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바람이 쌀쌀한데
나는 산모롱이에서 노을길이란
책을 꺼내 읽습니다.
연두색 새싹이라는 주제, 3페이지
연분홍색 진달래라는 소제목 5페이지,
비취색물빛이라는 아름다운 글귀가 있는 7페이지
그리고 끝자락에 그리움이 보입니다.
나는 아련한 그리움에 반해서
눈으로 읽고, 소리 내어 읽어 보고,
아껴가며 다시 읽고, 욕심내어 가슴에 담습니다.
읽은 그 페이지를 다시 읽고,
다시 읽고를 반복하다가
조용히 책을 닫았습니다.
너무 보아서 닳아 없어질까 염려되어
다음 봄날에 다시 꺼내어 볼랍니다.
언제까지나 노을길을 꺼내어 볼 수 있는
우리는 어느 별에서 온 시인들일까요?
남해바래길 제13코스 바다노을길은 서상마을 스포츠파크에서 중현농협하나로마트까지 총 12,7km에 5시간 소요되는 길이다. 이 길을 걸을 때는 서쪽으로 지는 아름다운 노을만큼이나 멋진 이야기를 남기고 간 남해 출신 불교계의 거성인 가직대사를 떠올려 볼 일이다.
지인들과 삼삼오오 짝하여 걸으면서 가직대사가 심어 놓은 `가직대사삼송`에 담긴 이야기를 하다 보면 지는 노을만큼이나 강렬한 가직대사 이야기에 심취하고 만다. 가직대사는 영조시대 사람으로 어릴 적부터 법력이 비범했다고 하는데 가뭄이 심한 어느 해 무주를 지나다가 농부가 물이 나올 만한 곳을 알려달라고 하니 우람한 나무 아래를 파 보라고 했다.
그런데 농부가 그 나무 아래를 파다 보니 큰 암반이 있어 더 이상 파 내려갈 수가 없어 가직대사에게 욕을 하고 화를 내었다고 한다. 그런데 가직대사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물이 빠져나가지 못하게 둑을 쌓으라고 했고 둑을 다 쌓으니 지팡이로 큰 바위를 몇 번 내리치니 물이 콸콸 솟아올랐다고 한다.
그 이후 그곳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고 그래서 무주 용담에는 가직대사에게 감사의 뜻으로 기념비를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 어느 날은 화방사에서 큰 행사를 마치고 막걸리를 마시고 있던 가직대사가 술 방울을 자꾸만 뿌려서 사람들이 왜 그런가 하고 물었더니, "지금 하동 칠불사에 불이 났는데 내가 물을 뿌려주고 있다. 그런데 이제 불을 다 껐다." 하고는 마저 술을 마시더라고 했다. 그래서 사람들이 알아보니 그 시간에 칠불사에 불이 났는데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져 불이 꺼졌다는 것이다.
그런 가직대사가 말년에 고향 선산의 북쪽이 비어 있는 것을 보고 통영에 가서 돌아오는 길에 소나무 세 그루를 가져와서 남상, 중리, 노구에 심었는데 그 소나무들이 살아 가직대사의 전설이 되고 있다.
바다노을길에서는 노구마을에서 가직대사삼송을 만날 수 있고 오래전에 이 땅을 다녀간 가직대사는 후대에 이곳에 길이 나는데 누구라도 쉬어갈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노을만큼이나 아름답게 살다 간 가직대사처럼 우리도 역사가 기억하는 아름다운 사람이 되어보자는 욕심을 내면서 걸어보면 좋겠다.
아름다운 길에서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나도 아름다워지는 욕심을 내게 하는 길, 바다노을길이 남해바래길 13코스다.
[서재심]
시인
남해군문화관광해설사
코스미안뉴스 객원기자
서재심 alsgml-2@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