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진형 칼럼] 환갑(還甲)에 걷는 팔룡산 내리막길

하진형

무더운 여름이 지나가고 선선한 바람이 기분 좋게 불어오던 날, 27살 적은 친구와 함께 야트막한 팔룡산을 오른다.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문득 기분 좋은 일들이 내 주위에 참으로 많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세상은 무엇이든 받아들이기 나름이다. 비록 높지 않은 산이지만 땀을 내기엔 제격이다. 생수 두 병, 배 한 개가 든 배낭을 멘 아들을 뒤따른다.

 

부자간의 등산길 대화는 깊고 여유롭다. 서로를 마음을 부담 없이 나눈다는 게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그리고 때론 산이 고맙다는 생각을 한다. 낯익은 코스지만 오를 때마다 주위의 신록이 변해가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파른 등산로 곁에 자리하고 있는 유택(幽宅)들이 편안해 보인다.

 

산의 정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곳곳에 수많은 사연들이 서려 있다. 벼가 누렇게 익어가던 곳은 상전벽해촌이 되어있고 육지를 깊게 파먹고 들어온 바다에는 윤슬이 일렁이며 주변 물체들을 숨긴다. 산속의 수원지는 용의 형상을 닮은 산등성이를 바라보며 조용히 숨을 쉬고 있다. 발아래에서 올라오는 바람을 맞으면서 배를 깎아 먹고 쓰레기를 비닐봉지에 담는다.

 

이젠 내리막길이다. 아들을 앞세우고 걷는 기분 좋은 하산길이다. 절반쯤 내려왔을까? 가파른 길에서 울고 있는 아이를 지나칠 수 없어서 업고 조심스럽게 내려오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잠시였지만 참으로 조심해서 걸었다. 아이 엄마는 고마워했지만 난 아이가 고마웠다.

 

대체로 내리막길은 오르막에 비해 덜 힘든다. 편한 내리막길을 걸으려면 가파른 길을 오른 뒤에야 비로소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내리막길은 조심스레 걸어야 한다. 힘들지 않다고 뛰어가다가는 무릎을 상하기 일쑤이고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무거운 짐을 지고 내려갈 때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여기서 무거운 짐이란 물리적인 무거움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여정은 무겁다. 아무리 작은 것도 이룸에 있어서는 무겁고 힘든다. 스트레스나 걱정이 없는 삶은 없다. 이는 파도가 없으면 바다가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또한, 삶의 여로에서 큰 고난을 겪을 때는 더욱 그렇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어려움에 던져지거나 위기에 봉착하게 되면 더 이상 살기 싫은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변하고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도 있다. 마치 아무리 거센 태풍도 일 년 내내 불지 않는 것처럼. 굳이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되뇌지 않더라도 때가 되면 지나간다.

 

내리막길은 여러 갈래로 나뉠 때도 있다. 가까운 길이 대부분 가파른 반면에 걷기 수월한 길은 멀리 돌아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리막길도 때론 쉬어야 한다. 세상엔 아무리 가벼운 것일지라도 오래 들고 있으면 무거워지고 내리막길도 오래 걸으면 피로가 겹친다. , 같이 걷는 일행이나 이웃들의 무탈을 위해서도 쉬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 사는 세상에 눈을 돌려보면 잉여 농산물이 많음에도 굶는 사람이 있다. 풍요의 세대에 부의 편중을 살피는 것, 소외되어 외로워하는 이를 보살피는 것이 또 다른 내리막길의 발자국인지도 모른다. 세상은 상호의존의 원리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으면 안 된다. 곧 개개인의 나무보다는 모두의 숲이 되자.

 

환갑 나이를 지내며 퇴직하고 내리막 같은 길을 걷지만 나에겐 제2의 출발을 위한 전직(轉職)일 뿐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있겠지. 오르막의 열정을 내리막의 겸손과 부드러움으로 극복하면서 이웃과 조심스레 걷다보면 기분 좋은 날도 많을 것이다.



[하진형]

행정안전부 등록 범죄안전 강사

이순신 인문학포럼 대표(이순신 국제센터)

3회 코스미안상 금상

칼럼니스트

수필가

bluepol77@naver.com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0.15 10:39 수정 2021.10.1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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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