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기자: 전명희 [기자에게 문의하기] /
최근 미주판 한국일보에는 '화천대유'와 관련해 대한민국의 국내 상황에 대한 미시적 관찰 칼럼 둘과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예의 주시한 거시적 칼럼 둘이 실렸다.
하나는 민경훈 논설위원의 [논단]
<천하동인, 화천대유, 그리고 지산겸> (2021년 9월 28일자)과 옥세철 논설위원의 <'화천대유의 환각', 그 이면의 현실은...> 그리고 써니 리 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의 <한민족의 정체성과 홍익인간>(2021년 9월 29일자 뉴욕판)과 사설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문화강국>(2021년 10월 1일자)으로 아래와 같이 옮기는 앞의 두 글은 우리가 어서 졸업해야 할 우물 안 분탕焚蕩질을 질책叱責하는 것이라면 뒤의 두 글은 우리 한민족이 정신적으로 맡아야 할 선도적先導的 역할을 상기想起, 촉구促求하는 것이어라.
<천하동인,화천대유,그리고 지산겸>
중국을 대표하는 철학이 둘 있다면 그것은 유교와 도교일 것이다. 이 두 교가 공통으로 떠받드는 경전도 있다. 주역이 그것이다. 주역은 흔히 ‘점치는 책’으로 알려져 있으나 사실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세상에서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밝힌 철학서이며 수양서이다.
주역은 괘사와 효사, 그리고 이에 대한 해설인 십익으로 이뤄져 있는데 누가 썼는지는 불분명하다. 여기서 말하는 효는 막대기 모양의 형상으로 길게 하나로 된 것은 양효, 짧게 두개로 된 것은 음효라 불린다. 양효는 하늘, 음효는 땅을 상징하는데 주역은 이 두 효만을 가지고 천지만물의 변화를 설명하고 있다.
이 효 셋이 모인 것을 소성괘라 부르는데 여기에 태극기에도 등장하는 건곤이감과 손태진간이 포함된다. 양효와 음효 셋이 모여 이룰 수 있는 경우의 수가 8개뿐이므로 소성괘의 숫자는 8개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가 8인 이유가 여기 있다.
소성괘 2개가 모인 것을 대성괘라고 하는데 이 때 경우의 수는 8x8=64개다. 두 괘 중 위에 있는 것을 상괘 혹은 외괘, 아래 있는 것을 하괘 또는 내괘라 부른다. 결국 주역은 이 64괘에 대한 해설인 셈이다.
64괘는 건괘로 시작해 미제괘로 끝나는데 그 가운데는 좋은 괘도 있고 나쁜 괘도 있다. 이 64괘 중 가장 좋은 괘의 하나가 13번째인 ‘동인’괘다. 상괘가 하늘을 상징하는 건괘, 하괘가 불을 상징하는 이괘로 돼 있어 ‘천화동인’이란 별명이 붙었다. 사업을 시작하려는 사람이 뜻을 같이 하는 동지를 구하는 괘로 불은 하늘로 치솟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일이 순조롭게 풀릴 것임을 시사한다.
이에 못지 않게 좋은 괘가 14번째인 ‘대유’괘다. 이 괘는 동인괘와는 반대로 상괘가 이괘, 하괘가 건괘로 돼 있다. 이 때문에 이 괘에는 ‘화천대유’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천화동인’이 이제 막 떠오르는 해라면 ‘화천대유’는 해가 하늘 한 가운데 뜬 형상이다. 주역은 이를 ‘큰 수레에 물건을 가득 실었다’로 묘사한다.
그러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이 있다. ‘가득 찬 것은 오래 가지 못한다’는 것은 주역의 핵심 가르침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를 강조하기라도 하듯 ‘대유’ 다음인 15번째 괘는 ‘겸’괘다. 상괘는 땅을 뜻하는 곤괘, 하괘는 산을 뜻하는 간괘로 이뤄져 있어 ‘지산겸’괘라고도 불린다. ‘속에 산을 품고 있으면서도 땅처럼 겸손하다’는 뜻이다.
겸괘의 괘사를 보면 시종일관 가득 찬 것을 경계하고 겸손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늘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덜어 겸손한 것에 보태고, 땅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바꿔 겸손한 곳에 흐르고, 귀신은 가득 찬 것을 해하고 겸손한 것에 복을 주며, 사람의 도는 가득 찬 것을 미워하고 겸손한 것을 좋아한다”라고 돼 있다. 또 “군자는 많은 것에서 덜어 적은 것에 보태며 사물을 저울질 해 평평하게 베푼다”고도 적혀 있다.
요즘 한국에서 주역의 64괘 중 ‘화천대유’와 ‘천화동인’이 연일 화제에 오르고 있다. 경제지 법조기자를 오래 하다 부동산 투자회사를 차려 대박을 친 김만배란 사람 때문이다. 대학에서 동양 철학을 전공한 사람답게 회사 이름을 ‘화천대유’로 하고 자회사를 ‘천화동인’으로 했다. 이 회사는 3억을 투자해 3,000억이 넘는 수익을 올렸다는데 가히 워런 버핏도 울고 갈만한 솜씨다.
문제는 이런 수익이 정당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는가이다. 김씨는 언론사 재직 시절 당시 성남시장이던 이재명에 우호적인 인터뷰 기사를 내보냈고 그 후 그가 급조한 투자 회사는 성남 대장동 개발 수의 계약을 따냈다. 이 회사에는 대법원에서 이재명에게 무죄 판결을 내려 그의 정치 생명을 살려준 권순일 전 대법관을 비롯, 가짜 수산업자로부터 고급 외제차를 선물받아 타고다닌 박영수 전 특검, 김수남 전 검찰총장이 속한 법무법인 등이 자문과 고문 등 명목으로 일하며 수 억을 받아갔다.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 수석의 아들은 이 곳에서 몇년 일하고 50억이란 천문학적 액수의 돈을 퇴직금 명목으로 받았다. 박영수 전 특검은 본인으로는 모자란듯 그의 딸도 거기서 일하고 퇴직금을 받는다고 하는데 액수 밝히기는 거부했다. 거기다 불법 로비 혐의로 기소된 변호사와 그의 변호사, 그를 기소한 지검장이 모두 이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요지경 속이다.
한국 금융 정보 분석원은 이미 지난 4월 수상한 자금 흐름을 포착하고 내사중이며 경찰은 곧 김만배를 소환해 수사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하니 사건의 진상은 밝혀지겠지만 지금까지 나온 사실만으로도 일개 부동산 투기꾼에 놀아나는 한국 법조계와 정치권의 한심한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민경훈 논설위원>
<‘화천대유의 환각’, 그 이면의 현실은…>
‘이게 말이 되나…’-. 넷플릭스 ‘전 세게 오늘의 톱10’차트에서 수 주째 줄곧 1위를 지키고 있다고 하던가. 그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보고난 후의 개인적 소회다.
