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 조국환 제공
Q. 안녕하세요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저는 조국환이라고 합니다. 음악, 그림, 운동, 사변, 유의미한 대화 등 세상 모든 비효율을 사랑하는 사람이자, 통찰, 유능함, 쓸모있음 등 효율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직업은 케이디앤파트너스 수원사무소에서 법무법인을 운영하고 있는 대표 변호사입니다. 저희 로펌은 민사, 형사, 가사 등 다방면의 사건들을 다루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부동산 관련 분쟁, 인테리어 분쟁 상황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취미는 크로스핏입니다. 저는 5년 차 크로스피터(crossfiter)이자, 크로스핏 트레이너 LEVEL1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크로스핏에 진심이던 때가 있었습니다.
운동을 하는 그 순간은 잠을 자는 시간 외에 유일하게 뇌가 정지하는 순간 같습니다. 머리에게는 휴식시간이 주어지는 셈이지요.
그렇게 새로워진 머리와 길러진 체력은 제가 일을 하든, 사람을 만나든, 무엇을 누리든 도움을 주어왔습니다.
Q. 변호사라는 직업을 선택하게 된 이유가 있나요
A. 이과생으로 수능을 마친 직후인, 열아홉 말미에 기차표와 지도만 들고 홀로 유럽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평소 로마의 역사나 인물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지라 여러 도시 중에서도 로마를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유명한 건물들과 거리를 거닐다가 당시 서구 세계를 지배하였던 구 로마의 중심지, 포로로마노에 섰습니다. 수많은 폐허들, 보기에는 돌무더기들뿐인 그곳에서 홀로 멀쩡히 서있는 고대 로마의 재판소, 집회장이었던 바실리카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전부터 계속 생각했었습니다. 어떻게 로마가 유럽을 지배할 수 있었을까. 여러 책들은 로마는 전기만 없었을 뿐이지 뇌 수술을 하고 엘리베이터가 있었을 정도로 기술이 발달된 국가로서 그 외에도 굉장한 행정력과 군사력으로 세상을 지배한 것처럼 답을 제시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큰 규모로 홀로 서있는 바실리카는 마치 로마가 유럽을 지배한 힘의 가장 밑바탕은 그들의 수준 높은 법치제도였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로마가 수많은 여타 민족들을 정복하고 그 영토를 지배하면서도 긴 평화로운 시기를 구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의 정교하면서도
로마인만이 아니라 만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통용력을 지닌 법치제도로 국가를 운영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을, 로마의 이러한 틀은 현 서구 국가들의 모습의 기초가 되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과로 정했던 가장 큰 이유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큰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였고 이 이상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는 직업은 의사 또는 공학자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로마에서의 저는 세상에서 더 큰일, 더욱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길은 한 분야의 기술을 배우는 것이라기보다는 법을 배워서 세상이 움직이는 힘을 이해하고 그것을 적절하게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게 되었고 귀국 후
법대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위의 결심에 따라 법대에 진학하고자 2008년 2월 중순에 문과로 전과하고 8개월간 문과생으로서 수능을 다시 준비하였습니다. 물론 2009년에 로스쿨 제도가 시행됨에 따라서 법대들이 다수 사라지기는 하였지만 처음에 뜻한 바에 따라 법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지금까지도 이 부분은 안타까운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웃음)).
그렇게 여러 반대들을 이기고 굳이 법대에 와서는 전공에 적응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대학교 4학년, 영어로 진행되는 소수 수업을 수강하던 중 해당 과목의 교수님이 저를 연구실로 부르셨습니다. 아예 학과에 관심이 없던 터라 처음으로 연구실에 방문한 것이었습니다. 교수님은 제가 뭔가를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신다면서, “우리나라에서는 법대를 진학하는 것만으로는 스무 살의 국환군이 세운 목표를 마무리 짓는 것이 되지 못해요. 그러니까 일단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스무 살의 국환군의 목표를 마무리하고 유학을 가보는 것은 어때요?”라고 하셨고, 너무 맞는 말이라 생각한 저는 로스쿨에 진학하여 변호사가 되었습니다.
