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력 갑오본은 지금까지 소개된 적이 없는 임란시기 판본”
최근 임진왜란 때인 만력(萬曆, 연호) 갑오년(1594)에 명(明) 나라의 병가(兵家)들에 의해 왜군 정벌용으로 간행된 《손자병법주해(孫子兵法註解)》를 난중일기 교주본 저자인 노승석 여해(汝諧) 고전연구소장이 찾아내어 처음으로 완역한 번역서를 출간하였다. 이 판본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는 희귀본인데, 전란 중에 한정판으로 간행되었기 때문에 후대에 전하는 것이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조선시대 무과 시생들이 시험을 보기 위해 무경칠서의 《손자》를 읽고 기본적인 병법이론을 배우지만, 역대 병가들의 주석에 따라 의미가 다르기 때문에 주석을 함께 읽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실전에 유용한 병법이론을 주석에 달아 간행된 책이 바로 《손자병법주해》이다. 다양한 병가의 핵심이론이 망라된 것이 이 책의 특징이다.
임진왜란 중에 간행된 《손자》는 3종인데, 그중 만력 갑오본이 왜군 정벌용으로 간행된 것이다. 갑오년(1594) 시기는 명나라와 일본 간의 강화 협상이 이루어진 시기였다. 부진한 전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명나라의 남경(南京)과 절강성(浙江省), 광동성(廣東省)에서 항왜(降倭) 활동에 참여한 명나라 장수들이 《손자병법주해》를 편찬하였고, 만력 22년(갑오년(1594)) 맹동(孟冬) 10월에 ‘무력으로 왜적을 정벌하려는 목적’으로 남경 국자감에서 간행되었다.
그후 명나라 장수가 조선에 들여왔고, 1597년 이순신이 고금도로 진영을 옮긴 후 전쟁에 참전한 조선의 이순신 휘하 장수가 중간(重刊)하여 모든 장수들에게 보급되었다. 이 내용은 임진왜란 당시 정유년 10월 전쟁에 참전한 이순신의 휘하 장수의 사찬(私撰) 고문서에 나온다.
《손자병법주해》 판본의 글자는 모두 2만여 자가 되는데, 훼손되어 마멸되거나 결손된 글자들이 종종 있었다. 이에 송대본 계열의 판본과 역대 병가들의 이론을 추적하여 해당 문장을 찾아 보충하였다. 이 판본의 원문은 6천여 자이고 원문의 하단에 달린 단구의 주해(註解)는 만 4천여 자이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조선의 최고 전략가인 이순신이 임진왜란 당시 불패의 전공을 세운 것은 바로 춘추시대 최고 병가인 손무의 《손자병법》이론을 전쟁에 충실히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왔다. 이순신은 《난중일기》에 《손자병법》〈모공편〉의 지피지기(知彼知己) 관련 구절을 옮겨 적었다.
나를 알고 적을 알면 백 번 싸움에 백번 이기고, 나를 알고 적을 모르면 한번 이기고 한번 질 것이다. 나를 모르고 적도 모르면 매번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할 것이다. 이는 만고불변의 이론이다. 知己知彼 百戰百勝 知己不知彼 一勝一負 不知己不知彼 每戰必敗 此萬古不易之論也 - 이순신, 《난중일기》 갑오년 11월 28일 이후 기록 - |
위의 지피지기(知彼知己) 구절에서 “매전필패(每戰必敗)”의 “패할 패(敗)”자는 명대본(明代本)에서 보이는 글자인데, 바로 이순신이 명대 판본 《손자》를 읽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나라 때 두우의 《통전(通典)》과 송나라 때 길천보(吉天保)가 편찬한 《십일가주본》에는 “태(殆)”자로 되어 있다.
《손자병법주해》 원문과 주해를 분석한 결과, 이 판본은 송대의 《무경칠서》에 들어있는 주복의 교정본 《손자(孫子)》 계통이고, 주해 내용에는 명나라 때 왜군과 전쟁하기 위해 전법을 연구한 학자 조본학(趙本學)의 《손자교해인류(孫子校解引類)》 에 나오는 주석이 다수 인용되었다.
조본학은 장량에게 비서를 전한 황석공(黃石公)을 추종한 주역학자로서 황하에서 나온 하도(河圖)와 낙수(洛水)의 신귀에서 나온 낙서(洛書)를 응용한 진법을 창안했고, 제갈량의 진법을 응용했다. 이순신의 학문은 황석공에게서 온 것이라고 선조가 평가했다. 실전 위주의 전법이론으로 《손자교해인류(孫子校解引類)》를 저술하였는데 사후에 그의 제자 유대유(兪大猷)가 간행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손자병법주해》는 이 책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또한 역대 병가의 주석을 다양하게 인용한 내용도 보이고, 기존의 판본에 없는 새로운 해석도 있다.
전국 시대부터 후대에 이르기까지 전하는 《손자병법》의 판본과 주석서는 약 4백여 종이다. 여기서 대표적인 판본은 조조의 《손자주》와 송대의 《무경칠서》, 《십일가주손자(十一家注孫子)》 3종으로 정리된다. 송대의 병가 주복(朱服)의 이론과 명대의 병가 조본학의 이론이 주로 반영된 《손자병법주해》는 임진왜란 중 왜군 정벌 목적으로 특별히 제작되었기 때문에 기존의 주석서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원문 하단에 있는 주해에는 원문과 관련된 고사와 병가의 이론이 일일이 실려 있는데, 유인의 《손무자직해》보다는 내용이 간결하다. 난해한 문구나 용어의 경우는 관련된 문헌으로 새롭게 훈고(訓詁)한 해석도 있다. 대체로 실전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될 만한 핵심 내용이 알기 쉬운 단구(短句) 형태로 편집되었다. 이 책은 주해 내용이 핵심이므로 이를 원문과 함께 모두 번역하였고, 원문은 가급적 주해의 의미에 맞게 번역하였다.
《손자병법주해》는 중국 역대 최고의 병가들이 실전에서 경험한 전통적인 병법 이론들이 망라되어 있고, 주해를 통해 승리의 방법을 제시한 점이 특징이다. 이에 필자는 원문과 주해를 완역하고 각 병가의 이론들까지 모두 고증하여 본문의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밝혔다. 그 결과 이 책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을 정벌하기 위한 실전용으로 간행되어 이순신과 명나라와 조선의 모든 장수들이 병법지침서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었다.
노소장은 “이 책이 전하는 의미의 핵심은 위급한 전쟁 상황을 단기에 속전하여 승리하는 비결을 전해주는 것이다. 21세기 무한경쟁 시대에 사는 현대인들도 이 책을 읽고 뜻하지 않은 위기를 만났을 때 슬기롭게 극복하고 진정한 승리의 의미를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