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게 전화로 받은 친구의 말이 잠을 멀리 쫓아 버리게 했다. 그는 그의 사촌들을 만나 돈파티를 했다면서 아주 크게 웃어대었다. 말 그대로 돈을 손에 쥔 기쁜 마음으로 즐기는 파티이긴 하지만 아마도 돈 잔치 같이 들린 이유를 알 수 없어 잠을 설치게 한 것이다.
가끔 찾아뵙던 그 친구의 이모가 언젠가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스치듯 남겨 논 오래된 돈 이야기가 어렴풋이 생각이 났다. 나의 밤잠을 묶어 놓았던 생각은 적중했다. 친구의 이모는 수십여 년 전 젊은 나이에 자신이 세상을 떠난 뒤의 그녀가 해야 할 일들을 마련해 놓았다고 들었었다.
그녀 형제들의 자식인 코흘리개 어린 조카들 6명 앞으로 요즘으로 친다면 저축성 보험을 들었고 변호사에게 의뢰해 유언장을 완벽하게 작성해 법적 서류로 만들어 놓았다. 지금 세상 물가와 비교하면 웃음이 날 만큼 적은 액수의 보험금이었지만 그 시대에 맞게 적지 않은 돈을 어린 조카들 6명 앞으로 들어 놓은 것이다.
아마도 그녀는 조카들을 위해 보험금을 붓는 재미로 살았던 것 같다. 보험금을 잊고 산 까마득한 세월 속에 강산도 따라 변한 만큼 그들 모두 잊고 산 이야기였다. 자식이 없던 그녀는 미래를 예측하듯 자신이 죽은 뒤 남게 되는 재산을 정리한 돈과 보험에서 받은 돈에서 자신의 장례비를 제한 나머지를 조카들에게 똑같이 나누어 주라고 유언했다.
세월이 많이 흐르다 보니 이모도 떠나고 그때 유언장을 작성한 변호사마저 떠난 세상이 되었다. 모두가 떠났어도 유언장만이 혼자 살아서 시간을 따라 그녀의 조카들에게 찾아왔다. 그녀의 사망신고서가 법원에 도착하자마자 법적 절차를 거쳐 은행에서 조카들에서 각자의 돈을 찾아가라는 편지가 날아들었다.
돈이란 무엇인가, 어려울 수 있는 그 답을 알아내는 귀한 발견을 나는 그녀에게서 아주 쉽게 찾아냈다. 돈이 좋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 좋다는 뜻은 누구에게나 늘 맹목적이었었다. 서로 다른 돈의 방식을 표현해낼 수 있는 것도 돈을 어떻게 썼냐는 것이 바로 그녀가 알려주고 떠나간 진정한 답이라는 것이다.
평소의 생각대로 돈이라고 하면 잘 살기 위해 쓰는 목적만 알았었다. 그러나 오늘 나는 돈이란 무엇이든 할수 있어 좋다는 간단한 해답 하나만이 될 수 없다는 것이 돈의 숨어있던 정의였음을 알았다. 공무원의 박봉 생활에서 돈 걱정 없이 편하고 윤택해지는 삶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나의 전부였던 때가 있었다.
그것이면 세상만사가 해결되는 돈의 힘이라는 내 생각의 전부였다. 은행 잔고에 충분한 돈이 없게 되면 곧 가뭄에 저수지 바닥처럼 드러나게 되는 그것이 돈의 절실함을 겪는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세상 물가가 흔들릴 때마다 가슴이 덜컥덜컥 내려앉는 불안이 얼마나 큰일이었던가.
돈에 대한 박탈감보다 그렇게 누구나 지배당하며 사는 일이라고 푸념하곤 했었다. 이제 돈이 우리 삶에서 있으면 행복하고 없어서 불행한 일이라는 고정관념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생각이 어젯밤과 오늘 아침 사이에 일이 되었다. 바로 돈이 할 수 있는 또 다른 행복이라는 것이 그녀의 참된 생전의 모습이다.
