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의자·49
-문학인의 지조
1. 프롤로그
예술의 영역이 사회발달과 더불어 프랑스의 헤겔 미학에서 다루었던 건축, 조각, 회화, 음악, 문학 등 5개의 기본예술에서 무용, 연극의 공연예술, 그리고 영화. 사진, 만화, 게임 등으로 그 영역이 점차 확대되고 있다. ‘기술’이라는 의미에서 출발한 예술이 ‘표현’으로 예술의 기능을 강조한 의미에서 순수한 예술을 지칭하는 의미로 바뀌었다.
우리는 예술은 예술가 개인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질적으로는 그러하다. 따라서 공연자와 관람자, 예술가와 관람자간의 상호작용도 예술의 한 부분으로 인정하는 서양적 사고로 볼 때 본질적으로 개인이 하는 것이지만 예술은 수단이 아니라 예술 그 자체에 있다는 점에서 혼선이 빚어진다. 문학의 경우 작가와 독자의 상호작용은 서로간의 소통을 원활하기 위한 문학인의 문학 활동과 감상자의 참여활동도 예술의 영역에 포함할 수 있지만 서로의 소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 문학의 본질을 벗어났을 때는 문학이 아닌 것이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예술은 예술 그 자체보다는 수단화되고 있다. 문학인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예술적 행위보다는 문학작품을 통해 물질을 획득하려는 수단으로 변질되었다. 따라서 문학의 향수자, 즉 감상자(독자)로 문학인의 이러한 행동을 보고 향수자의 영역을 뛰어넘어 문학인과 같이 활동함으로써 문학인들의 수효가 늘어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 출판업자들이 끼어들어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가짜문인의 자격을 부여하는 문예지 등단제도를 통해 문학향수자들을 문학인들로 만들어 문학을 수단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결과, 문학의 고유한 예술은 퇴색되어 버리고 말았다. 문학이 물질을 획득하는 수단이 되거나 명예를 추구하는 도구화로 전락되었다. 따라서 문학정신은 없는 빈껍데기 문학만 있고, 문학인들의 문학활동만 넘쳐나는 그야말로 시장바닥을 방불케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따라서 한국문학이 수단화되어버린 오늘의 문단 상황에 대해 진단해보고, 그 해결방안에 대해 탐색해보고자 한다.
2. 문학인의 지조
조지훈 시인은 「지조론」이라는 글을 통해 1950년대 말 정치적으로 혼란한 사회를 통렬하게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지조는 선비의 것이요, 교양인의 것이다. 장사꾼에게 지조를 바라거나 창녀에게 정조를 바란다는 것은 옛날에도 없었던 일이지만, 선비와 교양인과 지도자에게 지조가 없다면 그가 인격적으로 장사꾼과 창녀와 가릴 바가 무엇이 있겠는가. 식견(識見)은 기술자와 장사꾼에게도 있을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지사(志士)와 정치가가 완전히 같은 것은 아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의 혁명가와 정치인은 모두 다 지사였고 또 지사라야 했지만, 정당운동의 단계에 들어간 오늘의 정치가들에게 선비의 삼엄한 지조를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일인 줄은 안다.
오늘날 문학인은 지조가 있는가? 문학인으로서의 인격과 교양을 갖춘 문학인들이 얼마나 될까? 문학을 수단화하여 자신의 명리적 가치를 획득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장사꾼들의 상행위와 같은 문학 활동만을 문학이라는 예술 장르를 내걸고 광고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문학단체는 정치집단화 되어버렸다. 누가 문학인이고 누가 정치인인지 구별이 모호하다. 모두가 정치 집단화되어 자신의 경제적 이권과 명예를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문학이 변질되었다.
문학은 개인이 하는 예술 활동이지만, 문학 활동은 개인과 개인이 서로 공동의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변질된 세속적 가치 획득을 위한 방편으로 모두들 문학 활동에만 치중하고 있는 바람에 누가 문학인이고, 누가 향수자인지, 또는 누가 출판인지 변별하기조차 어렵게 되었다. 문학과 문학작품은 치졸한 것 밖에 없고 오직 문학인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우수한 문학 작품은 찾아보기가 힘들고 동호인 중심으로 문학활동만 요란할 뿐이다. 즉, 시화전이니 시낭속회니 문학비 건립 운동 등 자신의 명리적 가치를 영속화하려는 문학 외적인 요란한 활동만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다수의 문학인들이 이러한 본질을 벗어난 문학 활동을 문학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문학 활동의 실적만 쌓아놓고 남에게 자신의 왕성한 문학 활동 뽐내는 자기 과시형 문인들의 활동이 요란할 뿐이다. 이들의 문학 활동은 자신을 널리 홍보하여 또다른 명리적 가치 실현과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경영전략에 해당할 뿐 문학활동이 아니라 문학을 빙자한 상거래 활동에 불과할 것이다.
