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안(西安)에서 유구한 중국 역사를 만나다

2부 : 도도하게 흐르는 황허에 비친 시안의 빛과 그림자


'황허(黃河)를 다스리는 자, 천하를 다스린다.'라고 한다.


시안에는 도도히 흐르는 황허의 물줄기 중 하나인 위수(渭水)가 지나간다. 중화문명이 탁한 황허의 물길과 함께 찬란히 꽃 피웠지만, 이 속에는 몇 세대에 걸쳐 순교의 피를 흘리며 거인에 맞서 싸운 회족(回族)의 슬픈 역사도 따라 흐른다.

 

중국 소수민족 중 하나인 회족은 실크로드를 따라 7세기경부터 이주한 이슬람교도들이다. 현재 중국에 거주하는 회족의 인구는 대략 860만 명으로 조사되고 있다. 회족은 중국 여러 지역에 골고루 퍼져나가 살고 있지만 특히 서북 지역에 많이 산다. 현재 시안에는 2~3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시안 회족거리에는 흰색 모자를 쓰고 양꼬치를 파는 상인들과 노점들이 줄지어 있다. 양을 도축해 걸어놓고 살을 발라 나무 꼬챙이에 고기를 꿰어 굽는다. 다른 한쪽엔 여러 가지 이국적인 음식을 차려 놓고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붙잡는다.

 

이 거리의 인기 메뉴인 뱡뱡면은 면의 폭이 벨트처럼 넓고 매운 고추를 얹는 게 특징이다. 옛날에는 서민들이 즐겨 먹었지만, 지금은 산시성을 대표하는 면 요리로 꼽힌다. 중국에서도 가장 복잡한 한자(漢字) 중 하나로 꼽히는 자는 무려 57획이다.


회족거리 뱡뱡면 가게. 간판에 적힌 ‘뱡’자와 ‘淸眞’이라는 글자가 이채롭다. 근처에 회교사원 ‘청진사’가 있다.
뱡뱡면. 국수 면발이 마치 고무벨트처럼 넓적하다.
가게 앞에 서있는 회교도 동상의 표정이 예사롭지 않다.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투쟁하는 종교 지도자 모습 같다.



회족거리와 붙어있는 고루(鼓楼)는 북을 쳐서 시간을 알리는 곳이다. 시안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종루와 고루 사이의 광장은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만남의 광장이며, 두 곳은 지하도를 통해 도보 5분이면 오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에 서로 마주보며 위치한다. 규모는 종루가 좀 더 크지만 건물 양식은 비슷하다.

 

종루(钟楼)는 남아 있는 중국의 수많은 종루 중에서 제일 크고 보존 상태가 완벽하여 시안의 상징적인 건물로 통한다. 종루를 중심으로 시안의 4개 주요 도로가 교차하는데, 야경을 즐기려는 시민들과 관광객들로 늘 북적인다. 종루는 성문이 열리는 시간을 알리기 위해 명나라 때 건설되었다고 한다.

 

종루. 당시에는 70번 타종한 후 성문을 열었다고 전해진다.

 

 

덕발장((得发长)은 서안의 유명한 만두 전문 맛집으로 8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중국적이면서도 현대적인 인테리어가 조화롭고 화려하며, 규모도 커서 호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전통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정면의 고루와 오른쪽의 덕발장. 우리나라 대통령도 방문한 맛집이다.

 

 

당 고종은 어려서 여읜 어머니 문덕황후를 기리기 위해 자은사(慈恩寺)를 건립한다. 대당 서역기를 저술한 현장이 인도에서 가져온 불경을 보관하기 위해 대안탑(大雁塔)을 세운다. 47층 높이 64m의 누각식 전탑인 탑은 각층 사방에 있는 아치형의 작은 창을 통해 시안 시내 전망을 감상할 수 있어 많은 이들이 탑을 오른다.


대안탑. 현장은 경비가 모자라 표면만 벽돌로 쌓고 내부는 흙으로 채운 탑을 세웠는데, 얼마안가 탑이 무너지자 측천무후가 이를 허물고 벽돌로 다시 세우게 된다.

