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휴가, 첫 출산

- 합격했으니 1년은 다녀볼까

- 혼수를 줄여 집을 구해보고, 군대 있을 동안에는 우리가 데리고 있겠네

- 다녀올게. 건강하고

삽화 : 강신영



- 첫 휴가, 첫 출산 -

군 입대가 많이 늦었다. 가정형편으로 급히 휴학하는 바람에 한(恨)이 맺혔을까? 공부를 하고 싶었다. 그다지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공부 하고, 학교 식당에서 밥도 먹고, 동아리 활동도 하며 대학생활을 누리고 싶었다. ‘조금 늦더라도 학부 끝내고 군에 다녀오면 깔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조급함은 없었다. 더 이상 휴학 없이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 시험을 보았다. 목회자가 되기 위한 필수 과정이었기에 합격을 하고 입대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었다. 영어 시험이 신경 쓰이기는 했지만 모교는 나를 대학원생으로 받아주었다.

“합격했으니 1년은 다녀볼까?”

어지간히 군대 가기 싫은가보다. 계획이 바뀐다. 아니, 마음이 바뀐다. 학교 등록 후 나는 계속 학생 신분을 유지하게 된다. 그러다 그녀를 만나 연애를 시작해버린다. ‘군대도 가야하는데. 무슨 생각으로 여자를 만나버린단 말인가! 나보다 연상인 여자 친구를 두고 어떻게 군대를 가나. 아무 것도 없는 형편에 결혼까지 달려봐?’ 고민이 더 깊어진다. 그래, 결심했어! 아무리 애틋한 연애를 한다 해도 전역하면 지금의 여자 친구는 남의 여자가 되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때 후회하면 무엇 하겠는가. 일단, 직진이다.

“혼수를 줄여 집을 구해보고, 군대 있을 동안에는 우리가 데리고 있겠네.”

죄인의 마음으로 결혼의지를 예비 장인께 말씀드렸다. ‘신학생, 군미필자, 가난한 청년’ 나의 정체성이다. 그런 내게 아버님은 푸근하게 격려하시며 결혼을 허락하셨다. 장모님께서 내 외모를 좋게 보셨다는 이야기에 괜한 자신감으로 결혼 속도를 붙여보았다. 내 나이 스물여섯, 아내 스물여덟. 우리는 그렇게 연인에서 부부가 된다. 두 학번 선배인 아내는 대학원 졸업을 했지만 나는 여전히 학생이다. 주말이면 각자 교회에서 파트타임 전도사 생활을 하며 소박하게 신혼살림을 꾸려갔다. 우리는 임신을 미룰 생각이 없었고 새로운 가족은 금방 생기게 된다. 하지만 그날이 오고야 말았다.

“다녀올게. 건강하고.”

논산 육군훈련소 앞에서 아내와 인사를 나눈다. 이미 배부른 티가 많이 나는 임신 6개월. 주변의 시선이 느껴지기도 하지만 의식할 여력이 없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이 서러울 뿐이다. 미안함 가득에 뭐라 할 말도 없고 내 손만 꼭 잡고 있다 헤어졌다. 늦깎이 군인 아저씨에게 논산의 FM 훈련은 버거웠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이등병 계급장을 단 나는 어느 연대에 군종병 보직으로 군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학생이 아닌 이제 군인이다. 군종병도 여느 군인처럼 일과가 있고 필수 훈련이 있다. 군종병 업무는 종교영역이기는 하지만 행정에 가깝다. 그래서 종종 다른 병과에 무시를 당하기 일쑤다. 그것이 싫었을까? 악착같이 익혔다. 구급법, 화생방, 전투준비태세 시 행동요령 등 병기본은 물론이고 상황발생 시 군종부서가 해야 할 업무를 무작정 외웠다. 그래서일까? “군종병이 그런 걸 어떻게 알아?”라는 질문을 받으며 점차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관심을 줘야 할 문제 많은 유부남 병사라는 딱지가 떼어지고 있었다.

“금일 사격훈련 있습니다. 열외 인원 없이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자대 배치 후 첫 사격이다. 중대장님은 열외 1순위인 군종병에게 사격을 잘해야 군종 목사님을 지킬 수 있다는 말로 동참시켰다. 군종장교는 공식적으로 총기가 지급되지 않는다. 장교지만 권총도 없다. 그래서 전시 상황이 되면 군종병이 옆에서 늘 총을 들고 함께 해야 한다. 여하튼 나는 그렇게 사격장으로 장비를 갖추고 출발하게 된다. 사격장 공기는 늘 무겁다. 작은 실수와 나태함이 큰 사고로 연결될 수 있기에 평소보다 통제 간부들이 엄격하게 병사를 대한다. 사로에 엎드린다. 훈련소 이후 처음이다. 생각보다 큰 총소리, 묵직함. 손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충격 받는 어깨. 이등병에게는 아직 적응이 되지 않는다. 주어진 탄을 다 소비한 후 다른 전우가 사격이 끝날 때까지 ‘엎드려 쏴’ 자세를 유지한다. 엎드려 호흡을 가다듬던 그때.

“이병 신재철, 지금 총기 그 자리에 두고 행정반으로 복귀하도록. 축하한다. 아내가 출산하러 병원으로 출발했단다.”

사격장 통제 장교가 방송을 통해 아내의 출산 소식을 알렸다. 군인이라는 어색한 신분에 적응하면서도 늘 아내와 아이 걱정이었는데 기다리던 소식을 사격장에서 듣게 되었다. 너무 기뻐 나도 모르게 총기를 들어 올리게 되었고 순간 사격장은 얼어붙었다. 총을 그 자리에 그대로 내려두라는 다급한 방송에 정신을 차리고 뛰듯이 행정반으로 복귀했다.

서울역까지는 금방 도착했지만 천안까지 가는 기차를 놓쳤다. 진통 중에 있을 아내가 맘이 쓰이며 나의 조급함은 더해갔다. “택시 타고 갈까?” 철없는 남편의 전화에 진통 중에도 아내가 놀라는 눈치다. 서울에서 천안이 어디라고 택시를 타겠는가. 그 비용은 누가 감당하고. 괜찮으니 기차 타고 오라며 흥분한 나를 오히려 안심시키는 아내의 음성에 산통의 떨림이 전해온다.

급하게 도착한 병원, 분만실에서 아내를 만났다. 분만실은 아내의 고통소리와 의사 선생님의 출산 유도로 가득했다. 출산이 쉽지 않은지, 늘 있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의사가 갑자기 아내 배 위로 올라가 눌러댄다. 저러다 사람 죽는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내 맘은 조급해 졌다. 그 시간도 잠시, 간호사가 쭈글쭈글 하게 생긴 아이를 내게 보인다. 탯줄을 잘라주라는 말에 가위질을 해본다. 마치 잘리지 않는 곱창을 억지스럽게 잘라내는 느낌이라 무섭고 이상하다. 그렇게 탯줄을 끊고 승우가 세상에 나왔다.

“아들이 아빠를 기다렸네.”

진통이 길었다. 이미 출산했을 시간을 넘기며 아내와 아들은 분만실에서 나를 기다려준 듯하다. 우리 세 식구가 함께 첫 만남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배려해 주신 것일까? 아이를 품고 바라본다. 앞으로 살아갈 세상이 만만치 않을 걱정이 왜 먼저 들까?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통해 하실 일을 기대하는 마음에 염려는 밀려났다. 나는 그렇게 첫 휴가에 아빠가 되었다.


작성 2022.05.02 08:11 수정 2022.05.02 08:11

RSS피드 기사제공처 : 한국정보신문 / 등록기자: 주경선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