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투고> 시골로 귀촌하고자 하는 이유

"자연에서 내 안에 숨 쉬고 있는 진정한 나를 찾고 싶다"

<독자투고>

나는 엘리베이터가 싫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오르내리지만 여전히 엘리베이터를 타는 것이 싫다. 집은 20층 아파트에 15층에 살고 있고, 일하는 사무실은 15층 건물에 13층 오피스텔이다. 엘리베이터가 고장 나지 않는 한 그곳에 오르거나 내릴 때마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을 수 없다. 운동 삼아 한두 번 정도는 걸을 수 있지만, 매번 그렇게 걷기에는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른다. 폐쇄공포증이나 고소공포증과 같은 정신 질환이 있어서가 아니다. 남이 들으면 이상한 소리로 들리겠지만, 엘리베이터 안에서 종종 만나는 이웃 때문이다.

 

볼 때마다 인사하지만 그때뿐이다. 가볍게 눈인사를 하고 시선은 언제나 하나씩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번호판을 물끄러미 쳐다본다. 어떨 때는 지겹도록 보아온 승강기 사용 안내문을 다시 읽기도 한다. 이웃이라는 정도만 알 뿐 특별히 알고 지내는 사이가 아니다 보니 그 좁은 공간에서 짧은 공존은 서로가 어색하다. 이웃도 나와 다르지 않다. 돌아서서 거울을 보거나 아니면 며칠째 본 관리실에서 붙인 주차질서에 관한 안내문을 또 쳐다본다. 내가 읽는 승강기 사용 안내문을 함께 쳐다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시선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층간 이동을 나타내는 자동문 위에 붙은 번호판이다. 숫자가 변하는 그 짧은 순간마저 지루하게 느껴진다. 9에서 10으로 넘어가는 순간, 또는 10에서 9로 변경되는 번호판의 작동을 이웃과 나는 고개를 쳐들고 살피고 있다.

 

딩동~ !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작동을 멈춘다. 함께 섰던 사람이 나가는 경우라면 살짝 고개를 꺾어 보이는 것이 예의이다. 굳이 ‘잘 가라.’하는 소리는 할 필요가 없다. 그렇지만 이웃인 것을 아는 이상 묵묵히 나가는 사람의 뒤통수만 보고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말이다. 나가는 이웃도 내가 숙인 만큼 고개를 숙인다. 내가 한 인사에 대한 답례인지 어쩐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상관없다. 어차피 애매하게 인사 한쪽은 나였으니까.

 

딩동~ ! 소리가 울리고 이번에는 밖에 있던 사람이 안으로 들어온다. 나와 비롯하여 함께 서있는 사람들은 습관처럼 약간 뒷걸음질 친다. 자리는 넉넉하다. 그렇지만 이미 있는 사람은 새로운 동거인을 위해 그 정도의 배려는 언제든지 감수하겠다는 자세다. 이번에도 들어오는 사람과 서 있는 사람이 주고받는 인사는 어정쩡하다. 고개만 까닥하거나 상체를 수그려 보일 뿐이다. 서로 어색하다. 새로운 승객 역시 시선이 머무는 곳은 자동문 위에 붙은 번호판이다.

 

곁에 선 중년 여자의 의상(衣裳)이 화려하다. 가장무도회라도 나가는 것일까? 나도 모르게 움푹 파인 가슴으로 시선이 간다. 화들짝 놀라 외면한다. 오해를 염려한 시선의 회피는 필사적이다. 다행히 사람들은 모두 시치미를 뚝 떼고 선 마네킹과 같다. 짙은 향수가 좁은 공간을 가득 채워도 누구도 인상 하나 찌푸리지는 않는다. 마치 투명인간과 서 있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려 애를 쓴다. 9에서 8로 넘어가는 번호판에만 온 시선을 집중한다.