Q. 지금 자리에 오기까지 어떤 어려움들이 있었나요
A. 법조계를 기준으로 저는 비교적 어린 나이에 개업을 선택하였고 벌써 시간이 꽤 흘렀습니다. 과거 로펌에서 일할 때부터 금세 인정받았었고, 스스로도 잘할 자신이 있어서 남들보다는 다소 이른 나이에 개인 로펌을 운영하기 시작했습니다(이 또한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안타까운 순간입니다(웃음)). 젊은 나이에 한 회사를 대표해야 한다는 중압감, 식구들을 챙겨야 한다는 책임감과 주변의 걱정들도 있었고, 제가 선임한 사건이므로 사건 진행에 잘못이 있으면 의뢰인에 직접적으로 손해를 입히게 되기에 부담감도 훨씬 컸습니다. 하지만 제 나름대로 의뢰인들을 대하고 싶은 모습, 태도, 소명이 있었고 그에 따라 의뢰인에게 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였습니다. 의뢰인들과 진솔한 소통을 하는 방법, 그렇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방식들을 일찍이 만들어 갈 수 있었기에 장기적으로는 정말 좋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 조국환 제공
Q. 살면서 큰 영향을 받은 사람이 있었나요.
A. 당연히 부모님입니다. 어머니는 항상 책을 읽으시는 분이었고, 아버지는 항상 일을 하고 있는 분이었습니다. 각자 생각과 의견들이 있는 분들이었으나 제가 제 의견을 가지고 제 생각으로 삶을 일구어 나가기를 간절히 바라는 분들이셨습니다. 그렇기에 제가 전과를 해서 대학을 다시 가겠다고 하였을 때도, 방황을 하다가 1년 동안 알바를 하며 지내보겠다고 할 때에도, 보증금 없이 혼자 독립해서 살아보겠다고 할 때에도, ‘이유’를 가지고 설명을 하였을 때 우기는 것이 아니라 제 스스로 진정으로 납득된 상황임을 인지하시면 언제나 그 결정을 존중해 주셨던 것 같습니다.
Q. 가장 인상 깊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A. 초기에 꽤 소액인 사건으로 의뢰인 한 분이 오셨었습니다. 결론적으로는 상대와 잘 이야기가 마무리되어서 합의서를 작성하게 되었는데, 굳이 양보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을 양보해가면서 합의 내용을 변경을 해주자고 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왜 그러시냐고 했더니, 의뢰인께서 “돈 없어서 못 준 걸 테니까, 그냥 이 정도만 받는 걸로 해도 될 것 같아요. 나머지는 천국 가는데 쓰는 노잣돈이라고 생각할게요”라고 답하셨습니다. 물론 의뢰인께 말씀은 안 드리고 집행권원은 받아놨지만, 그 의뢰인의 마음이 계속 먹먹하게 제 기억 속에 있습니다.
Q. 변호사가 갖춰야 된다고 생각하는 자질은
A. 유능함입니다. 그리고 가벼운 사건은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 소명의식이며, 그다음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와 집념이라고 생각합니다. 변호사의 업무는 승소가 아니라 분쟁을 ‘해결'하는 데 있다고 믿습니다. 굳이 소송으로 진행될 필요가 없음에도 이익을 위해 소송으로 연결시키는 경우도 간간이 들려옵니다만, 의뢰인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법적 절차를 밟는 ‘방법’이 아니라 1초라도 빠른 문제 해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인지 저희 팀은 법적 절차 외에도 다양하고 창의적인 방법들로 의뢰인이 더욱 불리한 상황에 있었을 때도 합의를 이끌어낸 경험들이 꽤 많은데, 이런 경우 의뢰인분들과 기쁨을 나눌 때마다 희열을 느낍니다.