 

 

흥경궁(興慶宮)안록산의 난으로 현종이 장안을 버리고 도망치기 전까지 양귀비와 사랑을 나누던 밀월 장소다. 안록산의 난이 진압된 이후 흥경궁은 정치의 중심지로서 기능을 상실하고 퇴위한 황제가 머무는 곳으로 평가절하 된다. 현종과 양귀비가 뱃놀이를 하던 용지(龍池), 가무를 즐기던 침향정(沈香亭), 집무를 보던 근정루(勤政樓) 등 역사적인 유적들이 남아있다.

 

시안 교통대학 앞에 있는 흥경궁. 원래 당의 황제들은 대명궁에 기거했는데 현종만이 양귀비와 여기서 살게 된다.

 

 

현종의 집무실이었던 근정무본루(勤政務本樓)의 터.

 


어느 날 침향정에서 양귀비와 함께 술을 마시며 모란을 감상하던 현종이 갑자기 한림학사 이백을 불러들인다. 당대의 명창 이귀년은 이백을 찾아 헤매다가 주점에서 흠뻑 술에 취해있는 이백을 발견한다. 고주망태가 되어 이귀년 등에 업혀 침향정으로 온 이백에게 현종은 시를 짓게 한다. 붓을 집어든 이백은 거리낌 없이 일필휘지의 솜씨로 시를 지어 바치는데, 이 시가 바로 청평조사(淸平調詞)’ 3수다.

 

이백은 이 시에서 양귀비를 나라를 망친 한나라 성제의 황후 조비연과 비유하는데, 이 때문에 양귀비의 미움을 사게 되고 현종으로부터도 궁중시인의 자격을 박탈당하고 결국 궁에서 쫓겨난다.

 

용지 물가에 서니 이곳에서 뱃놀이를 즐겼을 중국 황제들이 떠오른다. 재상 위징이 당 태종에게 올린 열 가지 생각을 간하는 상소문(諫太宗十思疏)’에 이런 말이 나온다. ‘두려워할 것은 오로지 백성뿐입니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위정자들이 꼭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용지. 호수 안쪽 인공섬 안에 침향정이 있다.

 

 

대흥선사(大兴善寺)는 시안 최고(最古)의 사찰로 289년에 축조되었다. 수나라 때 확장공사를 하고 현재의 이름을 얻었으며, 당나라 때에 이르러 크게 번성하였다. 처음으로 중국에 밀교를 전파한 사찰로 유명하다. 은밀하게 가르침이 전해지는 밀교는 당시 크게 유행하였으나 주술적이고 은폐적인 경향이 강하다는 이유로 당이 멸망한 이후 점점 사라져갔다. 지금도 절 자체는 중국 밀교의 본산으로 유명하지만 종파는 거의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대흥선사. <왕오천축국전>을 쓴 신라의 혜초스님이 불경을 번역한 곳이기도 하여 한국인에게는 의미가 깊다.

 

 

비림(碑林)은 시안의 문묘(文墓)에 있는 역대 중국의 귀중한 비석을 수집하여 모아놓은 비석박물관이다. 특히 당(), () 이후의 석비(石碑)와 법첩(法帖)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 현종(玄宗) 어주효경비(御註孝經碑)와 안진경(顔眞卿), 구양수(歐陽修), 저수량(褚遂良), 서호(徐浩), 몽영(夢瑛) 등이 쓴 돌비석이 유명하다. 당송 이후 근대에 이르는 비석과 순화각법첩(淳化閣法帖)을 비롯한 유명한 서가(書家) 법첩의 석각(石刻)을 많이 수집하여 지금은 500여개 이르는데 작품을 보관하는 건물이 여섯 채나 된다.