무자비하고 살벌한 서바이벌 게임을 다루었다. 한 번 ‘루저’가 되는 순간 자동소총으로 즉결처형식으로 살해되는. 그러니 도무지… . 그런데 고단하고 힘든 삶. 그 가운데 일확천금을 노리는 세상. 그게 오히려 현실감이 있다며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환호하고 있다는 거다.
화천대유. 천화동인. 그 이름만 들어도 먼 별나라에서 온 것 같다. 그런 회사들이 5,000만원이니, 3억5,000만원을 투자해 수 백 억에서 수 천 억 원을 벌어들였다. 일확천금도 이런 일확천금이 없다. 현실인가. 도무지 허황하기만 하다.
계속 폭로되는 이야기들은 이렇다. 정치권력이 이 일확천금 게임의 한가운데 있다. 거기에다가 전 대법관 등 내로라하는 법조인들이 일종의 카르텔을 형성해 함께 꿀을 빨아왔다. 입막음을 위해 엄청난 액수의 돈이 뿌려졌고 관련된 정관계 사람이 수십 명이 넘는다. 그리고….
픽션보다 더 기막힌 현실이다. 걸린 돈이 기껏 456억 원 밖에 안 되는 ‘오징어 게임’은 아주 시시하게 들리는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이한 것은 이 초대형 게이트의 몸통 의혹을 받고 있는 여당의 대통령 예비후보 이재명의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말이지 말 그대로 ‘대가리가 깨어져도 우리 후보’란 식으로 열성 지지자들이 집결하고 있다. 마치 집단 히스테리라도 걸린 것 같이.
더 불가해한 것은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보이고 있는 침묵이다. 전 국민이 아우성이다. 그런데도 아무 말이 없다. 방탄소년단을 대동한 해외나들이나 하면서. 그 행태가 투명인간 같다.
2021년 가을 대선길목에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초현실적인 상황. 어떻게 봐야 하나.
문재인 정권 5년, 특히 조국사태이후 대한민국을 사로잡은 시대정신(?)은 단연 ‘내로남불’이다. 그 ‘내로남불’이 갈 데까지 간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혹이 이재명 예비후보 측근까지 번지고 있는데도 특검도, 국정조사도 한사코 가로막고 있는 집권층의 행태에서 그 일단이 드러나듯이.
이 대한민국의 현실과 관련해 그리고 뭔가 한 가지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느낌이다.
‘고질화된 대형 부패는 민주주의를 내부에서부터 붕괴시키는 가장 치명적 위협 요소다’- 극히 상식적인 경고로 들린다. 문제는 그 부패를 권위주의 형 체제들, 특히 중국공산당(CCP)은 국제적 영향력 확대와 민주체제 붕괴 등을 목적으로 전략무기로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포린 어페어지가 일찍이 내린 진단으로 ‘혹시…’라는 상념을 떨칠 수 없게 하고 있다. 대장동 게이트가 반드시 그렇다는 것이 아니다. 온갖 비리로 얼룩진 문 정권 5년, 그리고 그 비리 수사를 입법폭주를 통해 한사코 막아 온 권력. 그 배후에 보이지 않는 뭔가의 알파가 도사리고 있지 않을까 하는 ‘합리적 의심’이 들어서다.
CCP는 어떤 방식으로 부패를 전략무기로 사용하나.
“캐나다, 호주, 독일 일본 등 선진 민주주의 체제를 대상으로는 중국에 비판적인 언론이나 기구에 재정적 압박을 통해 압력을 가한다. 반면 친중 목소리를 내는 언론이나 싱크 탱크, 대학의 연구기관 등에게는 재정적 후원을 통해 보상을 한다.”
포린 어페어지의 폭로로 CCP는 ‘공자학원’ 등 다양한 기관과 민간 사회단체까지 이용하는 ‘통일전선 네트워크’를 통해 심지어 외국의 정당까지 뇌물공여 등의 수법으로 침투해 왔다는 것.
후진국, 혹은 민주주의의 토대가 허약한 나라를 상대로 한 CCP의 부패전략은 보다 직설적이다. 막대한 뇌물제공을 통해 소수의 집권 엘리트 그룹을 ‘부패의 사슬’로 묶어 놓는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은 오직 중국공산당 찬양으로, 이런 그들을 통해 그 나라의 정책은 중국에 극히 호의적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 포린 어페어의 지적이다.
그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방대한 자금을 풀어 해당 국가의 시민단체, 언론 등을 동원해 중국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한다. 그리고 여론몰이에서 시민사회 조종 방법에 이르기까지 고도화된 중국공산당의 체제유지 선진기법(?)을 훈련 등을 통해 전수하고 있다는 것.
그러고 보니 미심쩍은 게 하나 둘이 아니다. 전 세계가 ‘공자학원’으로 난리다. 중국어 교육과 문화를 전파하는 기관이 아니라 중국공산당의 이념 선전 거점임이 들통이 나서다. 23개의 ‘공자학원’이 들어서 있는 한국은 그러나 이상하리만치 조용하다. 한 마디로 무풍지대다.
6.25를 왜곡하는 영상공정(映像工程)도 모자라 중국은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통해 문화 동북공정을 펴고 있다. 한국문화를 중국의 속국문화로 둔갑시키려 들고 있는 것이다. 한복은 중국의상이라는 식으로. 그런데도 한국정부는 꿀 먹은 벙어리다.
하기는 대통령이라는 사람은 입만 열면 ‘중국몽’찬양이다. 외교장관은 중국의 ‘늑대외교’를 적극 옹호하고 있다. 그리고 중국의 고위인사가 방한이라도 하는 날이면 집권여당 사람들이 구름떼 같이 몰려드는 판이니.
‘오징어 게임’ 안에는 뛰어넘지 못하는 계급의 한계가 존재한다. 참가자들은 모두 ‘루저’로, VIP의 놀잇감에 불과하다. 밀실에서, 베이징을, 평양을 무대로 문재인의 사람들은 게임을 구상하고 있다. 그들만을 위한 시스템을 영속시키는. 국민이라는 ‘루저’는 장기 말로 보면서.
썩은내가 진동하는 가운데에도 ‘어게인 2018’을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오로지 대선 승리를 위해. 이게 ‘화천대유의 환각’뒤에 숨어 있는 대한민국의 또 다른 현실이 아닐까.
