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학교 여섯 달 과정을 마치고 마지막 날이면 수료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하곤 합니다. 수료 후 회사생활을 시작하며 좌충우돌하는 이들을 지켜보면서 떠오른 생각들에다 주변 편집장들의 의견을 참고해서 만들어 본 것이지요. 학교를 떠나면야 각기 다른 상황에 제각각의 인생길이 펼쳐져 있을 뿐이니 어쩌면 나의 노파심이나 전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실이 중요하지, 미주알고주알 꿰어 봐야 실감이 나겠습니까마는 엄혹한 현장에서 자리 잡는 일이 녹록지 않은지라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좋겠더군요. 가끔 찾아와서는 제 잔소리만 듣고도 후련해하는 예도 있고 말입니다. ‘당의 말’의 요지는 조급해하지 말라는 겁니다.
입사하자마자부터 원고를 맡아 진행하는 예도 많고, 반년은 연수를 거쳐 팀의 잡다한 업무까지 도맡아 한 뒤에야 책임편집을 맡기도 하고, 편집 이외에도 주문장을 처리하거나 홍보 관련 업무를 동시에 진행하며 초년 생활을 하는 예도 있습니다. “나는 이런 분야에서 일하겠어.” “나는 이런 저자와 이런 책을 만들겠어.” “이건 내 업무가 아니야.” “내가 책 만들러 들어왔지…….” 한 십 년쯤 일한 뒤에나 할 만한 말을 하고 있다간 자꾸 코나 깨게 됩니다. 회사는 당신이 원 하는 일을 하게 해 주는 곳이 아니고, 당신은 회사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입사한 것이니까 말입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객관적으로 답할 수 있을까요? 사태를 파악하고 자신의 일을 아는 것,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실은 단순해 보일지라도 절대 단선적이지 않죠. 수십 가지 맥락이 관통하여 상호 작용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초년 편집자들이 힘든 까닭 가운데 하나는 단순한 해법으로 사회를 판단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상이 현실에 균형을 이루지 못한 채 사회에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편집자’라는 직업을 성급하게 판단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자료제공 : 투데이북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