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었습니다. 도심에서 멀리 나가지 않아도 노랗고 빨간 가로수를 감상하기에 그만입니다. 돌아온 가을. 계절이 돌아오는 것은 변함없는 진리지만, 돌아온 가을이 이전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단풍의 모습도, 거리의 나무가 연출하는 풍경도 매번 다른 주관식입니다. 당연히 우리 각자의 삶도 주관식입니다.
그런데…. 오랜만에 객관식 문제를 풀게 생겼습니다. 동생은 무슨 자격증 시험인가를 준비하면서 열심히 사지선다형(四枝選多型)의 문제를 풀고 있습니다, 이번에 꼭 합격해야 한다고 하면서 말이지요. 돌아보니 객관식 문제를 접한 지 참 오래된 것 같습니다. 초, 중, 고를 거치면서 죽으라고 문제를 풀고, 대학에 들어가서야 주관식 답안을 내게 되었습니다. 물론 대학에서 몇 년을 보내면서, 고시에 오지선다가 적용된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요.
이후, ‘아, 인생은 주관식이네’라는 것을 처절하게 인식하면서 삶의 묘미를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선거철이면 객관식을 접하게 됩니다. 특히 얼마 뒤에 치를 선거에선 고민하고 고민하며 답을 고르게 생겼습니다. 어느 언론에서는 비호감도 조사라는 것을 시행하고, 어느 후보자는 “놈놈놈-나쁜 놈, 이상한 놈, 추잡한 놈”이라는 재미있는 표현을 사용하더군요. 낯익은 말이어서 기사를 클릭해 자세히 보니, 전에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본 기억이 납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결코 웃음이 나지를 않습니다. 자영업자들이 다 죽겠다고 아우성치는 상황에서, 백신 접종률이 70%를 웃돌았다고 해서 경계심을 누그러트리기엔 현실이 녹녹지 않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망가진 경제를 생각하면 위기는 늘 동반하고 있으니까요. 개인적, 사회적, 그리고 인류 공동의 난제가 산적해 있습니다. 환경오염과 기후변화의 위기가 점점 숨통을 죄어오고 있습니다. 우리 후손들…. 참, 어떡해야 하지요.
게다가 뉴스를 보면 울화 치미는 일이 한, 둘이 아닙니다. 평범한 사람은 일평생 모으기도 어려운 단위의 돈을 퇴직 일시금으로 받는 것을 예사로 아는가 하면, 몇몇이 무슨 동화에 나옴 직한 조직 같은 것을 만들어서 수천억대 돈을 만드는 것에 재미가 들렸는지, 이곳저곳 쑤셔가며 작당한 흔적이 드러납니다. 전에 듣도 보도 못한 소식을 접하면 울화가 치밀고 티브이를 당장 꺼버리고 싶지만, 그렇다고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살 수는 없으니 참, 난감하네요. 어떤 보도(기사)는 ‘문만 열면 악취가 난다’라고 표현하네요, 판도라의 문이 열리기만 하면 말이지요.
가끔 동네 빵집을 지나다 그냥 지나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따끈한 빵. 고객들은 제빵사가 빵을 만들 때 당연히 손을 깨끗하게 씻고 정성스럽게 빵을 만들어 손님에게 제공한다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지요! 유독 법을 만지작거리는 사람들(뭐, 모두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아닙니다)-국민을 위해 법을 다루는 척하는데, 뒤로는 돈 되는 일이겠다 싶으면 숟가락 갖다 얹어 놓으니…. 참! 그런 사람들이 다 해 잡수니, 사회정의니 사회 불평등이니 떠드는 말은 다 허공에 떠도는 말이 되지 않겠습니까. (물론 대다수 법조인이 건강하고 훌륭한 분이라는 것 믿습니다만).
그동안 객관식 문제를 참 많이 풀어왔습니다. 그런데 선거 때만 되면 다시 객관식에 봉착하니…. 최선의 답이 없으면 마지못해 차선의 답이라도 선택해야 하는 건가요. 단풍이 물드는 계절. 가을이 깊어가는 만큼, 고민도 깊어갑니다. 창밖 고즈넉한 풍경 속으로 차향은 천 리를 달려가는데 말입니다.
[신연강]
인문학 작가
문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