<옥세철 논설위원>
<한민족의 정체성과 홍익인간>
2000년대 초 리처드 린 교수와 타투 반하넨 교수는 세계 185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지능지수를 조사했다. 한국은 실질적으로 세계 1위였고 북한은 3위였다.
세계 1위의 첨단기술력과 문화파급력은 물론 한국통일로 인한 인류평화의 진원지로서 전세계의 중심부가 되기에 한국은 손색이 없다. 최근 바이든이 삼성에 미국 본토의 기술공장 설치를 위해 지속적인 러브 콜을 보냈다. 한국의 산업기술력으로 인한 경제성장력 또한 가공할만하다. 전세계 산업 발진기지로서 한국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한 것이다.
무엇보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국수적이거나 패권주의적 성향을 띠지 않는다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 대처상황에서 보였듯이 한국은 국제사회 공통의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인프라 공유에 적극적으로 앞장섰다. 자국의 이익과 패권주의에 매몰된 국익주의에서 벗어나 인류사회에 기여하려는 휴머니즘적인 민족성의 발로이다. 한국민의 유전인자속에 잠재한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이 발현된 것이다.
각 민족은 저마다의 민족성이 있다. 지구상 어느 민족도 패권주의적 민족주의에 기반한 역사를 추구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가까이 중국에서 일본은 물론 미국을 비롯해 유럽 강대국들은 스스로를 우수한 민족으로 자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아프리카를 지혜와 문명의 땅으로 보지 않듯이 중동지역에서 세계적 석학을 기대하지 않는다. 남미의 대부분 국가들에 대해 민족적으로 우월하다는 견해를 갖지도 않는다. 이들 지역과 동양의 많은 나라들이 근대사회에서 식민지 경험을 했다. 결국 열등하고 낙후된 지역에서 발전이 더디게 일어났다. 근세사회 유럽열강들이 민족 우월주의에 입각해 전세계의 낙후된 지역들을 식민지화 하기 위해 서로 다투어 나섰다.
여전히 아프리카는 어두운 터널을 벗어나지 못하며 흑인은 보편적으로 열등한 민족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한다. 남미도 몇몇 나라를 제외하고 그다지 낙관적이지 않다. 아시아에서 한국, 중국, 일본 정도가 유럽의 국가들이 누리는 문명론에 상응한다.
한민족의 우수성을 논하기 전에 늘 거론되는 민족이 있다. 유대인과 독일인이다.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민족 우월주의에 광분해 유대인 말살정책으로 600만명 이상을 학살했다.
이면에는 독일민족이 선민의식으로 무장한 유태인의 인종적 우수성을 시기한데서 기인한다. 청교도들이 주류정치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미국도 앵글로 색슨으로 대표되는 영국적 민족주의가 팽배해 있다. 최고위층에는 영국계이외의 이민족의 진출을 견제해 왔다. 전세계의 리더 국가로서 미국 또한 민족주의의 한 장을 장식한 것이다.
수많은 외세의 침입에도 불구하고 멸망하지 않은 끈질긴 민족성 속에는 침략이나 정복욕이 배제되어 있다. 인류평화를 사랑하는 지혜로운 민족으로 승화된 것이다.
한민족이 갖고 있는 우수성중에 세상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의 이념은 현대판 휴머니즘의 발로이다. 5,000년의 세월동안 한민족의 가슴에 면면이 내려온 정신으로 인류사회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꽃을 피울 날이 가까워 왔다. 코로나를 극복하고 인류는 새로운 문명적 전환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써니 리/ 한미정치발전 연구소장>
사설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문화강국>
(2021월 10월 1일자)
한국에서 만든 드라마 ‘오징어 게임’이 세계적인 놀이신드롬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소식이다. 넷플릭스에 공개된 지 열흘만에 미국을 비롯한 76개국에서 TV쇼 부문 1위를 차지했고, 이 추세라면 넷플릭스 사상 최고히트작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 쾌거는 2020년 오스카시상식에서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외국어영화상과 함께 극본, 감독, 작품상까지 4개 을 휩쓴 최초의 기록을 남긴 것과 비견되면서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28일 발표된 최돈미 시인의 ‘맥아더 펠로우십’ 수상도 대단한 영예다. ‘천재 그랜트’로 불리는 이 상은 자기 분야에서 탁월한 창의력과 통찰력, 사회에 공헌할 잠재력을 가진 소수정예를 선정하여 62만달러라는 거액의 상금을 ‘무상투자’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본인이 지원하거나 추천을 받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 최고권위자들로 구성된 비밀위원회가 후보를 선택하고 심사하여 수상을 결정하기 때문에 어떤 상보다도 영예롭게 여겨진다.
빌보드 차트 1위를 석권한 방탄소년단(BTS)의 활약도 눈부시다.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의 특사 자격으로 유엔총회에 참석, 청년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해 세계적으로 주목받은 데 이어 오는 11월말 7만명을 수용하는 LA 잉글우드의 신축 NFL 구장 ‘소파이(SoFi)’ 스태디엄에서 2년 만에 대면 콘서트를 재개한다.
대한의 자녀들이 국제무대에서 펼치는 활약상이 눈부시다. 오랫동안 묻혀있던 한민족의 우수한 재능이 국력의 신장과 함께 곳곳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피겨여왕 김연아,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활약하는 손흥민, 여자골프 세계 랭킹 1위에 오른 박인비 등 스포츠 계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기록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 8월1일 지휘자 김은선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샌프란시스코오페라의 음악감독에 공식취임했다. 세계 주요 오페라하우스를 통틀어 최초의 여성이며 최초의 아시안 음악감독이다. 10월9일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에서 열리는 LA 필하모닉의 시즌개막 ‘홈커밍 콘서트’에는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초청돼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 협주곡 1번을 연주한다. 스포츠와 문화예술계만이 아니라 요리, 패션, IT, 과학 분야는 물론이고 미국 행정부와 법조계에서도 고위직에 오르는 한인 2세들도 나날이 늘고 있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높은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고 했던 김구 선생의 소원이 70여년 만에 이루어지고 있다.
다음은 2021년 9월 29일자 미주 뉴욕판 한국일보 오피니언에 실린 우생의
칼럼이다.
<역침투, 역선교>
8·15 광복과 함께 질풍과 노도처럼 한반도에 밀어닥친 미-소 냉전의 광풍 속에 휩싸인 가운데 서양풍 사대주의 사조에 맞서 역풍을 일으킨 인물 두 사람을 들라면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문선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자는 ‘주체사상’을 주창했고, 후자는 분쟁과 파쟁을 일삼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통일하는 ‘통일교(統一敎)’를 창시했으니까.