 

비림 입구의 현판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담겨 있다. 청나라 말, 관리 임칙서가 쓴 현판의 ()’자에 획이 하나 빠져 있다.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하러 가다가 이곳에 들러 현판을 쓴 임칙서는 난을 평정한 후 다시 와서 빠진 획을 그려 넣겠노라는 약속을 하고 전장으로 떠난다.


 

임칙서가 도중에 병사하는 바람에 비림의 현판은 아직도 미완의 상태로 남아있다.
청나라 화가 마덕소(馬德昭)의 괴성점두도(魁星點斗圖). 이 비석 앞에는 수험생을 둔 학부모들이 탁본을 하기 위해 항상 줄을 서있다. 시험을 앞두고 마음을 가다듬도록 해준다고 해서 공부하는 학생들 방에 많이 걸어둔다고 한다.
석각예술관 소장품. 여러 종류의 석관들이 전시되어 있다.



비림 근처에 있는 서문원거리는 명, 청 시대의 옛 정취가 물씬 풍기는 거리다. 거리 양쪽으로 오래된 옛 중국풍의 상가가 그대로 보존 되어있고, 골동품과 서화, 다양한 붓, , 벼루, 종이 등을 팔고 있다.


문방사우와 도장을 조각해서 파는 서문원거리는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 풍경을 만날 수 있는 그런 곳이다.

 

대당부용원(大唐芙蓉园)은 실제 당나라 황실 정원이었던 황가어원을 재현한 테마파크이다. 엄청나게 규모가 큰 호숫가에는 정자, 누각, 다리 등 건축물들이 뛰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도심 한가운데 조성된 테마파크라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기대하고 간다면 살짝 실망할 수 있다.

 

대당부용원의 공연장. 매일 저녁 마다 넓은 호수에서 분수쇼와 레이저쇼가 펼쳐진다.

 

과거 시안의 동쪽에는 토산품을 거래하는 재래시장이, 서쪽에는 서역에서 들여온 수입품을 거래하는 국제시장이 있었다고 한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 두 개의 시장을 '동쪽과 서쪽의 시장'이라고 부르다가 점차 '없는 것 없이 모든 물건이 다 있는 곳'으로 통시(东西)'라고 불렀으며, 이 단어가 점차 '물건', ’상품을 뜻하는 명사로 뜻을 바꾸어 불렀다. 당시 시안의 사회적 규모와 경제적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나 베이징, 상하이, 선전 등 중국 동부 연안 지역의 도시들이 새로운 영광을 구가하는 동안, 시안을 비롯한 옛 중원 지역은 영광의 빛이 바래진 잿빛 고도(古都)가 되어 경제적으로 빈곤하고 문화적으로 낙후된 채 살아왔다.

하지만 그런 시안이 최근 부흥을 꿈꾸고 있다. 바로 일대일로(一带一路)라고 불리는 '실크로드' 의 허브 역할을 맡으면서 시안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이다.

 

여행 기간 내내 눈이 왔어도 시안 시내는 뿌연 연기를 뒤집어 쓴 채 도시 여기저기 낡은 옛 건물들이 철거되고 높게 뻗어 올라간 빌딩과 아파트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다. 도심의 이런 모습들은 고도(古都)의 향수를 기대하고 시안에 온 여행자들에게 생경하고 묘한 이질감을 불러일으킨다 

 

도심을 밝히는 대당부용원의 화려한 전광판에 과거의 흔적이 담기지 않아 안타까울 뿐이다.



중국몽(中国梦)을 꿈꾸는 도시.

실크로드의 부활을 노래하는 고도.

동서의 문화, 흥망의 역사,

고대와 현대가 뒤섞인 시안이 다시 용트림하고 있다.

과연 시안은 과거의 영광을 재연할 수 있을 것인가.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3.05 11:40 수정 2019.03.05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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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1/1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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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자님 (2019.03.09 09:38) 
시안여행
시안여행 1,2부 잘 보았습니다. 몇년전 다녀온 서안이 기사를 보고 나니 생경하게 다가옵니다. 서안의 문화, 역사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소상하게 정리해주신 기사님께 감사드려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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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