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죄와 벌

고석근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것뿐이다.

-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러시아의 대문호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는 관 속처럼 좁고 음침한 하숙방에서 인류를 위해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려는 망상을 키운다.

 

그는 증오에 찬 눈으로 자기의 조그만 방을 둘러보았다. 조금만 움직이면 벽에 부딪힐 정도로 곳간처럼 비좁은 방이었다. 누렇게 퇴색한 벽지는 먼지가 부옇게 끼었는데 그나마 군데군데 찢겨져서 보기에도 흉했다. 천장은 어찌나 낮은지 키가 큰 사람은 숨이 컥컥 막힐 뿐 아니라, 머리가 부딪치지나 않을까 염려스러울 정도였다. 가구도 방만큼이나 너절했다.’

 

그는 끝내 전당포 여주인 알료나 이바노브나와 그의 여동생 리자베타 이바노브나를 도끼로 살해한다. 그는 왜 살인자가 되었을까? 사람의 생명만큼 존귀한 게 없는데 그는 왜 가장 극한의 죄 살인을 하게 되었을까?

 

죄와 벌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섬뜩한 전율을 느낀다.

 

20여 년 전 나도 그런 음침한 골방에서 지냈다. 강화 앞 바다의 한 섬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할 때, 나는 누우면 발이 벽에 닿는 좁은 방에서 온갖 공상과 망상에 시달렸다. 좁은 방은 다른 무언가로 태어날 수 있는 자궁이다. 곰은 굴속에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다. 사람은 이런 굴속에서 무엇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짐승은 인간이 된다지만 인간은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라스콜리니코프가 슈퍼맨이 되고 싶어 했듯이 나도 슈퍼맨이 되고 싶어 했다. 그는 인간이 만든 법률, 규칙 위를 날아다니는 인간의 고유한 감정인 양심을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했다. 나도 그런 슈퍼맨을 꿈꿨다.

 

나는 대학원 철학과에 진학해 위대한 사상가가 되고 싶어 했다. ‘불후의 저서제목도 정해 놓았다. ‘이상 사회이 책대로만 하면 세상은 지상 낙원이 되리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졌다.

 

데이트할 때 한 여자에게 이상 사회에 대해 열변을 토해 그 여자(결국 내 아내가 되었다)를 내게 반하게 했다. 인간의 본성이란 세상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나는 인간의 본성을 1차 본성과 2차 본성으로 나누어 사회심리학적으로 분석하고 그 본성에 맞는 사회 구조를 철학적으로 탐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일생일대의 무서운 체험을 했다. 학생 한 명을 무자비하게 때려너무도 심각한 우리나라 교육에 대해 경종을 울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실천에 옮기진 않았지만 생각만 해도 너무나 섬뜩하다.

 

연쇄 살인범들하고 너무도 똑같지 않은가? 한 여자를 죽여 이 세상 여자들의 정절에 대해 경종을 울리겠다는 유영철. 그와 내가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다행히 나는 행동에 옮기지 않아 이렇게 멀쩡하게 살고 있다.

 

인간의 죄는 인간이 인간을 뛰어넘는 인간이 되기로 결심할 때생긴다. 인간은 인간이다. 너무도 당연한 이 명제가 인간을 뛰어 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너무도 쉽게 사라져버린다.

 

인간을 살과 피가 생생히 도는 존재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볼 때 인간은 죄를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나는 라스콜리니코프를 이해한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심오한 인간 이해에 숙연해진다.

 

나는 그 뒤 문학을 만나 인간으로 돌아가려는 치열한 노력을 했다. 만지면 물컹한 살이 닿는 인간, 가냘픈 숨을 쉬는 인간, 그 한없는 부드러움 속에 너무도 존귀한 혼이 깃든 인간, 그대로 행복한 인간, 이런 인간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가끔 나는 괴물이 된다. 내가 한없이 초라해질 때 나는 슈퍼맨을 꿈꾼다. 초라한 몸뚱이를 골방에 처박아 놓을 때 이때가 가장 무섭다.

 

나는 다행히 건전하게살아가고 있다. 다 행운일 따름이다. 우리 사회는 사람들을 자꾸만 골방에 처박아 넣는다. 무섭다. 우리 사회에 수시로 출몰하는 괴물들은 이렇게 탄생한다.

 

 

내 가슴엔

멜랑멜랑한 꼬리를 가진 우울한 염소가 한 마리

살고 있어

......

빈둥빈둥 노는 듯하던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며

담담하게 담배만 피우던 시절

- 진은영,대학시절부분

 


나는 빈둥빈둥 노는 듯하던 빈센트 반 고흐를 생각하며대학시절을 보내지 못했다.

 

항상 조급했다. 36세에 중년의 위기가 왔다. ‘빈둥빈둥 노는 듯한인간이 되기 위해 긴 방황을 해야 했다.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 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전명희 기자
작성 2021.11.18 10:56 수정 2021.11.18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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