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자·32
-쓰레기장의 들쥐
시인의 의자 주변에는 날마다 쓰레기차들이 분주히 오갔습니다. 이른바 쓰레기 매립장이라고 하나 매립은커녕 그냥 쌓아놓고 있었습니다. 집수리하고 뜯어낸 건축물 폐기물에서부터 스티로폼, 비닐 플라스틱, 병, 캔 등 재활용이 가능한 쓰레기들도 분리되지 않은 채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들쥐들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19로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사람들을 2주간 격리시켜 코로나바이러스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국에서 격리시켰습니다. 그런데 마침 너무나 많은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때문에 의료기관에서 병상이 넘쳐났습니다. 그래서 웅덩이 지킴이 할아버지의 집터에 지어진 장례식장을 임시로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의 격리 수용소로 사용하기로 했습니다.
시인의 의자가 있는 쓰레기장에는 날마다 격리 수용소에서 먹다가 버린 일회용 도시락 빈 껍데기가 수북이 쌓여갔습니다. 이 격리 수용소에는 모든 음식을 도시락으로 배달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빈 도시락에 먹다 버린 음식을 먹기 위해 들쥐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들쥐들의 숫자는 날이 갈수록 불어났습니다. 코로나바이러스 확진자 숫자만큼 날마다 쓰레기장을 들락거렸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또 들쥐들의 빈 도시락 주워 먹고 찍찍찍, 우당탕탕 떠들어대는 들쥐들의 시낭송을 들어야 했습니다. 도저히 들어줄 수 없는 악마들의 시낭송을 듣는 고역이란 시인의 의자를 고문하는 것과 같았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도종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몹시도 괴로웠다
어깨 위에 별들이 뜨고
그 별이 다 질 때까지 마음이 아팠다
사랑하는 사람이 멀게만 느껴지는 날에는
내가 그에게 처음 했던 말들을 생각했다
내가 그와 끝까지 함께하리라 마음먹던 밤
돌아오면서 발걸음마다 심었던 맹세들을 떠올렸다
그날의 내 기도를 들어준 별들과 저녁하늘을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사랑도 다 모르면서 미움을 더 아는 듯이 쏟아버린
내 마음이 어리석어 괴로웠다
시인의 의자가 있는 쓰레기장에 들쥐들이 불어나 밤마다 시를 읊고 시끄럽게 떠들어대자 그 소문이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들쥐들도 자기 종족들이 들 고양이나 너구리들의 먹이감이 되어 행방불명이 될 때 서로 격리 수용자들이 먹다가 버린 도시락 찌꺼기들을 더 먼저 많이 먹겠다고 다투었던 일을 후회하고는 도종환의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라는 시를 읊기도 했습니다. 이때 시인의 의자는 들쥐도 자기 종족이 죽어가는 것을 슬퍼하기도 하고 제법 사람들 곁에서 오래 살아서 사람들의 흉내를 내고 있었으며, 시인처럼 품격이 있는 시를 낭송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인의 의자에는 최근에 불어난 너구리, 들고양이, 들개, 고라니들이 찾아왔고, 겨울잠에서 깨어나 비실비실하던 뱀, 개구리, 두꺼비들이 찾아왔습니다. 이따끔 까치, 참새 같은 새들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이들은 쓰레기장 주변을 맴돌면서 먹을 만한 것들을 찾아서 뒤져서 먹고 가곤 했습니다.
그러자니 들쥐들은 너구리나 들고양이 등의 먹이가 되어 희생하는 숫자가 날마다 늘어났습니다.
언제부턴가 시인의 의자에는 두꺼비 한 쌍이 살기 시작했습니다. 두꺼비는 시인의 의자 주변에서 맴돌다가 가끔 웅덩이 생태공원으로 엉금엉금 걸어갔다가 돌아오는 일과를 되풀이했습니다. 답답한 장례식장 코로나바이러스 임시 격리 수용소에 갖힌 사람들이 쓰레기장 웅덩이 생태공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옆에 쓰레기장에 초라하게 앉아있는 시인의 의자를 보았습니다. 그 의자 옆에서 웅크리고 앉아있다가 엉금엉금 기어 나오는 흉측한 두꺼비를 보고 그들은 징그럽다고 몸을 움츠렸습니다. 그들은 시인의 의자에서 들려오는 시 읊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두꺼비전
김관식
낯 두껍다. 몸도 두껍다.
얼굴 두껍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환장할 세상
염치없이 들이대는 놈이 떵떵거리는 것을 좀 보게나
거참, 꼴불견이네 그려
정말 어처구니없는 세상이네 그려
사람의 탈을 쓴 도깨비들이 떵떵거리고 사는 세상
여기저기 온통 난장판이네 그려
배웠다는 놈들은 도대체 무엇을 배웠다는 말인가?
사람의 도리조차 배우지 못한 헛공부로 우골탑에 올라
제 잇속 챙기느냐 바쁘게 움직이고
거드름 피우는 저 꼬락서니들 보게나
사람이 사람 노릇 못하면
짐승만도 쓸모가 없다네 그려
짐승은 사람을 위해 몸을 기꺼이 바치지만
우둘투둘 온몸 독기 품은 두꺼비 등 두드러기를 좀 보게나
습지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떼거지로 엉금엉금
마을을 기웃기웃 닥치는 대로 날름날름
혓바닥으로 살생하는 저 망나니
조심 하게나
낯 두꺼운 놈들이 감투 탈 쓰고 가짜 행세
저 놈들이 숨겨놓은 코로나 바이러스 살생부
언제 누가 그 명단에 기록될지 그 누가 알겠는가?
낯 두꺼운 두꺼비를 받들고 살지 않는지
가계부 내역서를 꼼꼼히 살펴 보게나
두꺼비는 절대로 힘없이 죽은 척하는 놈들은 노리지 않는다네
펄쩍펄쩍 뛰는 싱싱한 놈들만을 노린다네
조심하게 그 놈들의 눈치를 살피느냐
피땀 흘린 대가를 치루지 말게나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는
낯 두꺼운 변명은 하지 말게나
두꺼비가 아마 웅덩이 생태공원에서 저지르는 짓들을 들쥐들이 보았던 모양입니다. 들쥐와 두꺼비 모두 서로 쓰레기장 시인의 의자가 있는 한 마을에 살고 있으면서도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서로의 약점을 까밝히는 정말로 눈뜨고 못 볼이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의 의자는 못된 종족들의 타고난 버릇은 어찌할 수 없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시인의 의자는 서정주의 자화상을 떠올리며, 나른한 봄 오후 스르르 잠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자화상
서정주
애비는 종이었다. 밤이 깊어도 오지 않았다.
파뿌리 같이 늙은 할머니와 대추꽃이 한 주 서 있을 뿐이었다.
어매는 달을 두고 풋살구가 꼭 하나만 먹고 싶다 하였으나…
흙으로 바람벽 한 호롱불 밑에
손톱이 까만 에미의 아들
갑오년이라든가 바다에 나가서는 돌아오지 않는다 하는
외할아버지의 숱 많은 머리털과
그 크다란 눈이 나는 닮았다 한다.
스물 세 해 동안 나를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다.
세상은 가도가도 부끄럽기만 하드라
어떤 이는 내 눈에서 죄인을 읽고 가고
어떤 이는 내 입에서 천치를 읽고 가나
나는 아무 것도 뉘우치진 않을란다.
찬란히 틔어오는 어느 아침에도
이마 위에 얹힌 시의 이슬에는
몇 방울의 피가 언제나 섞여 있어
볕이거나 그늘이거나 혓바닥 늘어뜨린
병든 수캐마냥 헐떡거리며 나는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