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석근 칼럼] 시간

고석근

 

광채 없는 삶의 하루하루에 있어서는 시간이 우리를 떠메고 간다.

- 알베르 카뮈

 

 

아르헨티나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보르헤스의 소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그는 시간의 무한한 연속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어지럽게 증식되는, 분산되고 수렴되고 평형을 이루는 시간들의 그물을 믿으셨던 거지요.’ 우리는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시간은 직선의 시간이다. 무한히 한 방향으로 쏜살 같이 지나가는 시간.

 

그래서 우리는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면 빤히 보인다. 다가올 시간을 보아도 빤히 보인다. 자식들이 태어나는 족족 잡아먹은 그리스의 시간의 신 크로노스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다.

 

태어나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인생, 다들 사형수다. 권태, 우울... 우리는 삶의 무상함에 진저리친다. 하지만 또 다른 시간이 있다. 보르헤스가 말하는 무한한 연속들,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어지럽게 증식되는, 분산되고 수렴되고 평형을 이루는 시간들의 그물

 

그리스의 또 다른 시간의 신 카이로스는 의식적이고 주관적인 시간이다. 순간의 선택이 인생을 좌우하는 기회의 시간이다. 20세기 최고의 과학자 아인슈타인이 말하는 상대성의 시간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년의 시간이 흐를 수도 있다.

 

깨달은 사람들이 느끼는 찰나가 영원인 시간이다. 어느 성자에게 제자가 물었다. “시간을 어떻게 아껴 써야 합니까?”

 

성자는 대답했다. “나는 시간을 부린다. 너는 시간에 지배당하지 않느냐? 어느 시간을 말하느냐?”

 

시간을 부리는 경지, 그에게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하염없이 흘러가는 직선이 아니다. 이 시간은 매순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시간이다. 습관대로 살아가는 사람의 시간은 직선이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에서 항상 어느 길을 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시간은 분수처럼 하늘로 솟구치기도 한다. ‘찰나에서 영원을 체험하는 것이다. 그는 시간의 그물망 속에서 절대적인 평온을 느낀다.

 

자신이 시간의 주인이니까. 중국의 임제 선사는 말했다. “어느 곳에서든지 주인공이 되어라. 서 있는 그 자리가 모두 진실하다. 隨處作主 立處皆眞.” 진실, 진리는 자신이 삶의 주인일 때 드러나는 것이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삼라만상은 서로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율동이다. 우리 눈에 물질로 보이는 건, 감각적 지각일 뿐이다. 파동이 낮은 에너지가 우리의 눈에 물질로 보이는 것이다. 세상의 본질은 에너지장()’인 것이다.

현대양자물리학에서 말하는 에너지장에는 시간은 없다. (물질)을 가진 인간이 감각에 의해 시간을 느낄 뿐이다. 시간이 직선으로 보이는 건, 산업 사회에 사는 우리의 삶이 직선이어서 그렇다. 농경사회에 살던 사람들은 시간을 원으로 느꼈다.

 

따라서 시간은 우리의 감각적 지각일 뿐이다. 우리는 어떤 시간의 관념에 빠지지 말고, 자신의 삶을 항상 선택하고 발명해 가야 한다. 온 정신을 모아 매순간 삶을 만들어 갈 때, 삶은 온전히 자신의 것이 된다. 우리는 시간의 춤을 추게 된다.

 

새처럼 자유롭던 시간들이

1,2,3,4,…… 번호를 붙인 채

숨죽이며 상자 속에

갇혀 있어요.

 

땡땡땡땡…….

얼마나 갑갑했으면

12시는 12번씩이나 벽을 치며

저 아우성일까요.

 

시계를 볼 때마다

나는

 

저 말간 유리문을 활짝 열고

시간들을 자유롭게 놓아 주고 싶어요.

 

- 공재동, <시계> 부분

 

시계가 생겨나면서 우리의 시간은 시계 속에 갇혔다. 우리는 온종일 시계의 초침, 분침, 시침이 되어 달음박질을 쳐야한다.

 

시계 밖으로 나와 보면 안다. 시간은 하늘을 나는 새라는 것을.

 

[고석근]

수필가

인문학 강사 

한국산문 신인상

6회 민들레문학상 수상.

이메일: ksk21ccc@hanmail.net

 

작성 2022.06.23 12:10 수정 2022.06.23 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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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