떤 하나의 예정된 기획의 일부를 수행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어느 날 그동안 내가 한 모든 일들을 돌이켜보면서 생각하리라. 이게 신이 내게 의도한 전부일까. 하지만 그것이 내게 주어진 전부이어라.”

 

그런데 이런 영감이란 우리 머리와 가슴이 그 어떤 선입견과 편견이나 고정관념 또는 욕심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 텅 비어 있을 때라야 생길 수 있는 신비스런 현상이리라. 아, 그래서 미국의 유명한 컨트리 음악 가수 지미 딘(1928-2010)도 이렇게 말했으리라.

 

“바람이 부는 방향을 바꿀 수는 없어도 내 돛을 언제나 내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도록 맞출 수는 있다.”

 

오늘날 전 세계 온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 사태라는 이 엄청나 게 큰 위기 또한 그만큼 엄청나게 큰 변혁의 좋은 기회로 삼아야 할 일 아니랴. 그런데 미국의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1847-1931)은 말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회를 놓치는 건 그 기회가 작업복을 입고 있거나 일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우리 모든 어른들도 세상살이 인생살이를 어린아이들 소꿉놀이하듯 즐기라는 뜻이리라. 더 심각한 문제는 우리가 그 어떤 영감이나 사랑도 못 느끼면서 로봇같이 기계적으로 노력하거나 마지못해 억지 쓰듯 습관적으로 사는 삶이 아닐까. 우리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한 구절 음미해보리라.

 

제 안에 음악이 없는 인간,

감미로운 음의 선율에도 감동할 줄 모르고,

배신과 계략과 약탈만 일삼는다.

그의 정신력은 밤처럼 아둔하고

그의 감성은 에레부스

(카오스에서 태어난 태초의 암흑)처럼

캄캄하다.

그런 사람을 믿지 마라.

음악을 기리라.

 

아, 너도나도 우리 삶은 음악이 되어라. 그러자면 우리 삶에 사랑이 있어야 하리라. 그리고 모든 영감이란 사랑에서 뜨는 무지개이리. 그리고 이 사랑이란 것도 새장 같은 그 어떤 틀에 박힌 것일 수는 없으리라.

 

자, 이제 우리보다 앞서 이 지구별에 다녀간 코스미안 칼릴 지브란(1883-1931)이 그의 우화집 ‘떠돌이(1932)’에서 하는 말 좀 음미해보리라.

 

“나는 길목에서 그를 만났다. 외투를 걸치고 지팡이를 잡은 그의 얼굴은 수심(愁心)에 그늘져 있었다. 나는 그에게 ‘우리 집에 손님으로 모시겠다’고 하자 그는 우리 집으로 왔다. 내 아내와 아이들이 그를 반겼고 그는 미소로 답했다. 우리 가족은 그를 손님으로 맞게 되어 좋았다. 우리는 모두 식탁에 앉아 행복하게 저녁을 먹었다. 말이 없는 그에게는 그 어떤 신비로움이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불 옆에 앉아 나는 그에게 그의 방랑유랑담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날 밤 그리고 그다음 날에도 그는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으나 내가 지금 기록하는 건 그의 고난에 찬 역정일 뿐이다. 하지만 그는 평안했으며 그의 고단한 인내의 여정이 티끌 같은 이야기들이었다. 그가 사흘을 우리 집에 묵고 떠났어도 손님이 떠난 것이 아니고 우리 가족 한 사람이 아직 뜰에 있어 곧 집 안으로 들어올 것처럼 느낄 뿐이었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5.08.23 11:51 수정 2025.08.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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