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 사형제도에 대한 성찰과 회복적 정의

[대한민국청소년의회 뉴스 / 권효민 사무국 인턴기자]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우리는 고민 없이 “없다.”라고 답할 수도 있지만, 세계 곳곳에서 인간에 의한 인간의 죽음이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사형제도가 그 형태 중 하나이다. 사형제도는 중죄를 저지를 범죄자의 생명을 공권력을 통해 앗아가는 것이므로, 법에 의한 처형이라고 할지라도 결국 인간이 한 사람의 ‘살 권리’를 판단하고 박탈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지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가?  


현재 한국은 실질적 사형 폐지 국가지만 여전히 사형제도의 존폐에 대해 치열한 논쟁이 계속되고 있다. 사형제도에 대한 입장은 크게 사형제도의 금지를 주장하는 철폐론과 사형제도의 허용을 주장하는 존속론으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철폐론자의 입장을 살펴보면 아무리 중죄를 저지른 범죄자일지라도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받아야 하며, 응징보다는 회복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일관되게 등장한다. 범죄자를 죽이는 것은 윤리적으로 잘못되었을뿐더러 효과성이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존속론자의 주장을 살펴보면 사형은 범죄자를 엄중히 벌함으로써 피해자의 존엄성과 감정을 회복시킬 수 있는 동시에 범죄자를 이성적 존재로 대우함으로써 그의 존엄성까지 지킬 수 있는 제도라는 견해가 보인다. 그들이 특히 강조하는 것은 피해자의 감정이다. 응보적 법 집행은 피해자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존속론의 주요 근거 중 하나는 가해자를 사형시킴으로써 피해자의 억울함을 해소하고 그를 회복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질문해야 한다. 과연 가해자를 죽인다고 해서 진정으로 피해자가 치유될까? 형량을 무조건 세게 준다고 해서 피해자 집단이 만족하는가?


사법적 결정에서 어떠한 처분이 내려지든 가해자는 언제나 억울해하고 피해자는 언제나 불만족스러워한다. 이는 법이 피해자의 상처에 대한 회복 없이 가해자의 처벌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가해자를 사형시킬 경우, 피해자는 분노의 대상이 한순간에 사라져버리기 때문에 허망함을 느낄 수밖에 없다. 가해자의 죽음으로 남는 것은 회복과 기쁨이 아닌 대상 없는 미움과 실체 없는 분노인 것이다. 따라서 존속론이 주장하는 사형을 통한 피해자 회복은 허상이며, 사실은 피해자의 만족보다 강력범죄자가 처형됨으로써 대중들이 느끼는 쾌감과 만족감이 사형제도 유지에 더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사형제도의 유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피해자의 감정을 중시하는 듯 보이지만, 사실은 피해자의 회복보다 가해자의 처벌에 더 관심이 있다. 응보적 정의의 목적은 결국 죄를 지은 사람에게 그에 맞는 합당한 벌을 주는 것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응보적 정의를 기반으로 하는 엄벌주의는 더욱 가해자의 처분에 집중한다. 이렇게 가해자를 엄중하게 처벌하는 데에 집중하게 되면 피해자의 상처는 도외시되고, 가해자의 억울함과 피해자의 아픔은 심화되어 결국 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을 낳게 된다. 엄벌주의는 공동체의 회복을 오히려 저해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회복적 정의이다. 회복적 정의의 궁극적인 목적은 피해자 및 가해자, 그리고 관련자의 회복을 통한 공동체의 회복이다. 회복적 정의가 가해자에 대한 처벌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가해자에 대한 사법적 대응은 분명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사자와 공동체의 회복이라는 것이다. 가해자는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처벌을 받음으로써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도움으로써 책임을 져야 한다. 피해자의 회복은 가해자의 진정한 사과와 그에 대한 용서로 이루어질 수 있으므로, 사회는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진정으로 용서를 구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어야 한다. 이로부터 공동체의 회복이 도모된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인간이 인간의 목숨을 빼앗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필자는 “없다”라고 결론 내리는 바이다. 인간의 생명권을 박탈하고 공동체 회복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사형제도는 존재해서는 안 된다. 대신, 우리 사회는 회복적 정의를 추구하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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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효민 사무국 인턴 기자 vicky0616@naver.com
작성 2022.10.21 11:17 수정 2022.10.21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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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