 

이따금 당혹스러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밤늦게 엘리베이터에서 젊은 여자와 동승하는 경우가 그렇다. 나는 평소와 다름없이 서 있는데 젊은 이웃은 정면으로 나를 응시한다. 무슨 우범자를 경계하는 양 나의 작은 행동에도 즉각 대처하겠다는 듯 시선을 떼지 않았다. 나는 번호판을 보지만 젊은 이웃이 도도하게 나를 주시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불쾌하기 짝이 없지만 요즘 세태가 그러니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아니다.

 

더욱 당혹스러운 것은 지난밤 음주가 있고 다음 날 엘리베이터를 타는 경우가 그랬다. 평소와 다름없이 어정쩡한 인사를 주고받는데 이웃의 분위기가 사뭇 다를 때가 있다. 특히 주부들이 그러했다. 어쩐지 자꾸만 흘끔거리며 사람을 살핀다. 이럴 때 나는 당황한다. 도무지 전날 어떤 몰골로 귀가했는지 기억이 없는데 그 끊어진 필름 일부를 그 이웃이 지니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신은 없다. 그런데도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번호판의 이동이 느려진 것 같아 답답하다.

 

양손을 찌르고 있는 바지 주머니에 뭔가 만져지는 것이 있다. 휴대폰이다. 옳거니! 싶어 끄집어냈다. 마치 잊고 있던 문자를 확인하는 사람처럼 스마트폰 액정 화면을 향해 고개를 숙인다. 아들놈한테 배운 카톡도 열람한다. 새로운 것이 있을 리 없었다. 그런데도 신중하게 그것을 살피는 척 행동하면서 고개를 들지 않는다. 딩동~! 드디어 일 층에 다다랐다. 나는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빠져나오고 함께 섰던 이웃들도 그 어색한 공간에서 해방된다. 나는 내 몸에 여전히 술 냄새가 맡아지는지 코를 킁킁대며 검사했고 어젯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해 내려 노력했다.

 

어떻게 온 것인지 몰라도 새벽에 번호를 제대로 못 눌러 대문을 걷어찼다는 것이 아내의 전언이고 옷 입은 채로 소파에 쓰러졌다고 했다. 1층에서 15층까지 그 꼴로 걸어오지는 않았을 터였다. 물론 날아오르지도 않았을 것이다. 아파트 이름을 택시 기사에게 알려준 사람은 나 아니면 만취한 사람을 태워 보낸 친구일 터였다. 평소에는 무심하게 지나치던 경비실 앞에서 수고하신다며 과도하게 허리를 숙이고 비틀거렸을 것이다. 나를 힐끔거리며 살피던 그 이웃을 만난 곳은 승강기 앞에서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면서였는지 모르겠다. 나는 비틀거렸고…, 그러면서 평소에는 묵례로만 끝낼 인사에다 몇 마디 덧붙였을 수 있다.

 

10층에 계시죠? 이거 이웃 간에 노상 보면서도 데면데면합니다 그려….

 

나는 같은 이웃으로 사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담을 쌓고 사느냐고 답답한 마음을 그렇게 표현한 것인데 그 이웃은 주정으로 여긴 것이다. 좁은 엘리베이터 내부는 술에 찌든 냄새가 점령하고 넘어지지 않겠노라 손잡이를 잡고 버티는 한심한 이웃을 바라보면서 혀를 찼을 것을 생각하니 얼굴을 들 수 없다. 엘리베이터가 싫은 이유다. 특히 술을 마시고 필름이 끊어진 다음 날은 엘리베이터가 없는 건물로 이사하고 싶다. 시골에 집을 짓고 귀촌하는 이유가 엘리베이터 때문이라고 이야기한다면 사람들은 아직 내가 술이 덜 깨 헛소리를 하는 거로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사실이다. 벌써 몇 년째 같은 건물에 살면서도 어정쩡한 인사만 주고받는 이 도시의 닫힌 이웃이 정말 싫다. 

(김태환 기고)    

작성 2022.07.29 15:44 수정 2022.07.29 1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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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