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자·30
-지킴이 할아버지의 죽음
시인의 의자가 갈 곳을 잃었습니다. 웅덩이 지킴이 할아버지가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세상은 가난하고 고운 마음시로 사람답게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기 힘들게 변해버렸습니다. 농업국가에서 경제개발 계획을 추진하고 새마을 운동으로 잘살아보겠다고 열심히 일해 갑자기 잘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욕심은 눈덩이 굴리듯이 더 커져서 더 많이 재물을 가지겠다고 눈에 불을 켰습니다.
사람답게 이웃들과 오순도순 살아왔던 조상님들께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너무나 부끄럽게 변해버렸습니다. 과학문명이 발달하여 모든 생활이 편리해지고 중노동을 기계가 대신해 힘들게 일을 하지 않고 배불리 사는 시대가 되었지만 인간다운 마음은 사라지고 이웃과 더불어 살기를 포기하고 제 욕심만 채우려 들었습니다. 정신이 모두 병들어갔습니다. 그러니 어렵고 힘든 이웃이 죽든 말든 시인의 의자에 앉은 사람들은 천대를 받는 정말로 인간들이라고는 할 수 없는 악마들의 세상으로 변해갔습니다.
웅덩이 지킴이 할아버지는 끝내 병석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쓸쓸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할아버지가 죽자 할아버지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던 먼 친척이 나타났습니다. 할아버지가 살고 있는 다 쓰러져간 집터를 차지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법무사를 찾아다니며 할아버지 소유의 재산을 자기 소유의 땅으로 서류를 꾸몄습니다.
그리고 부동산에 그 땅을 내다 팔겠다고 내놓았습니다. 땅값이 꽤 많이 나갔습니다. 그는 할아버지의 땅을 자기 땅으로 만들어 팔았습니다. 땅을 산 사람은 장례식장을 짓겠다고 그 땅을 샀습니다.
곧바로 중장비가 동원되어 장례식장 짓는 공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모두 도시로 떠나고 시골에는 늙은신 분들만 남아있어 요양원과 장례식장이 돈벌이가 되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의자는 다시 쓰레기장에 버려졌습니다. 쓰레기장 옆 갈대밭에 처박혔습니다. 신경림의 「갈대」 시를 쓰고 있었습니다.
갈대
언제부터 갈대는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었다.
그런 어느 밤이었을 것이다.
갈대는
그의 온몸이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았다.
바람도 달빛도 아닌 것.
갈대는 저를 흔드는 것이
제 조용한 울음인 것을 까맣게 몰랐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시인답게, 인간답게 살아보려는 착한 사람들의 내면의 슬픔이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오는 시입니다. 우리 사람들은 낮에 일하고 잠자리에 드는 시간이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가끔 생각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이 죽게 되면 장례식장을 찾아서 조문을 가고, 그곳에서 잠시 자신도 언젠가는 저렇게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 다 부질없다는 것을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뒤돌아서면 자신의 죽음이 가깝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욕심을 부리고 이웃을 해코지하고 못된 짓을 하기도 합니다.
그 사람의 됨됨이는 그가 죽은 뒤에 그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들의 숫자에 달려있습니다. 평소에 죽은 이로부터 정신적인 멘토로 존경을 해왔거나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거나 그의 문학이나 예술작품으로 위로를 받았던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애도하고 그의 고귀한 정신을 오래도록 기억하고 후대에 남기려 들 것입니다.
살아있을 때 이웃을 슬프게 하고 많은 이들에게 악행을 저질렀던 사람은 그 사람이 죽었을 때 애도하기는커녕 쓰레기로 대접을 받는 외로운 죽음이 되는 것이지요. 시인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이며, 어렵고 힘든 사람에게 시로 희망의 등불을 켜주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자신의 명예를 드높이고, 시인임을 뽐내기 위해 시인이라는 가면을 쓰고 엉터리 시를 쓰며 뻐기는 사람이 어찌 시인이겠습니까? 추악한 내면을 드러내면서 많은 이들에게 스스로 시인의 이름을 팔아 시의 고귀한 가치를 짓밟는 추악한 악마의 탈을 쓴 사람일 수밖에 없겠지요? 이런 가짜 시인들이 신경림의 “갈대”를 읽고 부디 깨달아 진정한 시인으로 재탄생하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하나님만이 시인들의 내면을 모두 들여다보고 이들을 깨우치게 할 뿐이기 때문에 저도 똑같이 우둔한 인간에 지나지 않는 사람이어서 저부터 진정한 시인으로 실천하겠다고 다짐하면서 5.18민주 영령을 참배하는 기분으로 갈대밭에 버려진 시인의 의자를 찾아갔습니다. 교회를 나갔던 옛 기억을 떠올리며 전도서 1장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 되도다”, 그리고 8절까지의 성경 구절을 꺼내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