30여 년 전 영국의 TV에서 영국의 젊은이들이 통일교에 포섭 세뇌되어 이용 착취당하고 있다는 프로가 방영된 후 영국의 신문마다 ‘Moonie’라는 통일교가 반사회적이니, 가정을 파괴한다느니 야단이었다. 이 와중에 통일교 신자가 된 손자를 둔 한 영국 할아버지가 보낸 편지가 영국 신문 가디언(The Guardian)에 실렸었다.
“내 손자는 현재 21세로 3년 전 통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의 규칙대로 술, 담배, 마약, 문란한 섹스 성생활을 기피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규율이 반사회적이란 말입니까. 그 아이 부모 말로는 이웃들도 자식들이 술집이다 디스코다 싸돌아다니면서 마약 밀매꾼들의 밥이 되는 대신 차라리 통일교도들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답니다. 내 손자는 6주마다 집에 오면 행복하고 화평한 얼굴로 집안 궂은일 다 맡아 하고, 옛날에는 긴 머리 장발에다 막 살던 아이인데 지금은 복장과 외모부터가 아주 참하고 생기 있는 딴사람이 되었답니다. 대화를 해 봐도 그가 세뇌됐다는 아무런 낌새를 찾아볼 수 없고, 그가 믿게 된 통일교의 교리가 기독교의 기존 정통파 교리와 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통일교가 가정을 파괴한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당시 18세에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와 교회를 다닌 끝에 세례 받고 침례교 신자가 되었을 때 나야말로 세뇌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및 호주와 뉴질랜드 원주민들의 고유한 정신문화는 백인들의 독선독단적인 종교적 과학적 물질문명의 세속적 침공을 받아왔음’을 상기시키면서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이러한 침공에 대응, 처음으로 역침투, 역선교의 역공(逆攻)을 개시한 것 같다고 미시간대 알리 마즈루이 교수는 관찰한다.
<이태상/ 언론인>
우생의 이 글은 지난해 연말 (2020년 12월 16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칼럼 글 그 일부를 뽑아 쓴 것이다.
[이태상 칼럼] '코스미안 비전은 온 인류의 시대정신'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인류역사상 세계 최대의 쓰나미(Tsunami)를 맞은 2020년이 저물고 2021년이 밝아오고 있는 이 시점(時點)에 지난 75년 아니 2천여 년의 세월을 돌아보면서 올해 초에 출간된 우생(愚生)의 졸저(拙著) ‘유쾌한 행복론’에 실린 졸문(拙文) ‘코스미안 비전은 온 인류의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과 올가을에 나온 영문판 ‘코스미안 랩소디Cosmian Rhapsody)’ 에 수록된 ‘코스미안 비전이 열쇠(Cosmian Vision Is the Key)’ 그리고 ‘코스미안 구도(求道)의 길(The Cosmian Way Is the Way to Seek)’을 아래에 옮겨보리라.
'코스미안 비전은 온 인류의 시대정신(時代精神 zeitgeist)'
8·15 광복과 함께 질풍과 노도처럼 한반도에 밀어닥친 미-소 냉전의 광풍(狂風) 속에 휩싸인 가운데 서양풍(西洋風) 사대주의 사조(事大主義思潮)에 맞서 역풍(逆風)을 일으킨 인물 두 사람을 들라면 북한의 김일성과 남한의 문선명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전자(前者)는 공산주의가 아닌 골찬주의 ‘주체사상(主體思想)’을 주창했고, 후자(後者)는 분쟁과 파쟁을 일삼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통일하는 ‘통일교(統一敎)’를 창시했으니까. 그 내용이나 결과는 차치물론(且置勿論) 내버려 두고 문제 삼지 않기로 하고, 그 이름만으로도 큰 박수를 받을 만하지 않은가. 역사적인 평가는 후세 사가(史家)들에게 맡긴다고 하더라도 이들이 제시한 비전만 큼은 우리가 기꺼이 기탄(忌憚)없이 적극 수용(受容/受用/收容 /收用) 할 수 있지 않으랴. 우리 단군의 홍익인간(弘益人間) /홍익만물(弘益萬物) 그리고 천도교(天道敎)의 인내천(人乃天) 사상으로서 말이다.
영국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은 그의 대서사시 ‘실낙원(Paradise Lost, 1667)에서 ‘악마의 광란, 침울한 우울증, 그리고 달빛을 쏘여 실성(失性)한 광증(狂症)’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30여 년 전 영국의 TV에서 영국의 젊은이들이 통일교에 포섭 세뇌되어 이용 착취당하고 있다는 프로가 방영된 후 영국의 신문마다 ‘Moonie’라는 통일교가 반사회적(反社會的)이니, 가정을 파괴한다느니 야단이었다. 이 와중(渦中)에 통일교 신자가 된 손자를 둔 한 영국 할아버지가 보낸 다음과 같은 편지가 영국의 진보주의적 전국지 신문 가디언 (The Guardian)에 실렸었다.
“내 손자는 현재 21세로 3년 전 통일교 신자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들의 규칙대로 술, 담배, 마약, 문란한 섹스 성생활을 기피해왔습니다. 이와 같은 규율이 반사회적이란 말입니까. 그 아이 부모 말로는 이웃들도 자식들이 술집이다 디스코다 싸돌아 다니면서 마약 밀매꾼들의 밥이 되는 대신 차라리 통일교도들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답니다. 내 손자는 6주마다 집에 오면 행복하고 화평한 얼굴로 집안 궂은일 다 맡아 하고, 옛날에는 긴 머리 장발에다 막살던 아이인데 지금은 복장과 외모부터가 아주 참하고 생기있는 딴사람이 되었답니다. 대화를 해 봐도 그가 세뇌됐다는 아무런 낌새를 찾아볼 수 없고, 그가 믿게 된 통일교의 교리가 기독교의 기존 정통파 교리와 좀 다르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것 같습니다. 그러니 통일교가 가정을 파괴한다고 할 수 없지 않겠습니까? 그러고 보면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당시 18세에 어려서부터 주일학교와 교회를 다닌 끝에 세례받고 침례교 신자가 되었을 때 나야말로 세뇌되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중 매스컴을 통해 인체에 해롭고 반사회적인 술과 담배 선전광고로 우리 모두 잘못 세뇌되어 오고 있지 않습니까?"
