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그곳에 가고 싶다'] 북한산 숨은벽

여계봉 선임기자

 

북한산 숨은벽

 

 

아침 공기를 헤치고

밤골로 들어서니

국사당 굿판 소리에

잠을 설친 밤나무들은

애꿎은 이파리만 털어내고 있다

 

서리맞아 더욱 붉어진

상장능선과 파랑새능선을

좌우로 거느리고

사기막 능선은 

가을의 끝자락을 달리고 있고

 

오랜만에 만난

해골 바위 두 눈에는

서러운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우람하고도 장엄한

백색의 대슬랩은

하늘 향해 용오름 하는데

 

사이사이로

누가 저리 곱게

물감을 뿌렸을까

 

이십 년 전 어느 가을날

쏟아지는 아침 햇살을 품은

너를 처음 본 순간

심장이 멈추는 줄 알았다

 

 

인수봉과 백운대 사이에 숨어

내내 무명으로 지내다가

이름 얻은 지 이제 50년

 

그 오랜 세월을

이름 없이 은거한

대은(大隱)의 품격은

이 가을날에 더욱 빛난다

 

이제 가을의 끝자락

반쯤 지워진 입술로

부르다만 가을 노래를

마저 부르려는 듯

 

숨은벽은 그렇게 가을을 떠나보내고 있다.

 

 

*북한산 숨은벽: 북한산의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있는 거대한 암벽. 백운대와 인수봉 사이에 가려져 숨어 있는 듯 잘 보이지 않는 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북한산 밤골탐방지원센터에서 출발하여 백운대 방향으로 1시간 정도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yeogb@naver.com

 

 

 

 

 

 

 

 

 

 

 

 

작성 2022.11.17 09:54 수정 2022.11.1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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