오죽 했으면 문학에 대해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 자신 명의나 연고가 없는 작고문인의 이름을 내세워 문학상을 만들어 문학상 받을 만한 경제력 있는 문인을 물색하고, 그 사람에게 수상을 부추겨서 찬조금을 받아 문학상을 주는 문학상 장사꾼 노릇을 하는 해프닝이 여기저기서 벌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상금있는 문학상은 독차지하기 위한 계락으로 문학단체의 힘을 빌려 문학상 상금을 돌려가며 나눠먹는 식의 체제를 구축한다. 그것은 주최 측이 문학이나 문학인들의 생태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것을 이용하여 소수 문인의 지명도를 이용하여 운영위원들이 횡포를 자행하는 체제를 구축하여 문인으로서는 정말 할 수 없는 온갖 악행을 일삼는 일에 앞장서기도 하는 등 속물적인 상행위 활동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이들 문학인 중에는 그 계략이 뛰어난 문인이나 출판업자들은 동인지 성격의 문예잡지를 창간하여 동인들이나 문학인들의 호주머니를 털기 위해 경영전략을 짜내거나 관계기관의 지원금을 타낼 궁리를 짜내기도 한다. 우수한 문예지는 눈감고 아웅식으로 몇 푼의 원고를 주면서 지원금을 타내는 계략에 집중하고 등외 문예지들은 아예 지원금을 타내지 못한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독자적으로 수요자 경영체제로 방향을 전환하여 작품을 실어주는 조건으로 자신이 발행하는 문예지 정기 구독비 명목으로 운영비를 챙기는가 하면, 신인 등단 제도를 두어 그들에게 찬조금을 받아들여 출판비로 충당하는 상거래가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이들 문예지를 통해 신인으로 등단한 사람들을 주축으로 문학단체를 만들어 감투장사와 해마다 발행되는 문학단체의 출판물을 독점하는 출판권을 누리고, 단체 소속의 회원들이 발간하는 책들의 출판권을 독점하기도 한다. 이들은 자신이 문학권력을 영구하게 누릴 독점 체재를 구축하여 문학단체의 출판권은 물론 소속문학인들의 출판권까지 독점하고 중앙 단체의 우두머리를 선출할 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문학권력을 휘두르는 독재자로 군림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문학을 문단정치활동으로 수단화하여 새로운 문인 집단 왕국을 건설한 문학단체 제왕들이 곳곳에서 독버섯처럼 군림하고 있다. 이들의 갖은 횡포는 문학의 본래적인 가치를 변질시키고 오염시키고 땅에 떨어뜨려 놓는 결과를 가져왔다. 따라서 문학은 본질을 벗어난 상거래 문학 활동으로 변질되고 문학인과 문학 향수자의 소통을 목적으로 하는 문학 활동이 돈벌이를 위한 몇몇 소수 문인이나 출판업자의 용돈이나 가계부 수입원으로 변질되어 이들에게서는 문학인으로의 교양과 지성은 물론 지조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이들은 제왕의 지시에 따라 떼거리 지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권모술수의 악행만을 일삼아 주위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고, 따라서 이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문학단체는 비민주적인 단체운영을 일삼는 문단정치의 온상이요. 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인은 많으나 참으로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정서적인 감응을 줄 만한 문학작품이 없다. 이들은 문학작품 창작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오직 경제적인 부의 창출과 허명의식으로 세간의 관심을 끄는 문학 활동에 충실할 뿐이다. 이러한 문학인들이 해마다 문화 재생산되고 있고, 영세적인 출판업자와 문인들의 결탁은 문학단체의 민주적인 운영은 딴전이고 파행적인 운영으로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문예지들이 비정상적인 운영으로 문학단체를 그들의 발판으로 이용하여 회원들이나 자사 출신문인들을 영구 고객으로 문학작품을 발표해주고 이익을 챙기는 독립체산제의 문예잡지를 운영하는 사례가 많다. 따라서 이들 문예지들을 통해 발표되는 문학작품은 많으나 국민정서에 도움이 될 만한 문학작품이 없는 한국의 피폐된 문단상황은 미래세대에게 얼굴을 들 수 없는 부끄러운 상황이다. 그래도 이들 문예지들 중에서 건실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인정하는 문예지를 관계기관에서 원고로 출판비 명목으로 지원하고 있고, 해마다 책을 발간하겠다고 신청하는 문인들의 몇 편의 작품만을 가지고 심사하여 심사위원의 결정에 따라 출판비 전액을 정부의 관계기관에서 지원해주지만 정말로 국민정서에 도움이 되는 문학작품이 그 중에 얼마나 될까 의문스럽다.