공교롭게도 또 그 몇 년 전 영국의 국영방송 BBC ‘리스(The Reith Lectures)’ 공개강좌 연사로 초빙된 미국의 그 당시 미시간 대학 알리 마즈루이(Ali Mazrui 1933-2014) 교수는 최근에 서방국가에서 전도(傳道)하며 개종(改宗)시키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 선교사들은 그동안 오래도록 서양사람들이 처방해 온 약(藥)을 그들 자신들에게도 맛보게 해주고 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의 문선명 목사가 이끄는 통일교 운동에 모여드는 서양의 자식들 부모가 느끼는 억하심정(抑何心情)을 자기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마즈루이 교수는 말한다.
“내게는 아들 셋이 있습니다. 아프리카 사람으로 나는 태어났고, 내가 아직도 아프리카에 살고 있었다면 내 아들들도 선교사들의 전도 대상이 됐을 것입니다. 물론 선교사들은 서양의 백인들인 감리교나 가톨릭 계통이었을 것입니다.”
서양 백인들의 제국주의적 식민지 질서에 쉽게 또 빨리 현지 원주민들을 굴종 예속시키기 위해 백인 선교사들은 사랑과 친절, 용서와 인내 등 여성적 미덕(美德)을 주입 세뇌시켜 이들의 반항심과 투쟁 정신을 약화시켜 정신무장을 해제시킨 후 백인들의 세계 지배를 가능케 했다고 정치학 교수인 그는 본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및 호주와 뉴질랜드 원주민들의 고유한 정신문화는 백인들의 독선독단적인 종교적 과학적 물질문명의 세속적 침공을 받아왔음을 상기시키면서 문선명 통일교 교주가 이러한 침공에 대응, 처음으로 역침투, 역선교의 역공(逆攻)을 개시한 것 같다고 마즈루이 교수는 관찰한다.
만약 세계 2차대전에서 일본이 승리했다면 아마도 일본의 신도(神道 Shinto) 신사참배(神社參拜)에 앞장섰을 한국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과 미국 등지에서 교회에 많이 다니고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서양의 해적들이 총칼은 물론 원자폭탄으로 세계를 정복하지 못했었다면 저들의 종교 기독교가 오늘날처럼 세계 도처에서 판치게 되지 못하였으리라. 이렇게 볼 때 서양 백인 선교사들에 의해 개종된 모든 유색 기독교인들을 좀 극단직으로 표현해서 정신적으로 거세(去勢)당한 일종의 정신적인 내시(內侍)’라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고인(故人)이 되셨지만, 그분이 아직 살아 계실 때 27년 전 나는 아래와 같은 편지 한 통을 문선명 교주님께 띄웠다.
문선명 선생님께
문 선생님과 일면식은 물론 통일교에 대해 아는바 아무것도 없는 무지한 소생이 극히 외람되나마 삼가 이 글을 올립니다. 뭣 보다 통일교의 통일이란 이름부터가 분열될 대로 분열된 온 인류에게 가장 호소력 있고 매력적입니다. 지난해 전 세계 1백 40개국 8만 명의 지성들이 자리를 같이한 제1회 세계 문화 체육대전이 한국에서 개막됐다는 뉴스 - 아니 이야말로 복음(福音)이라 해야겠지요 -를 접했을 때 정말 가슴 벅찬 감격에 환호성(歡呼聲)의 경탄성(敬歎聲)이 절로 나왔습니다.
세계 규모에 걸치는 획기적인 대전(大展)에서는 국제과학통일 회의, 세계평화교수협의회 세계대회, 세계평화종교연합, 세계평화연합, 세계평화여성연합, 대학원리연구회 세계대회, 체육대전, 등의 행사와 실로 장관(壯觀)일 수밖에 없는 3만여 쌍 6만여 명의 국제합동결혼식이 베풀어졌다는 보도에 이 대전(大展)의 창시자인 문 선생님께 큰 박수와 진심으로 깊은 경의(敬意)를 표해 마지않으면서 이 모든 행사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이름뿐인 아닌 문자 그대로 명실상부(名實相符)한 결실(結實) 맺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지난해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TIME)의 ‘나라 없는 사람’이란 표제로 구(舊)소련연방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Mikhail Gorbachev, 1931 - )의 실각을 다룬 커버스토리 기사를 읽고 어떤 한 독자가 보낸 다음과 같은 글이 타임지에 또한 실렸습니다. (타임지 1992년 1월 13일자) ‘고르바초프에게 편지를 띄울 수 있다면 나는 이렇게 쓰겠다’는 요지였지요.
“당신은 결코 나라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세계가 당신의 나라이고 우리 모두 충심으로 당신을 환영합니다. 당신은 그 짧은 시간에 그토록 큰 일을 했고 앞으로도 더욱 많은 일 할 사람입니다. 온 인류를 청중으로 세계란 강당에서 당신의 비전과 지혜를 나눠줄 수 있습니다. 당신은 참으로 위대하고 최고의 찬사를 받을 만합니다.”
어쩌면 이 말을 문 선생님께도 그대로 해드릴 수 있겠습니다. 반세기에 걸쳐 꽁꽁 얼어붙었던 동서냉전의 빙산을 고르비가 녹여 버렸다면 2천여 년에 걸쳐 동서양 간에 쌓이고 내려 깔려온 어둠의 장막을 문 선생님께서 걷어 올려주시고 우리 모두의 가슴 속의 빙산을 하루빨리 녹여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물질과 탐욕에 어둔 눈을 뜨고 참빛을 보아 우주 나그네 코스미안으로 환골탈태(換骨奪胎) 새롭게 태어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대단히 무엄(無嚴)한 표현이 되겠으나 남성 상위를 영어로는 ‘선교사 체위(Missionary Position)’라 하지요. 우리말 ‘감투거리’와는 정 반대되는 뜻으로요. 그리고 영어에는 스스로를 낮추어 아랫사람에게 짐짓 겸손하게 은혜나 베푸는 듯이 겸허한 덕색(德色)질을 하고 생색(生色)낸다는 뜻으로, 함께(con)와 내려간다(descend)란 두 단어를 합성한 condescend란 복합어가 있지요. 본래 선교사란 종교를 널리 전도 전파하는 사람을 일컫는 것이었겠지만 주로 기독교의 외국 전도에 나선 사람을 지칭해 그렇게 불러온 것 같습니다.
이와 같은 선교사들은 어디까지나 condescend하는 입장에서 무지몽매(無知蒙昧)하고 미개(未開)한 야만인(野蠻人)들을 계몽(啓蒙)하고 교화(敎化)시킨다는 소명감(召命感)과 사명감(使命感)에 불타는 광신적(狂信的), 정신적(精神的) 십자군(十字軍)이 아니었습니까.
예수가 사람의 탈을 쓰고 지상에 나타난 하느님으로 고자세(高姿勢)를 취했었다면 문 선생님께서는 저자세(低姿勢)를 취해 주십시오.
