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기의 ‘가수리군(加須利君)=개로왕(蓋鹵王)’은 잘못된 주석
중애천황의 이름을 논하기 전에 『일본서기』의 주석에 대하여 한마디만 하고 넘어가기로 하겠다. 『일본서기』를 읽어 보면 군데군데 주석(註釋)이 달린 것을 볼 수 있다. 대개 분주(分註)라 불리는 것들이다. 후대인인 우리들로서는 그 주석들을 참고할 필요가 있고, 그 주석들의 내용이 모든 연구에 큰 도움이 되는 게 사실이다.
사실상 그 주석의 내용에 따라 후대의 연구방향이 결정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그 주석의 내용이 100% 옳을 것이라고 맹신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옳을 것이라 믿고 따를 것이 아니라 혹시 잘못된 부분은 없는지 요모조모 따져봐야 한다. 오류가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주석을 덧붙인 사람이 잘못 알고 그러한 주석을 달았을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한 점의 오류도 없는 완벽한 역사서는 없다. 하물며 오류투성이일 뿐 아니라 날조한 역사서라는 의심까지도 받고 있는 『일본서기』이니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차자표기를 어느 정도 알고 보면 『일본서기』의 이런저런 오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가수리군(加須利君)’에 대한 주석이다. 『일본서기』 웅략천황 5년 4월조 기록을 보면 “백제의 가수리군은 천황이 백제가 헌상한 지진원(池津媛)을 불태워 죽였다는 소문을 듣고 ‘과거에 여인을 바쳐 채녀로 삼았다.
그런데 이미 예의를 잃어서 우리나라의 이름을 실추시켰다. 앞으로는 여인을 바치지 말라.’고 했다”고 되어 있는데, 거기에 가수리군은 개로왕(蓋鹵王)을 가리킨다는 주석이 덧붙여져 있다. 가수리군과 개로왕을 동일인물이라고 설명해 놓은 것이다. 바로 이러한 주석이 문제다. 이 주석은 잘못된 주석, 엉터리 주석이다. 이러한 엉터리 주석이 후대의 연구자들을 잘못된 길로 빠져들게 만든다.
한일 양국의 수많은 연구자들이 엉터리 주석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지금까지 헛된 연구에 아까운 시간과 열정을 허비해 왔다. 감히 단언하건대, 『일본서기』에 실려있는 가수리군(加須利君)은 백제 21대 개로왕(蓋鹵王)과 같은 이름이 아니다. 서로 다른 이름이다. 그리고 이름만 다를 뿐 아니라 이 둘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가수리군(加須利君)은 개로왕이 아니다. 가수리군(加須利君)은 바로 중애천황(仲哀天皇)이다. 加須利와 仲哀는 동일한 이름을 차자방식만 달리하여 적은 것이다. 당시 사람들이 [가슬/kasur]이라 일컬었던 이름을 ‘加須利’라고 음차하여 적기도 하고 ‘仲哀’라고 사음훈차하여 적기도 한 것이다. 한자 仲은 한국어로 ‘가운데’이다. 그리고 한자 哀는 한국어로 ‘슬프다’인데 그 고형이 ‘슳다’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 백호 임제(林悌)가 황진이의 무덤앞에서 읊조렸다는 시조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웠난다. 홍안은 어디 두고 백골만 묻혔나니. 잔 잡아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슬허하노라.”의 맨 끝에 나오는 ‘슬허하노라’가 바로 그것이다. ‘가운데’를 뜻하는 한자 仲으로 [가/ka]를 적고 ‘슳다(=슬프다)’를 뜻하는 한자 哀로 [슬/sur]을 차자하여 적은 것이다.
임나어는 고대한국어와 일본어의 중간쯤에 위치했던 것으로 추측되는데, 한국어와 좀더 가까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임나인(가야인)들이 [가슳]이란 이름을 한자로 ‘仲哀’라 차자하여 적었다는 말이다. 사음훈차 표기를 알고 보면 이러한 것들이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바로 앞에서 [가슬/kasur]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음차하여 표기한 것이 ‘加須利’라 하였는데 또다른 한자로 음차하여 적을 수도 있을 것이다.
‘嘉實(가실)’이나 ‘嘉悉(가실)’이라고 쓰는 것이다. [가슬/가실] 발음이 넘나드는 것에 대해서는 따로 설명할 필요 없으리라 생각한다. 그러한 이름을 가진 왕의 이름이 『삼국사기』에도 실려 있다. 『삼국사기』 잡지 악(樂)에 나오는 ‘가실왕(嘉悉王, 嘉實王)’이 바로 그것이다.
다시 말해, 가수리군이 백제 개로왕을 가리킨다고 한 『일본서기』의 주석은 완전히 잘못된 것이며, 가수리군(加須利君)은 중애천황(仲哀天皇), 그리고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가실왕(嘉悉王, 嘉實王)과 같은 이름이고, 이들이 모두 동일한 인물이라는 얘기다.
[최규성]
방송 작가
수필가
칼럼니스트
최규성 ; crazychop@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