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식의 양심선언] 시인의 의자·40

김관식

시인의 의자·40

-가지 않는 길

 

봄이 왔습니다. 시인의 의자 곁에서 별꽃이 뿌리를 뻗더니 작은 꽃이 피기 시작했습니다. 눈송이 크기만 한 이 앙증맞은 별꽃은 시인의 의자의 동무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봄바람은 부드러웠습니다. 차가우면서도 따스한 온기가 느껴졌습니다. 강변의 자전거 도로에는 겨우내 발길이 끊겼는데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오가기 시작했습니다.

 

시인의 의자로 바빠졌습니다. 힘겹게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멈춰선 백발이 희끗희끗한 장년층은 시인의 의자에 앉아 한숨을 내쉬며 말했습니다.

이제 살아온 날 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 사는 날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가야지. 엊그제 가슴 두근거리며 데이트를 했던 강변인데, 마음은 그때 그대로인데 몸이 말을 안들어


시인의 의자는 살아온 날이 백발처럼 희미하게 지워진 기억을 끄집어내며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예전과는 다른 몸,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오르고 힘겨워 자신의 몸이 매우 쇠약해졌음을 깨달았습니다. 지난날을 되돌아보며 다시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강물이 상류에서 하류로 흘러서 가듯이 한번 흘러간 강물이 되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굿둑이 없었더라면 밀물 때 되돌려질 수도 있으련만 그런 꿈은 영영 사라졌습니다.

 

시인의 의자에는 봄볕이 내려와 앉았습니다. 봄 햇살이 녹슨 나사못을 어루만졌습니다. 판자는 손금처럼 여러 갈래로 틈이 생겨났습니다. 그 틈에는 작은 먼지들이 들어와 틈을 메꾸었고, 그 먼지 틈에는 풀씨들이 날아와 싹을 틔우고 있었습니다. 풍화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의 의자도 자연으로 돌아갈 준비를 서두르는 모양입니다.


시인의 의자는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건 바로 자기 자신뿐이다. 기존의 가치 따위에 얽매이지 말고 스스로 가치를 창조하며 현실을 살아라라는 니체의 말을 떠올렸습니다사람들이 저마다 자신의 행복을 위해 자신이 좋아하는 가치를 선택하고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 의미를 부여해가며 자신을 합리화하고 살아가나 대부분 기존의 가치에 따르며 살아가기 마련이다. 쉽고 보다 편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선택하고 그것도 걷기 싫어서 차를 타고 가고자 하는 곳에 빨리 도달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합니다.


시인의 길을 선택한 사람은 어느 시인이나 쉽게 가는 길을 선택하기 마련이지만 이런 길을 선택하면 시인으로서의 존재감이나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기란 어려울 것입니다. 무언가 자기 나름대로 창의적인 가치를 선택하려는 시인들은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합니다. 그 길이 쉽지 않는 길이고 고난이 따를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새로운 길을 선택하고 개척해서라도 시인으로서의 존재가치를 빛내고 싶은 도전의식이 강한 시인은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합니다.


누구나 시인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시인다운 시인, 그 누구도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고 자신의 전 생애를 건 시인은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이런 시인들이야말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 깊은 명작을 남길 확률이 높은 것이다. 그저 시인들이 끼리끼리 어울려서 하는 시인 노릇은 시인으로서의 의미 부여라고 존재감을 느끼기 위한 자기 위안에 불과할 뿐입니다.

 

인간이 결국에는 혼자 남듯이 문학작품도 혼자 하는 작업이다. 명작은 시인의 고뇌의 산물이며, 여러 사람이 어울려 하는 문학활동이란 시인으로서의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사람이 완전한 사람이 없듯이 시 또한 완벽한 시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시는 시인이 살아가는 현실의 공통분모를 압축해서 공감을 얻을 때 당시의 명시가 되고 그 고뇌가 지극히 인간적인 고뇌로 통시적인 정서 경험을 소환할 때 시공간을 초월한 명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이 쓴 작품이 명작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시집 한 권에 한 작품만이라도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지면 성공한 시집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저 깊은 사유와 형상화의 과정도 거치지 않고 관념의 자동기술적인 기록에 지나지 않는 시에 너무 많은 혼자만의 의미 부여하는 것은 명작과는 거리가 멀 뿐입니다. 자신만이 명작으로 생각하는 지극히 주관적인 우물안 개구리식의 작품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시의 성패는 주관적인 정서를 객관적인 정서로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었을 때 명시가 되는 것입니다.


명시를 창작하려면, 첫째, 시를 보는 안목을 길러야 합니다. 둘째, 아무도 가지 않는 시인의 길을 선택하고 자기만의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시를 창조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셋째, 주관적인 정서보다는 객관적인 정서로 표현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어야 합니다. 넷째, 감각기관을 최대한 활용해서 묘사해야 합니다. 다섯째, 직접적인 정서 경험과 멀어지는 관념어, 추상어의 시어 사용하여 창작한 시는 공감을 얻지 못합니다.

 

꾸준히 노력하고 시를 쓰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명작이 탄생하지 않습니다오늘은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여 명작을 남기는 시인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미국의 고전적인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는 길을 감상해보도록 하시지요.

 

가지 않는 길

 

노란 숲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나는 두 길을 다 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오랫동안 서서 한 길이 굽어 꺾여 내려간 데까지,

바라다볼 수 있는 데까지 멀리 바라다보았습니다.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그 길에는 풀이 더 있고 사람이 걸은 자취가 적어,

아마 더 걸어야 할 길이라고 나는 생각했었던 게지요.

그 길을 걸으므로, 그 길도 거의 같아질 것이지만.

 

그날 아침 두 길에는

낙엽을 밟은 자취는 없었습니다.

,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을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누구나 두 갈래 길에서는 망설입니다. 사람들은 대부분은 쉬운 길을 택합니다. 험한 길은 누구나 꺼려하는 가지 않는 길입니다. 그러나 급한 사정이 있어 빨리 가야 하는 사람은 험한 지름길을 선택하지요. 죽음을 무릅쓰고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한 사람은 노력한 만큼 많은 것을 경험하게 되지요. 가지 않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에게는 겪은 고통만큼 큰 보람과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경우가 더 많겠지요.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

 

이정민 기자
작성 2021.12.27 10:09 수정 2021.12.2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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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