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세월을 생각하게 하는 송구영신(送舊迎新)의 절기다. 세월은 강이기도 하고 배(船)이기도 하다. 이 세월 배를 타고 헌 해가 가고, 저만치 새 해가 오신다. 이 세월의 배에는 황금돼지가 타고 있으니 얼마나 귀한가. 야듀! 2018 무술년(戊戌年), 웰컴! 2019 기해년(己亥年). 달력으로는 율리우스력(태음력)과 그레고리력(태양력)의 해(年)가 겹치는 시기다. 음력으로는 동지섣달인데, 양력 달력은 새 날짜, 1월을 적시하고 있으니 세월유수란 말이 새삼 유정하게 여겨진다. 이즈음에 음유해 볼 제격의 노래는 <가는 세월>이 아닐까.
가는 세월 그 누구가 잡을 수가 있나요
흘러가는 시냇물을 막을 수가 있나요
아가들이 자라나서 어른이 되듯이
슬픔과 행복 속에 우리도 변했구료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꿔도
이 내 몸이 흙이 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하지만 이것만은 변할 수 없어요
새들이 저 하늘을 날아서 가듯이
달이 가고 해가 가고 산천초목 다 바꿔도
이 내 몸이 흙이 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
‘이내 몸이 흙이 되도 내 마음은 영원하리.’가 휘날레인 이 노래는 1977년 김광정이 지어서 서유석의 목청으로 세월 바다에 띄워졌다. 대중가요는 시대이념과 대중들의 감성을 아우른 또 다른 배(船)다. 이 배는 그 노래가 불리어진 당시를 현재 상태로 온전하게 싣고 역사의 바다로 흘러간다. 역사의 바다, 그 바다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을 품고 있고, 갈바람 속에서도 피어나는 13월의 봄꽃 같은 인생사를 담담하게 안고 있다. 세월이 흘러가도 영원한 마음, 그 마음은 바로 대중심(大衆心)이 아닐까.
<가는 세월>을 처음 부를 때 서유석은 32세였다. 그는 해방둥이, 1945년생. 그 해는 우리나라 역사상 근대와 현대의 경계 년(年)이다. 역사연구의 분계점으로 근대는 1876년 강화도조약의 해가 시작이고, 1945년 해방광복이 끝이다. 일본제국주의의 무조건 항복, 제2차 세계대전의 패망으로 그어진 시간의 경계선이다. 현대는 1946년부터 현재진행형으로 오늘~미래로 가고 있다. 가는 세월의 배를 타고서. 서유석은 1970년 임성호·김상희 등이 참여한 <내 친구/ 마지막 꿈>에서 <사랑의 노래>로 앨범 데뷔를 했고, 그 해에 첫 솔로앨범 <지난여름의 왈쓰/ 철날 때도 됐지>를 발표했었다.
서유석은 1974년 TBC 라디오프로그램 <밤을 잊은 그대에게> DJ로 활동하던 중, 월남전파병에 대한 비판적인 미국기사를 소개한 탓에 프로그램을 하차했다. 방송 하차 후, 대전 유성에서 은둔하다가 1977년 대마초 파동으로 인한 대중가요계의 무주공산에 <가는 세월>의 깃발을 흔들면서 등장하여 인기몰이를 하고 MBC인기가요에서 14주 동안 1위의 히트를 유지했다.
<가는 세월> 노래의 화두는 시간이고, 세월이고, 역사이다. 누가 가는 세월을 막으랴. 시간(時間)은 사물의 변화를 인식하기 위한 개념, 이를 누적하면 세월(歲月)이 되고, 세월을 누적하면 역사(歷史)가 된다. 이 배를 타고 왔다가 가는 노래가 유행가(流行歌)이고, 세월의 강물 위에 뜨 있는 노래가 국민애창곡이다. 그래서 세월의 강물을 따라 인걸은 가도 노래는 예술로 남는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BC63~AD14)는 시간을 인간정신의 산물로 보고, 인간은 신의 창조 후 일정기간 지속될 역사의 과정 속에 있을 유한성을 주장하였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1274)는 인간은 시간과 공간에 갇힌 존재라고 했다. 칸트는 공간과 시간은 인간 감성의 형식적 조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다. 니체 저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시간은 끝에 와서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니체는 서구 철학자이지만 시간에 관해서는 동양철학과 유사한 윤회를 지향한듯하다. 이러한 시간의 느낌은 다분히 주관적이지만, 사회적 관계 속에 갇혀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시간의 객관적 기준의 틀 속에 있을 수밖에 없음이 현실이다. 사람들은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심리학자 퍼거스 크레이크(Fergus I. M. Craik)가 1999년 실험한 <노화와 시간판단>으로 증명한 사회적 통념이다.
1956년 우리나라 남녀 평균수명은 42세였다. 1962년 남인수가 44세로 사망했을 당시 신문기사는 ‘노장 남인수 44세 타계’라고 실었었다. 1960년 평균수명은 남자가 51세·여자가 54세, 1971년 남자 63.7세·여자 68.1세였다. 1975년에는 남자 66.2세·여자 70.6세였다. 2017년 통계청 생명표에 의하면 2017년 출생한 아이들의 향후 기대 수명을 82.7로 분석됐다. 남자 79.7세·여자 85.7세로 6년 차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OECD 회원국보다 평균적으로 오래 살 것이란다. OECD 평균기대수명은 남자가 77.9년, 여자가 83.3년이다. OECD 국가 중 남자 기대수명은 스위스(81.7년), 일본(87.1년), 스페인(86.3년)순이다. <가는 세월>의 배, 나는 선장인가 선원인가? 갈바람에 일렁거리는 한강물결을 바라본다.
유차영 선임기자
(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