사람에서 출발해서 우리 모든 사람 아니 우주 자연 만물이 하나의 ‘하나님’ 됨을 밝혀 보여 주십시오.
진정한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통일운동은 재래식(在來式) 기독교의 condescend하는 선교 사업으로는 절대로 안 될 일이고, 그 정 반대로 함께 오르는 conascend 하는 것이라야 할 것 같다는 우견(愚見) 아닌 현견(賢見)을 감(敢)히 말씀드려 보는 것입니다.
나와 너, 남과 여, 백과 흑, 선과 악, 하늘과 땅, 선민과 이방인, 따로따로 상(上)과 하(下)로 분리되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고양이가 쥐 사랑하듯 하는 인류애나 이웃사랑이 아닌 참사랑으로 인종과 국적, 사상과 종교, 남녀성벌, 직업의 귀천, 사회계층 불평등과 빈부격차(貧富隔差)의 양극화(兩極化)를 죄다 타파(打破)하고 초월(超越)해 온 인류를 그야말로 한 인간가족으로 통일하는 통일운동에 박차를 가해주십사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 함께 향불처럼 승화되어 하느님으로 피어오르도록 말입니다.
그러면 비틀즈의 일원이었던 존 레넌(John Lennon 1940-1980)이 그의 ‘상상해보게(Imagine)’란 노래로 꾼 꿈이 하나의 예언 같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소아(小我)를 벗어난 대아(大我), 곧 천인합입(天人合一)의 무궁(無窮我) 코스미안으로 무궁화(無窮花) 아니 코스모스 동산에서 만세동락(萬歲同樂) 할 날이 어서 오기를 고대합니다.
해심(海心) 이태상(李泰相) 배상(拜上)
Cosmian Vision Is the Key
Are Koreans geniuses in concocting trendy catchphrases? They are like “TWIWOL” (“트인낭” in Korean), initials for “Twitting Is Waste Of Life,” and “KAFAIN depression” (“카페인 우울증” in Korean), for Kakao (the operator of Korea’s dominant mobile messaging app Kakao Talk), Facebook and Instagram depression. Many SNS users are reportedly becoming addicts and ending up depressed.
This must be a reflection of the reality we are experiencing these days. The number of Twitter followers of Trump, the embodiment (to some, if not most, people) of abnormality, absurdity, untruth is said to be in the 57,300,000s and his supporters are to be 40% to 50% of U.S. voters.
One may recite this cry along with ‘THE MADMAN: His Parables and Poems’ (1918) by Kahlil Gibran (1883-1931):
THE PERFECTWORLD
"God of lost souls, thou who art lost amongst the gods, hear me:
Gentle Destiny that watchest over us, mad, wandering spirits, hear
hear me:
I dwell in the midst of a perfect race, I the most imperfect.
I, a human chaos, a nebula of confused elements, I move
amongst finished worlds ㅡ
peoples of complete laws and pure order, whose thoughts are assorted, whose dreams are arranged, and whose visions are enrolled and registered.
Their virtues, O God, are measured, their sins are weighed,
and even the countless things that pass in the dim twilight of neither sin nor virtue are recorded
recorded and catalogued.
Here days and nights are divided into seasons of conduct and governed by rules of blameless accuracy.
To eat, to drink, to sleep, to cover one’s nudity, and then to be weary in due time.
To work, to play, to sing, to dance, and then to lie still when the clock strikes the hour.
To think thus, to feel thus much,
and then to cease thinking and feeling when a certain star rises above yonder horizon.
To rob a neighbor with a smile,
to bestow gifts with a graceful wave of the hand, to praise prudently, to blame cautiously,
to destroy a soul with a word,
to burn a body with a breath,
and then to wash the hands
when the day’s work is done.
To love according to an established order, to entertain one’s best self in a preconceived manner, to worship the gods becomingly, to intrigue the devils artfully ㅡ and then to forget all as though memory were dead.
To fancy with a motive,
to contemplate with consideration,
to be happy sweetly,
to suffer nobly-
and then to empty the cup
so that tomorrow may fill it again.
All these things, O God, are conceived with forethought,
born with determination, nursed with exactness, governed by rules, directed by reason,
and then slain and buried after a prescribed method.
And even their silent graves that lie within the human soul are marked and numbered.
It is a perfect world, a world of consummate excellence, a world of supreme wonders, the ripest fruit in God’s garden, the master-thought of the universe.
But why should I be here, O God,
I a green seed of unfulfilled passion, a mad tempest that seeketh neither east nor west,
a bewildered fragment from a burnt planet?
Why am I here, O God of lost souls, thou who art lost amongst the gods?"
Nevertheless, crying and wailing over the reality we are facing will be so futile.
Since there’s no answer to our questions, we’ve got to answer them ourselves.
Even though ours is not 'the perfect world,' we are born with the perfect key to turn our chaotic world into Cosmos. The key is none other than one’s Cosmian Vision of Love Arainbow.
'The Cosmian Way'
“I’m bored.” It’s a puny little phrase, yet it has the power to fill parents with a cascade of dread, annoyance, and guilt.
Thus begins The New York Times Sunday Review (February 3, 2019) Opinion Column article “Let Children Get Bored Again” by Pamela Paul, the editor of The Book Review and a co-author of the forthcoming book ‘How to Raise a Reader’ by Maria Russo and Pamela Paul (published in September 2019). “Boredom spawns creativity and self-sufficiency,” she argues.
‘The Artist’s Way’ by Julia Cameron (1948 - ) has sold more than four million copies, as the author puts it, “that has been a lodestar for blocked writers and other artistic hopefuls for more than a quarter of a century.”
The first printing was about 9,000 copies, said Joel Fotinos, formerly the publisher at Tacher/Penguin, which published the book.
According to Mr. Fotinos, there was concern that it wouldn’t sell. “Part of the reason,” Mr. Fotinos said, “was that this was a book that wasn’t like anything else. We didn’t know where to put it on the shelves - did it go in religion or self-help? Eventually, there was a category called 'creativity,' and 'The Artist’s Way' launched it.”
Now an editorial director at St. Martin’s Press, Mr. Fotinos said he is deluged with pitches from authors claiming they’ve written 'the new Artist’s Way.'
“But for Julia, creativity was a tool for survival,” he said. “It was literally her medicine and that’s why the book is authentic, and resonates with many people.”
Needless to say, this must be the case for everybody, young and old, not just for writers and so-called 'artists.' Each and every one of us was born with 'creativity' in order to swim, not to sink.
Just as Kahlil Gibran (1883-1931) comments in this book of aphorisms, poems, and parables, ‘Sand and Foam (1926)':
"I am forever walking upon these shores,
Betwixt the sand and the foam.
