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바라는 대로 되리라! 이 말을 금언 삼아 열심히 살았습니다. 안 되는 게 있으면 쉽게 잊으려 노력했습니다. 안 되는 것에 연연하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할 생각은 없기 때문입니다. 안 되는 것보다 되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고, 그 되는 것에 최선을 다하려 했을 뿐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태복음 26:41) 하나님도 인간의 약함을 알고 인정해 줘서 위로가 되었습니다. 마음은 굴뚝같아도 한계를 인정해야 할 때, 이 말은 묘하게도 절망하여 마음속에 갇히지 않고 밖으로 나와 마음을 풀어 놓을 수 있게 해 주었습니다. 약해도 괜찮아! 이렇게 들렸던 것입니다.
밖으로 나오면 문제는 쉬워집니다. 숨통이 트이기 때문입니다. 밖에 대한 이념을 생각할 때마다, 1787년 요한 하인리히 빌헬름 티쉬바인이 그린 그림 한 장이 떠오릅니다. 그림 속에는 로마에 도착한 괴테가 여관집 2층 창가에서 바깥 거리를 내다보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속옷 차림으로 창가에 기대 선 그의 뒷모습은 여유로운 여행자의 시선을 표현해 내기에 충분했습니다. 한 나라의 국정을 담당했던 최고 정치인의 휴식은 그런 것이었습니다.
1789년, 괴테의 그 자연스런 뒷모습이 그려진 시점으로부터 정확히 2년 후, 프랑스 파리에서는 20만 명이나 되는 귀족들이 단두대에서 처형을 당하는 대혁명이 일어났습니다. ‘하나에만 집착하는 시선’이 사람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만드는지 증명해 주는 사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웃나라 독일에서는 ‘밖을 내다보는 행위’로 인해 그런 참혹한 역사는 피해 갈 수 있었습니다. 괴테가 질풍노도에서 고전주의로 넘어가는 길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공부했던 독일 바이에른 주의 바이로이트 대학 도서관 2층에 괴테의 전집이 보관되어 있는 공간을 자주, 아니 거의 매일 들렸습니다. 양팔을 활짝 펼쳐도 닿을 수 없는 거리만큼 그 전집의 분량은 대단했습니다. 그런 수많은 책들이 선반 위에 가지런히 정리 정돈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볼 때마다 남다른 생각으로 말없이 다짐을 하곤 했습니다.
“일단 쓰레기 글이라도 써 놓아라. 그런 글들 속에서 진주 같은 글이 탄생하는 것이다.” 어디선가 읽은 기억은 나는데, 아직까지도 그 글을 찾지 못했습니다. ‘쓰레기 속에 진주가 있다’는 그 말을 찾아 아직도 발견 여행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그 말의 위치가 중요한 이유는 그 말을 나의 책 속에 꼭 ‘인용’해 놓고 싶기 때문입니다. 유학시절 연구실 벽에 이 글을 써 붙여 놓기도 했습니다. 그때는 이 말을 숭배하고 또 그가 말한 대로 확신을 갖고 글을 써 댔습니다. 지금까지 나의 인생을 이끌어 준 이념 또한 이 말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대학생 때는 ‘하루에 한 장씩!’이란 말을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이것은 ‘하루에 최소한 한 페이지를 쓰자’는 결심이었고, 나와의 약속이었습니다. 독서가 주主였던 대학생 시절에는 글쓰기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글을 쓰는 시간은 거의 시험 때뿐이었습니다. 그때는 잠들기 전 이불 속에서 일기장을 펼치며 겨우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시작 문구는 한결같이 ‘피곤하다’, ‘피곤해서 죽을 것 같다’였습니다. 치열했던 독서 여행을 마친 후 잠들기 직전에 내뱉는 말로서 그런 표현 외에는 쓸 말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매일같이 피곤함을 기록하며 잠이 들었습니다. 꿈속에서 간신히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는 여유를 보였습니다.
요즈음은 사실 노안이 심해져서 독서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도 나는 죽음이라는 단말마의 고통이 엄습하는 그 마지막 순간에도 글을 읽거나 글을 쓰고 있으리라 다짐해 봅니다. 희망을 넘어 욕심까지 부려 본다면, 이 컴퓨터도 누군가가 책임지고 가져가서 이 안에 있는 수많은 쓰레기들을 발견하고 또 그것을 진주로 만들어 빛 속에 드러내 주기를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