Q. 국환님은 어떤 (사람이, 변호사가) 되고 싶나요
A. 멍멍이도 새들도 송아지도 고라니도 요즘 유행하는 고래도 다 와서 각기 자신의 모습으로 저랑 있을 수 있는, 그런 ‘공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시간이 지나며 내 주위의 벽이 공고해지는 것이 아니라 울타리가 점점 더 넓어지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끝없이 도전하고, 배우고, 부딪히려고 노력한답니다. 직업적으로는, 쓸모 있는, 일 잘하는 변호사가 되고 싶습니다. 제가 하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가 진정으로 최선이라는 것을 우리 팀도 의뢰인도 그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수준의 최선을 지닌 그런 직업인이고 싶습니다. 어쭙잖은 도움은 오히려 타인에게 해악이 될 수 있으니, 누군가를 조력하는 일을 한다면 높은 수준의 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 조국환 제공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있나요
A. 단기적으로는 제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테리어 및 부동산 건축 분쟁의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월 50만 원짜리 월세방을 계약하는 데에도 부동산을 통해 진행하는데, 수천~ 수억짜리 공사 계약을 하면서 계약의 보장성과 안정성 체크 없이 업체-개인이 직계약을 합니다. 그마저도 계약서를 제대로 쓰지 않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업체들에겐 신뢰 및 안정성을 주는 보증서와 같은 인증 제도를 도입하여 주고, 소비자들에겐 최소 수준 이상의 법률적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업체와의 거래를 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죠. 자칫 피해가 생기더라도 그에 대한 보상 방안을 미리 마련해 줌으로써 업체와 개인이 법률 기반 안에서 안정적인 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인테리어 및 건축 분쟁뿐 아니라 기타 분쟁도 예방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장기적으로는 의료보험과 마찬가지로 법률보험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일조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우리 사회가 고도화되고 정밀해지면서 사람들은 법률적인 조언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변호사와 만나는 일은 요원하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정말 많죠. 그 이유는 상담료가 붙거나, 그렇지 않으면 큰 의미 없는 상담 내지는 비전문가와 상담을 해야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부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법률 파트 또한 사회적인 병리 상황을 개인이 겪는 것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의료보험과 유사한 체제로 대강을 짜고, 구체적으로 법조에 맞는 형태의 제도를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며 이것이 제 장기적인 목표입니다.
Q. 인상 깊었던 영화나 책이 있으시면 추천해 주세요
A. 생땍쥐베리의 야간비행이라는 책을 좋아합니다. 폭풍이 몰아치는 바람에 비행사인 파비앵이 행방불명이 되자 우편을 나르는 항공 편들은 일시적으로 모두 멈추어 섭니다. 그리고 리비에르는 파비앵의 아내를 위로하고, “폭풍은 매일 오지 않으니까”라며 다시 비행기들을 내보냅니다. 그리고 “위대한 리비에르”라며 책은 마무리가 됩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수많은 폭풍의 순간들에도 다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일어서서 다시 걷는 우리 모두가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위대함이라고, 그렇게 표현해 주고 내게 알려준 작가에 참 고마웠습니다.
Q. 감사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메세지
A. 우리 조국환 변호사 팀에게 가장 고맙습니다. 저희 팀워크가 바로 업무의 성과이고, 의뢰인의 만족에 직결되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지금까지 로펌을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희 직원들의 오너십과 노력, 열정 덕분입니다. 저희 회사엔 모든 직원이 1년에 한 번씩 ‘OO의 날' 이 있습니다. 1년 동안 그 직원의 노고에 대해 감사를 표현하는 날인데요, 직원이 아무리 많아지더라도 이날들은 꼭 다 챙겨줄 예정입니다. 우리 팀, 항상 빡빡한 변호사 팀에 들어와서 고생하고 있는거 진심으로 알고 있어요. 그럼에도 항상 ‘의뢰인’을 보고 일을 해나가는 팀의 목표를 향해 같이 달려주고, 의뢰인들의 마음으로 뿌듯함을 보상받는 우리 팀 모두 모두 정말 고마워! 정신 차리고 잘해보자 파이팅!!
Q. 마지막으로 법조인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A.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이냐는 사실 어떤 사람으로 한 번 살아가 보고 싶은가와 굉장히 밀접한 부분입니다. 법조인을 준비하게 되는 수많은 스스로의 이유들을 가지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 각자의 이유가 무색해질 수 있는 순간순간마다 그 위에 먼지가 앉게 두지 마시고 탁탁 털어서 다시 바라보는, 초심을 잃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며 저 또한 다시 한번 살짝 앉은 먼지를 탁탁 털고 제 초심을 다시 보았음을 고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