The high tide will erase my foot-prints,
And the wind will blow away the foam.
But the sea and the shore will remain
Forever.
Once I filled my hand with mist.
Then I opened it and lo, the mist was a worm.
And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gain, and behold there was a bird.
And again I closed and opened my hand, and in its hollow stood a man with a sad face,turned upward,
And again I closed my hand,
and when I opened it there was naught but mist.
But I heard a song of exceeding sweetness.
You may have heard of the Blessed Mountain.
It is the highest mountain in our world.
Should you reach the summit
you would have only one desire,
and that to descend and be with those who dwell in the deepest valley.
That is why it is called the Blessed Mountain.
Every thought I have imprisoned in expression
I must free by my deeds."
This is rather The Cosmian Way, methinks.
'Cosmian Way Is the Way to Seek'
“Nobody knows everything about anything.”
This is one of the principles of General Semantics launched in 1933 by Polish American originator Alfred Korzybski (1879-1950) with the publication of ‘Science and Sanity: An Introduction to Non-Aristotelian Systems and General Semantics.'
In other words: “We cannot imagine, think, say, understand, know all about anything or anyone ㅡ including ourselves.”
“길 없는 길” (The Way Without a Way) is a four-volume narrative written by South Korean writer Choi In-ho (1945-2013) about the life journey of the famous Korean Buddhist Seeker 경허(Gyunghuh 1849-1912).
The core message of this book ‘Cosmian Rhapsody’ (2020) may be put this way:
Cosmian Way is the way for us all to seek.
이어서 최근 (2021년 7월 23일자에 올린 칼럼도 옮겨보리라.
[이태상 칼럼] <‘라구요’의 자명한 이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인도발 ‘델타변이’ 바이러스가 확산하고 한국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두기의 최고 단계가 적용된 지 일주일이 지났지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세는 꺾이지 않고 있다는 보도다.
2021년 7월 21일자 미주판 한국일보 오피니언 칼럼 ‘라구요의 역설’에서 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은 이렇게 적고 있다.
<‘라구요’의 역설>
"‘라구요’라는 제목의 노래가 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으로 시작해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 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로 끝나는 강산에 노래인데 이산가족인 부모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가사에 담았다고 한다.
가사에서 “아버지는 죽기 전에 꼭 한번 고향을 가보고 싶어 했었다”라고 간접화법으로 전하는 것보다는 본인의 말을 인용하면서 ‘…라고 말했다’는 표현을 쓴 것이 너무 절절한 느낌을 준다. 이 ‘라구요’는 좋은 노랫말 가요상을 받기도 했고 2018년 4월에는 강산에 씨가 평양공연에 참가해 고인이 된 부모님을 생각하며 이 노래를 불러 남북한 실향민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었다.
장수시대인 요즘 나이와 연관된 두 가지 상반된 주장이 강하게 격돌하고 있다. 한쪽에서는 70, 80 된 노인들이 텔레비전에 나와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몸을 흔들어대고 목청을 높인다. 1970년대에 방송국에서 ‘인생은 60부터’라는 텔레비전 공개 프로를 제작한 일이 있었는데 지금의 80세가 대강 그때의 60세에 해당되기는 했었다. 그렇다고 ‘사랑하기 딱 좋은 나이’라니.
또 다른 한켠에서는 30대의 젊은 당 대표가 나와 ‘꼰대는 가라’고 소리를 치자 50대 60대의 정치인들이 ‘나이 먹어 죄송하다’는 듯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가 하면 청와대도 그 분위기에 편승해 느닷없이 90년대 생 비서관을 임명했다. 남들이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부르고, 남들이 ‘90년대 생이 온다’라는 책을 탐독한다고 ‘라구요’의 의미를 견강부회(牽强附會)할 일이 아니다.
나이 많은 게 벼슬이 아닌데 세상의 가치를 나이순으로 서열화하는 것도 나쁘지만 나이가 젊다는 이유만으로 세상의 흥망성쇠를 온통 자기네가 짊어진 듯한 착각은 말아야 한다. 나이 든 사람 중에 진보적이고 혁신적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얼마든지 있고, 젊은이 중에도 매우 보수적이거나 시대정신과 역사 인식은 외면한 채 대중의 인기에만 휩쓸려 살아가는 이들이 너무 많다.
대통령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정치철학이나 식견이라고는 없는 사람이 남이 박수쳐 준다고 대통령선거에 나가겠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거니와 대통령이 무슨 어린이회장 자리도 아닌데 자기 아버지가 ‘대한민국을 밝혀라’고 했다며 대통령을 해보겠다는 것은 구상유취(口尙乳臭)한 행동이다. 대통령 할 사람은 ‘라구요’가 아니라 세상을 깨우치는 우렁찬 자기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
지금쯤은 어떤 나라를 만들 것이며 왜 대통령이 되려는 것인가에 대한 차분한 논리나 설명이 나와야 한다. 그런 모습들은 없이 장터에 나온 떠돌이 장사꾼들 마냥 호객행위만 요란하다. 야당이 그러면 여당이라도 모범을 보여야 하련만 볼썽사나운 난타전만 벌이는 가운데 앞장선 사람 중 한쪽은 너무 가볍고, 한쪽은 너무 무겁고…. 김대중 대통령처럼 두루 갖춘 인물이 아쉬운 시절이다."
이렇게 '두루 갖춘 인물(지도자)'가 나오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먼저 그런 인물이 돼야 하리라.
이런 뜻에서 지난 2020년 4월 17일자 코스미안뉴스에 올린 우생의 졸문을 우리 다 함께 되짚어보자고 아래와 같이 옮겨본다.
[이태상의 항간세설] 코스미안이 된다는 것은 영원한 젊음이어라
오우가(五友歌)는 고산 윤선도가 자연의 다섯 가지를 벗으로 상정해 쓴 여섯 수의 연시조로,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잘 나타내 시조를 절묘한 경지로 이끈 작품으로 꼽힌다. 다섯 가지란, 물(水), 돌(石), 소나무(松), 대나무(竹), 달(月)을 말한다.
내 벗이 몇이냐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구나
두어라 이 다섯 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어부사시사(漁父四時詞)는 보길도의 부용동에서 지은 작품으로, 어부의 사계절을 각각 10수씩 노래한 40수의 연시조이다. 여기서 어부란 생업으로서 고기를 잡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세상과 떨어져 강호에 은거하는 선비 즉 윤선도 자신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동풍이 건듯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동호를 돌아보며 서호로 가자스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앞산은 지나가고 뒷산은 나아온다.