처음부터 이들은 좋은 작품을 창작하겠다는 투철한 작가의식이 없는 문인들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관계기관의 수혜를 받아내어 작품집을 출간하겠다는 탐욕만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들의 작품집을 출판하여 이익을 챙기겠다는 출판업자들의 경영전략에 따라 문학단체가 움직이기 때문에 관계기관의 지원이 엇박자의 쳇바퀴만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황에서 관계기관의 건전하게 운영될 수밖에 없는 문학인 집필활동 인프라 구축이 없이는 한국문학의 질적 수준의 향상은 요원하고 암담한 미래가 예견되는 것이다.
양식 있는 출판업자는 소외되고 있다. 문학인들을 다수 거느리고 영구적인 발간체제를 구축한 출판업자에 그늘에 가려져 빛을 볼 수조차 없다. 경쟁을 해볼 엄두도 못낸다. 이런 불합리한 출판구조에서 좋은 책을 만들어 낼 수가 없고 대중들에게 인기를 모을 책하나 발간하여 대박을 터뜨릴 꼼수를 찾는다거나 로또복권의 당첨의 요행을 가다리는 사행적인 행동밖에 없을 것이다. 문학작품의 경쟁체제의 불합리성과 특정 출판사의 비정상적인 독점체제 구조는 자유 시장 경쟁의 원리가 작동하지 못하게 원천적으로 봉쇄된 구조다. 그들의 역할이 자기 문예지에서 배출한 문인들이 많고 적음에 따라 시장독점체제의 완벽성이 갖추게 된다. 이러한 불합리하고 비민주적인 문학 분야 출판 산업의 인프라는 후진사회의 전형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때문에 진정한 문예부흥의 발걸음을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급격하게 경제발전을 이룩하여 경제적인 풍요를 누리게 되었지만 가장 선봉장에 서서 국민의 정신적인 향방을 리드해서 존경을 받아야 할 문학인들과 예술인들이 국민의 정서는 고사하고 시정잡배 같은 행동만 일삼고 있다면 문제는 심각할 것이다. 정신적인 지도자라고 자처할 수 있는 문학인들이 문학을 정치집단화, 경제적 이익 창출의 창구로 이용하는 등 문학단체나 문예지에 종속되어 수단화되고 도구화되어버린 문인들에게 문인으로서 자주 독립권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물신화된 문학예술 사회는, 문학의 가치는 물론 문학인의 위상까지 추락하게 되는 암담한 상황이 예견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난맥상의 현실은 천민자본주의로 변질된 물질주의가 극에 달한 한국사회의 자화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한 단면일 것이다.
문학이 본래의 위상을 찾아가는 길은 문학인들이 지조를 지키는 일이다. 작품을 쓰지 않는 문학 향수형 문인들이 문인으로 가장하여 상행위를 문학 활동으로 알고 버젓이 활개를 치도록 만들어내는 것도 모두 우리들의 부끄러운 뒷모습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를 누리지만 정신적으로 빈곤하고 천박한 행동을 서슴없이 자행하는 문인사회는 바로 우리들의 자화상일 것이다. 허례허식의 문화, 물질적인 가치만을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병든 생활문화를 청산하지 못한 후진사회의 유산일 것이다. 이제라도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으려면 문학인 각자가 제자리를 찾아가 서로 탐욕을 접고 훌륭한 선배문인들의 정신을 본받아 문인으로서 인격을 갖추기 노력하는 문학의 본질을 추구하려는 의식개혁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3. 에필로그
한국문학은 본질적 가치를 멀리하고 문학이 수단화되어 그 본래 방향을 상실했다. 문학정신 없는 문학향수자들이 대거 문학인으로 유별난 문학의 수단화 활동으로 문학의 본래 가치를 추락하여 자정작용을 상실하고 말았다. 오죽 했으면 단체무용론이 등장하겠는가? 문학단체는 문학인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가 아니라 몇몇 단체의 기득권 세력들의 이익을 챙기는 영구독재체제의 기능적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다수의 회원들의 권익을 보호하지 못하는 문학단체는 그 존속의 의미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문학인들이 그 소속 단체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모두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정상적인 문학인이라고 할 수 없는 문학작품 창작능력이 없는 향수자이거나 명리적 가치 획득이나 경제적 이익을 노리는 비정상적인 문인들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어떠한 방법으로 기득권 세력에 끼어들어 기회를 노리기 때문에 문학인들로 부끄러운 행태로 운영되는 비정상적인 문학단체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자정작용을 잃어버린 문학단체의 일원이 되었다고 해서 누가 그를 문학인으로 인정해주고 존경해주겠는가? 