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향기 동서문학상 수상자들의 모임인 동서문학회에서는 2022년 [동서문학18, 꽃들의 체온]을 발간하였다.
백 여명의 동인이 참여하여 시, 수필, 소설, 동시,동화를 발표하였으며 9월 나문재에서 "문학캠프"에서 출간기념회를 가질 예정이다.
<책소개>
동서문학상 수상자 모임 동서학회에서는 2022년 『동서문학 18 꽃들의 체온』을 펴냈다. 저명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동인의들의 주옥 같은 글이다. 동인 이숙희, 최분임, 김은미, 성영희, 홍성남 등의 시와 강미애, 노기화, 차갑수, 김창희 등의 수필, 김두례, 정미경, 신수나 등의 아동문학, 정이수, 이병숙, 김은정, 김혜영 등의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책 속으로>
파도가 투정을 부리면
너울이 다가와 꿈은 크게 요동쳐
덜 깬 잠을 잡아 흔들지
어떤 고민이든 말해 봐
다 들어줄게
무심한 듯
빛줄기로 휘파람을 부는 등대
흔들리지 마라
네 꿈은 여기에 있어
수평선은 바람 몸살로 멀미하지
깊은 그곳 소리 없는 선율이 평화를 깨고
바깥세상이 궁금한 것들은
운수가 사나운 것들뿐
불빛 피리가 사선으로 너울을 다독이고
소리가 홀리 듯 꿈을 잡아끌지
-윤은진 <피리부는 등대> 전문
나사*가 달이 양수처럼 품은
물을 발견했다는 뉴스를 듣는 저녁
툭, 바닥으로 떨어진 서랍 손잡이
애벌레 같은 나사를 조이다 보면
우화(羽化)를 꿈꾸는 내 겨드랑이에도
문득 날개 한 쌍 돋아날 것 같은데
둥실, 떠오른 역마살이
무중력 오랜 잠의 가장자리에
발끝을 내려놓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
거기 달의 치마폭 적막만이 어슬렁거리는 밤
쉬이 잠들지 못한 물방울 하나가
떠돌이 물방울 하나를 끌어들여
꿀벌처럼 뜨겁게 잉잉대다가
툭, 뱉어낸 꽃 한 송이
어머니의 어머니를 만날 것도 같은데
-최분임 <몸의 기원> 전문
열쇠를 꽂아 문을 열고 들여다보고 싶은 비밀스러운 방과 방 앞에 섰다. 누군가를 지켜주는 자물쇠가 번쩍 빛을 내며 나를 차갑게 노려본다. 재잘거리는 아이들 웃음소리 대신 탁한 노인 의 기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연기처럼 새어나오는 옆방의 이 야기가 한집에 사는 식구들처럼 가깝다. 나름의 속내를 내 뱉는 것일지도 모른다. '머리조심'이라는 붉은 글씨가 떠오른다. 쪽방 을 담 삼아 삐뚤삐뚤 걸어가는 낯설지 않은 발소리에 귀를 기울 여본다. 왠지 정겹다. 어떤 사람냄새가 풍긴다. 툭 터진 하늘대 신 환한 달빛이 비좁은 골목을 비추었으리라. 반으로 접힌 작은 문이 세상으로 향하는 유일한 통로였으리라. 사람들이 빠져 나 간 빈집에는 가랑잎만 수북이 쌓여 있다. 얼마큼의 외로움과 그 리움의 시간이 존재하고 있었음이 느껴진다. 골판지박스로 덧 댄 부식된 나무 문이며, 선이 뜯겨 나간 전기계량기며, 시멘트벽 에 새겨진 ‘삼천리 연탄’의 오랜 글자가 어떤 문화재보다 내 눈에 는 더 귀하게만 보였다.
자물쇠가 채워진 쪽문 안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이 문을 열 고 사라져간 사람들은 또,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숱한 아침을 열고 숱한 밤을 닫으면서 반듯한 새로운 집을 꿈꾸었을 것이다. 미로처럼 이어지는 골목이 미래로 가는 관문이었을 것이다.
-박소언 <쪽방의 시간> 중에서
나 또한 그 소중한 돈을 다시 벌고 싶은 욕망이 들끓었다. 남 편을 따라가겠다고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뜯어말리기 시작했 다. 거기 갈 바에 차라리 굶고 말겠다, 그런 험한 데를 다 가느냐, 치안이 안 좋은 가난한 나라라며 그들은 파키스탄을 경멸했다. 친정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김 서방을 믿고 그 먼 데를 가느냐고, 또 주식을 할 사람이라고, 개 버릇 남 못 준다고도 했다. 물론 내 친구들도 섬뜩한 소리를 해댔다. 극단주의 무슬림한테 처참 하게 죽을 수도 있다며 치를 떨었다. 그들은 겉으론 파키스탄을
경멸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두려워했던 것이다. 새 운동화를 신 고 가슴을 펴고 새로운 길로 달려나갈 용기가 없는지도 몰랐다.
나라고 그런 소리에 겁먹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왕이면 스웨 덴 같은 선진국이면 얼마나 좋을까도 싶었다. 그렇지만 그런 나 라에서 실직한 한국인을 고용해 줄리도 없었다.
반대로 파키스탄에 가라고 부추긴 사람들도 있었다. 남편 먼 저 파키스탄으로 떠난 후였다. ‘남편한테 가야지?’ 성당의 신부 님은 나만 보면 그 소리를 했다. 목사인 남편의 형님도 나를 못 보내서 안달이었다. 남편이 무슬림 여자와 재혼해 버릴지도 모 른다고 겁까지 줬다. 시어머니는 더 성화였다. 어떻게 너 혼자 집 구석에서 빈둥빈둥 놀고먹느냐고, 빚쟁이 들볶듯 들볶았다.
나는 뭐 파키스탄이면 어떠랴 싶었다. 남편 말대로 골프도 치 고, 두바이에 장도 보러 가고, 모헨조다로 유적지, 인더스강에도 가고 싶었다.
막상 이 나라에 와서 내가 느낀 건 부추긴 사람들이나 경멸했 던 사람들이나 모두가 아는 척하기 좋아했다는 것이다. 정말 중 요한 건 협력이었다. 나라와 나라가, 사람과 사람이 서로 이기심 을 버리고 협력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협력은커녕 뒤죽박죽 상 황이 되고 말았다. 코로나로 전 세계가 더욱 단절돼 버렸기 때 문이다.
우리 신세도 한없이 처량해졌다. 집 안에 있는 사물들, 텔레비 전이나 의자, 커튼, 탁자 같은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리가 산 자 인지, 죽은 자인지 아무도 관심이 없는 듯했다. 무덤 같은 집만 이 우리를 담고 아무렇지도 않게 낮과 밤을 통과하고 있었다.
-김은정 <돈버는 유령> 중에서
<출판사서평>
문학은 일상 속에서 자기 존재를 찾아가는 것이다.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나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내 존재를 확인 하는 일을 <동서문학>이라는 숲에서 찾아가고 있다. 동서문학회 회원들은 모두 문학의 꿈을 향해 가는 사람들이다. 때론 그 꿈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고 견디기 힘들만큼 아프기도 한다. 하지만 그러기에 더 간절하게 꿈을 소망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이 책은 동서문학회 회원들이이루고 싶은 꿈을 세상에 펼쳐 보이는 통로의 장이다. 모든 엄마와 아내와 여자들에게 전하는 삶을 향한 외침. 이 세상의 그녀들이 읽으면 좋은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