내가 갖는 행복한 아침 시간을 무슨 수로 돈의 가치를 말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한다. 돈만 있다면 인생의 전부를 해결할 수 있다는 평소의 말들이 맹목적으로 느껴졌다. 죽을 수 없을 만큼의 돈을 지닌 사람도 한푼도 못쓰게 되는 일도 돈이다. 건강도 돈으로 결코 살 수 없다는 말도 그래서 있는가 보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결국 자신의 병을 끌어안고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녀가 남긴 삶의 이야기 중에서 그녀가 행한 돈 이야기가 나에게 커다란 의미로 다가왔다. 이제는 이른 아침 햇살도 아깝게 느껴지는 흰머리의 노인이 되어서야 돈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예전처럼 생기 가득한 친구들과 브런치를 나누는 행복감을 생각하면 돈이란 바로 내가 원한 시간에 있었다는 것에 위대함을 느꼈었다. 그런 생각들이 훨씬 차분해지는 돈의 세상을 만들어 주는 것 같다.
그곳에 가면 생기 가득한 세상이라는 무대를 사는 배우들의 아침 식사 시간이다. 우연히 옆자리에서 자주 만나보게 되는 멕시칸 뚱보 딸과 거미 같은 노약의 어머니 모두가 얌전히 식사한다. 무슨 대화인지 이해하기보다 딸의 말에 무작정 행복해 하는 늙은 어머니에게서 돈의 소중함을 뚜렷이 보게 한다.
나는 그들을 통해 만나는 돈의 시간을 즐기는 것이 가장 행복하다. 그런 순간을 위해 드는 비용은 찔끔 흘린 병아리 눈물 같아도 일어설 때 느끼게 되는 산더미 크기의 행복을 손에 들고 돌아오기 때문이다. 미국 친구의 이모를 모시고 함께 나눈 마지막 브런치가 생각난다. 어쩌면 그녀의 모습이 나의 삶에서 커다란 화폭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자식 없이 94세가 되셨던 이모분은 자신의 큰 도움이 필요 할 때마다 조카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그럴 때마다 친구를 따라 나는 함께 달려가곤 했다. 그것이 내가 만났던 그녀의 전부였다. 그녀와의 마지막 시간에서 "자주 만나 함께 식사할 수 없어도 괜찮다. 서로 안부만이라도 나눌 수 있다면 그것이 지금 나의 행복이다"라고 하던 말이 이 아침 제일 큰 기억으로 다가온다.
이모분은 여느 미국 사람들처럼 당신이 떠났을 때를 위하여 철저하게 단계적으로 준비해 놓고 사셨다. 재산을 미리 정리하고 요양원으로 들어가실 때도 여느 노인들의 평범한 삶을 사시다 가셨다. 구십이 넘으신 연세에도 여자 신사답게 느껴지곤 했다. 저렇게 씩씩하신 분도 머지않아 나를 못 알아보시게 될 것이다.
조금씩 잃어가는 의식은 식물의 몸이 되어 아궁이의 땔감처럼 떠나는 것이 인간으로의 과정이라는 슬픈 생각도 했었다. 더 나올 것 같은 돈의 사연은 알 수 없지만 각각 25만 8천 9백달러가 쓰여진 수표를 받게 된 그녀의 조카들은 생각지도 못한 돈으로 돈방석에 앉아 춤을 추게 되었다. 너무 어렸을 적 일하였기에 어느 한 사람도 자신이 수혜자라는 생각조차 모르고 살았다고 했다. 그녀는 멀리 타주에서 뿔뿔이 흩어져 사는 6명의 조카들을 모두 불러 모아 돈 파티를 열 것을 당부해 놓고 떠났다.
그것은 인생에서 돈으로 시간을 사는 법을 조카들에게 알려 준 일이었다. 그녀가 살아있는 동안에 돈이 쓰여진 이야기는 진정한 돈의 의미로 오래도록 가슴에 남을 것 같다. 이것이야말로 인생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돈방석에 앉은 이야기다.
[문경구]
화가
수필가
코스미안뉴스 칼럼니스트
문경구 kimurgin@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