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유스/ 윤유진 기자] 주윤발, 양조위, 그리고 장국영.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8, 90년대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홍콩 영화가 전국의 극장과 비디오 가게를 휩쓸었고, 여전히 수많은 사람이 그 시절의 영화를 추억하고 그리워한다.
홍콩 영화의 흥행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홍콩의 역사를 알아봐야 한다. 영국과 청나라의 제1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게 되면서 1842년 8월 29일, 두 나라는 난징 조약을 맺고 홍콩섬을 영국에 넘겨주게 된다. 이후 제2차 아편전쟁에서 청나라가 다시 한번 패하게 되면서 1860년 10월 18일, 베이징 조약이 체결되고 구룡반도와 신계 지역을 영국에 넘겨주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홍콩은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공존하는 나라가 되었고,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떠오르면서 전보다 많은 자본이 홍콩에 유입되었다. 영화계 또한 이를 기반으로 하여 다양한 장르의 영화들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누아르 열풍을 일으킨 <영웅본색> 시리즈, 왕가위 감독의 미장센이 돋보이는 <중경삼림>, 판타지 영화 <천녀유혼> 등이 큰 흥행에 성공하면서 홍콩은 아시아를 벗어나 전 세계 영화계를 이끄는 나라가 되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영웅본색>에 등장하는 성냥개비와 트렌치코트가 시대를 대변하는 아이템이 되었고, 주인공 주윤발이 "사랑해요. 밀키스”를 외치는 광고가 방영되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될 것 같았던 홍콩 영화의 전성기는 홍콩 반환을 기점으로 서서히 몰락하게 된다.
영국이 과거 아편전쟁의 승리로 조약을 체결하면서 얻은 홍콩섬과 구룡반도 중국으로 다시 반환할 의무가 없었다. 하지만 구룡반도 위쪽에 위치한 신계 지역에 대해서는 99년 조차권이 있었고, 그 당시 주요 시설들이 신계 지역에 밀집되어 있었기 때문에 영국은 반환을 미루고자 했다.
계속되는 협상 끝에 영국과 중국은 1984년 12월, 50년 동안 중국이 홍콩의 사법 금융제도를 유지한다는 조건을 걸고 반환에 합의하는 중.영 공동협상을 맺었다. 그리고 1997년 7월 1일, 결국 영국령이었던 홍콩은 155년 만에 중국에 반환되었고, 그 이후 홍콩 영화계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홍콩이 중국으로 반환되면서 해외 투자가 감소하였고, 홍콩을 떠나는 이민자의 수도 증가하게 되었다. 이후 일본과 한국이 아시아의 영화 강국으로 떠오르게 되면서 홍콩 영화가 아니어도 재미있는 영화가 많다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고, 결국 홍콩 영화는 과거의 명성을 잃게 되었다.
지난해 홍콩 정부는 영화 심의 규정을 담은 전영검사조례 개정안을 통해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내용과 행위가 포함된 영화의 상영을 막을 것이라고 발표했다. 따라서 영화 제작과정 단계부터 많은 제한이 생겨 이전과 같은 명성을 되찾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예측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