그 소속 단체만 인정하고, 그 소속 출판사만 인정하는 문인에 불과할 뿐이다. 그리고 문학단체의 자주권은 출판권이다. 출판권이 독립되지 못한 단체는 비정상적인 문학단체이고 비리의 온상이 되어버릴 개연성이 우려된다. 문학인들의 투철한 문학정신은 문학인들의 생명이고 자존심이다. 문학정신이 바로선 문인만이 작품을 통해 그 자신의 인격적 가치는 물론 존재의 정당성을 인정받게 된다. 문학의 본질적인 가치를 숭상하고 그것을 지키려는 자주독립의지가 강하기 때문에 그 문인의 개성을 비난하지 않고 많은 사람의 존중을 받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학단체의 출판권은 그 단체가 민주적이고 건전하게 독립적이고 자주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증표이다. 그러니까 출판권은 문학단체의 자주권에 해당한 셈이다. 그렇지 못하고 문학단체가 자주권을 상실한 채 소수 몇 사람의 술수전략으로 움직이거나 문학단체의 출판권을 특정 출판사에 위임하고, 그들이 독점하게 내버려두는 것은 해방후 신탁통치 상황과 같은 이치다. 문학단체가 자주독립권인 출판권을 출판사에 위임하는 것은 신탁통치를 출판사에 위임하여 출판사가 마음대로 문학권력을 휘둘 수 있는 권한을 그들에게 위임한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문학단체의 회장은 출판사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게 되는 주객전도의 불합리한 상황이 벌어질 개연성이 뻔하게 연출될 것은 당연한 귀결일 것이다.
만약 문학단체의 출판권을 독점하거나 문학단체의 기득권의 영구체제를 구축하고 제왕처럼 군림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두고 그 밑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려하는 어리석은 이가 있다면, 이는 일제강점기 민족을 배신한 친일 앞잡이와 같은 처신으로 변절자의 오명이 평생 동안 그를 괴롭히게 될 것이다. 이제 문인들은 문인로서의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해서, 또는 문인으로서의 자신의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라도 문학작품을 창작하는데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마음가짐과 최소한의 양심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그러한 길만이 문인으로서의 마지막 자존심과 지조를 지키는 길일 것이다. 문인은 장사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글로써 당당하게 저항했던 선배문인의 선비정신은 우리 모든 문학인의 모델링일 것이다. 문학인으로서의 지조를 지키는 고귀한 나라사랑의 정신은 우리 한국문학의 전통을 이어나가는 길이고, 세계적인 문학으로 영역을 넓힐 수 있는 길일 것이다. 정신적인 가치를 숭상하는 문인이 문인답지 않게 시정잡배들의 몰지각한 행동만을 일삼는 일은 문학의 본질적 가치를 추락하는 일일 것이다.
문학인이 지조를 지키는 일은 문학인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를 스스로가 깨닫는 일일 것이다. 문학인은 문학작품을 창작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문학 단체는 이들이 서로 만나 좋은 작품을 더 잘 쓸 수 있는 정보를 교환하고 친분을 나누는 문인들의 친교단체이다. 문학인과 문학단체가 문학작품을 잘 쓰려는 목적이라는 문학인의 본질적인 자세를 망각했고, 문학단체는 그 방향을 상실했기 때문에 지조 문제가 빚어진 것이다.
문학인으로 지조를 망각한 문학인들의 질적 수준의 하락은 문학인들의 목적이나 목표 상실로 이어지고 결국 문학 이외의 문제를 가지고 왈부왈부하는 비생산적인 일로 에너지를 소모하게 되어있는 것이다. 문학인이 문학 본연의 목적을 인식하고 문학단체가 본질적인 목적과 목표로 다시 되돌아가서 모두가 좋은 작품을 창작하는데 심혈을 기울이는 길만이 문학인의 위상이 회복하는 일이요, 문학인의 지조를 지켜나가늘 일일 것이다.
[김관식 시인]
노산문학상 수상
백교문학상 대상 수상
김우종문학상 수상
황조근정 훈장
김관식 kks4190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