요즘 한낱 미생물에 정복당해 만물의 영장이란 인류가 전 세계적으로 쏟아지는 실업자와 자택 근무에, 휴교령의 재택학습으로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 집콕 신세가 되다 보니 코로나바이러스를 달래느라 혼술 홀찍 홀짝하면서 가정폭력이 증가하고 스트레스, 우울증, 분노, 절망감, 공포심, 공황장애 등 사람들의 정신건강이 악화되고 있다.
이럴 때 자발적(自發的)인 자가격리(自家隔離)의 선구자(先驅者) 두 사람이 떠오른다. 위에 일부 인용한 ‘오우가’와 ‘어부사시사’의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와 미국의 철학자 시인 수필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1917-1862) 말이다.
소로의 저작 중 ‘월든(Walden: the Life in the Wood, 1854)’과 ‘시민의 불복종(Resistance to Civil Government, 1849)’은 한글 번역본도 나와 있고 그는 잘 알려진 대로 대표적인 환경론자(environmentalist), 사형제도 폐지론자, 노예 해방론자 (abolitionist), 민속인류학자 (ethnologist), 반(反)제국주의자 (anti-imperialist), 지구주의자(globalist)로 레오 톨스토이 (Leo Tolstoy, 1828-1910), 마하트마 간디(Mahatma Gandhi, 1869-1948) 그리고 마틴 루터 킹 주니어(Martin Luther King, Jr., 1929-1968)에게도 큰 영향을 미쳤다.
자연(Nature)에 전적으로 몰입(沒入)함으로써, 그것도 식물과 계절과 별들과 네 발이나 날개 또는 지느러미 달린 모든 피조물에게 교육을 받아 배워야 한다고 확신한 소로는 이런 말을 했다.
“우주 속으로 인간과 인간의 기구나 조직이 떼로 몰려드는 그 어떤 가치도 나는 인정할 수 없다. (I do not value any view of the universe into which man and institutions of man enter very largely.)”
혁명은 한 번에 한 사람씩 나 자신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는 것 (Revolution began at home, one person at a time)이라며 소로는 이렇게 역설한다.
“우리 모두의 성공을 다 함께 누리려면 우선 우리 각자 한 사람씩 개별적으로 성공해야 한다. (We must first succeed alone that we may enjoy our success together.)”
한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명상(冥/暝想)에 침잠(沈潜)한 요가 수행자는 제 나름의 창조에 동참하는 것으로, 신(神)의 향기(香氣)를 들이마시고 경이(驚異)로운 우주의 음악 소리를 듣게 된다. 어느 정도까지는, 드문 일이지만 때때로 나 또한 그런 요가의 수행자가 된다. The yogi, absorbed in contemplation, contributes in his degree in creation; he breathes a divine perfume, he hears wonderful things. To some extent, even I am a yogi.”
아, 정녕코, 고산 윤선도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우리보다 이 지구별에 먼저 왔다 간 코스미안들이었음에 틀림 없어라.
미국 예술가 작가 주나 반스(Djuna Barnes 1892-1982)는 ‘죽음을 알게 허락받은 것이 삶(Life, the permission to know death)’이라고 했다.
이 말은 언제일지는 미정(未定)이지만 조만간(早晩間) 우리 모두 죽는다는 사실을 의식함으로써 우리 삶을 더 잘 살 수 있다는 뜻이리라. 죽는다는 사실 때문에 우리가 삶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일 게다. 삶이 유한(有限)하기에 소중(所重)하지 않은가. 소풍(逍風)이 끝나지 않고 계속된다고 하면 더 이상 소풍이 될 수 없지 않겠는가.
로마의 서정시인 호레이스(Quintus Horatium Falccus, known as Horace 65BC-8BC)도 ‘한밤이 우리 모두를 기다리고 있다 (One night awaits us all)’이라고 읊지 않았나.
그래서 ‘티베트의 사자(死者)의 서(書) 바르도 퇴돌(The BVardo Thodol, commonly known as The Tibetan Book of the Dead)’ 같은 죽음의 여정을 인도하는 지침서인 죽음에 대한 안내서가 있겠지만, 알 수 없는 미지(未知)의 세계, 죽음에 대한 것보다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건 삶에 대한 것 아닐까.
미국 시인 새뮤엘 울만(Samuel Ullman 1840-1924)의 다음과 같은 말들은 아직 살아있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지표(指標)가 되리라.
사람이 사람다워진다는 것은 고귀한 위엄 있게 생각과 느낌을 말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다. 이런 품위를 가늠하는 것은 좌절감을 느낄 때마다 얼마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갖느냐다. Maturity is the ability to think, speak and act your feelings within the bounds of dignity. The measure of your maturity is how spiritual you become during the midst of your frustrations.
청춘(靑春)은 인생의 한 시기(時期)가 아니고 정신상태(精神狀態)이다. 앵두 빛 뺨이나 붉은 입술 또는 유연한 무릎이 아니고 의지(意志)의 발로(發露)이고 상상의 날개이며 감정의 열정(熱情)이다. 생명의 깊은 샘으로부터 치솟는 싱그러움이다. Youth is not a time of life; it is a state of mind; it is not a matter of rosy cheeks, red lips and supple knees; it is a matter of the will, a quality of the imagination, a vigor of the emotions; it is the freshness of the deep springs of life.
아무도 나이를 먹는다고 늙지 않고 이상(理想)을 저버릴 때 늙기 시작한다. 나이는 피부에 주름살을 만들지만 삶의 열정을 잃으면 영혼(靈魂)이 시든다. Nobody grows old merely by living a number of years. We grow old by deserting our ideals. Years may wrinkle the skin, but to give up enthusiasm wrinkles the soul.
너는 네가 갖는 자신감만큼 젊고 네가 갖는 공포심만큼 늙는다. 네가 갖는 희망만큼 젊어지고 네가 갖는 절망만큼 늙는다. You are as young as your self-confidence, as old as your fears; as young as your hope, as old as your despair.
모든 사람 가슴 속에는 녹음실이 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과 희망과 용기의 환호성(歡呼聲)이 전달되는 한 너는 젊다. In the central place of every heart, there is a recording chamber; so long as it receives messages of beauty, hope, cheer and courage, you are young.
삶의 의욕(意欲)을 다 잃고 네 가슴이 비관(悲觀)의 눈더미와 냉소(冷笑)의 얼음덩이로 뒤덮이는 날, 그때 비로소 너는 늙어버린 것이다. When the wires are all down and your heart is covered with the snows of pessimism and the ice of cynicism, then, only then, have you grown old.
아, 그러니 코스미안이 된다는 것은 영원한 젊음이어라.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