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윤희 박사 칼럼]
‘세대의 복지혜택 변화에 느끼는 양가감정’
[세상소리뉴스=VOICE OF WORLD] 2023년도 정부 예산 ‘639조원’ 중, 보건복지고용에 226조6천억이 편성됐다고 한다.
정부 예산 중 복지 증진이 대폭 개편되었다는 소식이다. 취약 계층과 저소득층 고용장려금 등 민생 복지가 가장 크게 혜택받는 예산 지출 구조이다.
특히 장병 월급이 130만원 책정되고, 2025년에 205만원은 이목을 끌었다. 출산하면 1년간 매월 70만원, 24년엔 월100만원 지급된다는 내용도 있다.
청년들 복지 혜택이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다. 장병 봉급도 그렇고, ‘아이’를 낳도록 권장하는 출산 비용 지급도 획기적이다.
옛 시절을 돌이켜 보건데, 70년대 초중반에 대학을 다닌 격동의 세대들, 80년대 초에 자녀를 둔 세대들에겐 격세지감을 느끼는 정부 예산 대책이다.
공감할 것이다. 그 시대 청년들은 아무에게도 기댈 곳이 없었고, 홀로서기에 각자 긍정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킨 세대들이다. 80년대 초에 결혼해서 독립적으로 가정을 가꾼 세대들은 엄청난 격세지감을 느끼는 대책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정부가 돈을 써도 되나 하는 막연한 우려와, 지나칠 정도 민생 복지 예산 지출 구조가 커진 부분도 사회가 많이 변했다는 현실을 느낀다.
달리 자녀를 가진 부모들에겐 남자 아이 경우 이제는 영장 나와도 불만 없이 군대 가리라 믿고, 안심도 된다. 국가를 위해 복무기간이 턱없이 짧아지고 봉사료도 두둑하지 않은가. 잘한 일은 잘한다고 칭찬해 줘야지.
삼십대 중후반인 청년 사례를 들고 싶다.
군복무 기간 중 급여가 월 8만원 정도였고 부족함을 부모님이 보내줬다. 군악대 소속임에도 갖은 훈련과 사격도 시험을 통과해야 했다. 혹한기 훈련으로 며칠간 산에서 전투식량으로 버티는 생존 훈련은 애국심으로 고취시켰으리라.
훈련 중 다친 발은 아직도 달리거나 오래 걷기에 지장이 있고, 사회생활도 편치 않을 때도 있지만, 당시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란 외엔 복지는 생각도 못했다.
괜한 우려라는 것도 알지만 이런 복지 제도로 나라 살림이 과연 괜찮을까. 그러려면 혹시 특정인들이 세금을 더 내어야 되나. 그런 민생 복지 돈도 다 세금일 텐데.
정치인들은 쓰기에 바쁘고, 가계나 기업인들은 벌기에 힘들어하지만, 납세는 헌법에 의무라 했으니, 내야지. 한 나라의 올바른 시민으로 산다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준법은 기본이고, 납세와 국방은 의무와 책무 중 으뜸이다. 돌아봐야 할 사회봉사와 민생도 많다.
국가만 믿고 놔둘 수는 없지 않은가. 자녀를 가진 부모에게는 늘 걱정이 군역이다. 사회생활을 희생하는 기간만큼 봉급이라도 제대로 주는 게 맞다 싶다. 청년 사기진작에는 찬성한다.
한편으로 받는 만큼 애국심도 올라갈까 의혹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애국 교육이 부족하지 않았나 반성은 우리의 몫이다. 편안함에 안주하다 보면 더 많은 것들의 공급을 또 필요로 하기 마련이어서다.
육아는 어떤가. 70년대에 “둘만 낳아 잘 기르자”, 80년대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슬로건으로 ‘한가정 한자녀’가 정부 시책이었다. 그런지 ‘미개인’ 취급받으며 ‘3명’ 출산한 가정은 당당하지 못했고 국가가 베푸는 혜택도 없었다.
아파트 분양도 계속 떨어지고 10번째 1기 신도시에 불평등 조건이 사라지며 겨우 붙었다. 셋째는 초등학교 입학과 더불어 의료보험 혜택도 받을 수 있었다. 국가의 배려와 혜택에서 제외된 ‘세자녀 가정’ 실정이었다.
아주 먼 얘기처럼 메아리친다. 출산과 직장도 휴가를 따로 받기도 힘들던 시대였다. 요즘 같은 산후조리원의 호강도 없었다. 미래학자 인구전문가들의 실수다.
요즘 청년들 조건들이 나아지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만이 많다. 이해는 가지만 자기중심적으로 세상을 보지 않은가. 지금 노인세대에 접어든 세대들은 자녀한테 어떤 요구도 없이 그저 독립해서 사회일원으로 잘살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아동복지나 노인복지는 ‘보편적 복지로 가야한다’고 늘 주장한다. 세금 내고 자녀 양육하고 부모 부양한 세대들이 노령연금에서까지 제외되면 어떻게 되나. 액수보다 ‘존중받는 인격 가치’에 서운함과 부당함을 느낀다.
수십억 재산가가 받는 혜택에 비해, 남편 수입 있다고 변방에 살면서 제외된다면 불공정하다. 그 시대 경제교육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여기라”고 어이없는 경제교육을 시켰으니, 어리석음은 각자의 몫이다.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인 70대마저 노모 시중 드는 삶이 되고 있다. 짜증과 울분으로 사춘기와 갱년기를 다시 겪고 있는 심정이다. 어디가 한계점인지 더 지나야 알게 되나. 어디서 선을 그어야 되는가.
묻고 싶다. 푸념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배려를 찾고 있다. 세대의 불공평에 온몸과 정신으로 막고 있다. 참는 게 미덕일까.
신윤희 Ph.D.
국민교육혁신포럼 고문
현주 기자 sockopower@outloo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