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식 칼럼] 옛날장터가 그립다

김태식

어느 아파트 주위에 장날이 있다. 금요일마다 열린다고 하여 ‘금요장터’라 이름 붙여진 장날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장이 서니 3일장도 5일장도 아닌 7일장인 셈이다. 재래시장이 많이 사라지고 서구화된 대형마트들이 줄지어 들어서다 보니 옛날장터의 흉내를 내느라 아파트 관리소 측에서 짜낸 아이디어라고 한다. 

 

바쁜 현대인들의 일상에 맞춰 이동 시장이 서는 셈이다. 그러나 장날은 평소에 구하지 못하는 물건을 사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 못내 아쉽다. 재래시장의 분위기는 온데간데없고 요즈음의 대형할인매장이 길거리로 나온 기분이다. 모든 상품들은 규격화되어 있고 덤으로 얹어 주는 재미도 없다. 

 

시장이 파할 무렵 떨이를 하는 인심도 없다. 상인들은 이 시장에서 팔고 일주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고 다음 날이면 또 다른 아파트의 장터로 가니 남은 물건이 걱정될 것이 없단다. 

어릴 적, 내 고향 옛 장터의 추억이 그립다. 

 

먼저 요즈음 같이 시멘트 포장길이 아니라 흙바닥이다. 장날이 아니면 구하기 힘든 물건들이 눈에 띈다. 할머니는 가려운 머리를 긁적이며 장날이 아니면 오지 않는 참빗장사를 기다렸다. 쥐틀 장사가 나오는가 하면 화장실에 뿌릴 약품도 장날이 아니면 구하기 힘들었다. 어디에서 만들어 오는지 모르겠지만 효험이 좋은 피부약도 이 때 구해 놓지 않으면 안 되었다. 

 

방학 때에는 집에서 기르는 토끼가 새끼를 낳았다고 용돈을 벌기 위해 나온 어린이가 있었는가 하면 예쁜 강아지를 바구니에 담아 팔려가기를 기다리는 어린 소녀도 간혹 있었다. 어쨌든 장날에는 평소에 나오지 않는 물건들이 많았다. 

 

아저씨들이 많이 모인 시장의 한쪽 구석에서는 호랑이 가죽을 갖다 놓고 무엇인가 열심히 선전하는 장사꾼이 있었는데 무엇을 팔기 위한 것이었는지 지금도 잘 모르겠다. 그런가 하면 뱀이 병 속에서 목을 내밀며 오르락내리락하다가 혀를 벌름거리기도 했는데 구경하던 어린 우리들을 저리 가라고 외쳤다. 

 

윗옷을 벗어젖힌 건장한 청년이 손으로 벽돌을 깨고, 빈 병의 주둥이를 자르고, 이마로 송판을 부수고 난 뒤에 그들은 소리를 지른다. 어렴풋이 들렸던 얘기는 ‘밤이 무서운 아저씨들 이리로 와서 들어 보세요’ 아니면 ‘마누라 눈치 보는 남편들 오세요' 등으로 기억된다.

 

해가 기웃기웃 넘어갈 때쯤이면 장사꾼들은 삼삼오오 모여 술판을 벌였다. 천막 아래 솥을 걸고 해장국을 끓이는 할머니는 막걸리잔을 주고받는 사람에게 안주를 더 퍼 준다. 가마솥에서 졸여진 국물은 짜게 되고 어차피 버려야 할 판이니 인심을 쓰는 것이다. 흔히 쌀독에서 인심난다는 말이 있는데 이쯤 되면 가마솥에서도 넉넉한 인심이 퍼 올려 진다. 

 

시장이 파할 무렵이면 떨이를 하는 상인들의 손길이 바빠진다. 거나하게 술기운이 오른 엿장수는 가위를 더욱 신명나게 두들긴다. 술이 취했음에도 엿을 규격에 맞도록 정확하게 자르던 모습은 지금도 신기할 뿐이다. 

 

엿을 모두 팔고 가는 엿장수의 빈 수레에는 어김없이 지푸라기로 묶은 생선 몇 마리가 얹혀 있었다. 시골길을 터벅터벅 걸어가던 모습은 지금도 나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진솔한 삶의 흔적까지.

 

장날에 섰던 시장이 모두 파하고 술에 취한 할아버지는 몸을 가누기 어렵고, 그 할아버지를 부축해 가는 어린 손자도 함께 기우뚱거리던 옛날 장터가 머리에 떠오른다. 아파트 주위에서 열리는 금요장터를 지날 때면 옛날장터가 더욱 그리워진다. 

 

[김태식]

한국해양대학교 대학원

선박기관시스템 공학과 졸업(공학석사)

미국해운회사 일본지사장(전)

울산신문 신춘문예(등대문학상) 단편소설 당선 등단

사실문학 시 당선 등단

제4회 코스미안상 수상

wavekts@hanmail.net

 

작성 2022.12.20 11:32 수정 2022.12.20 1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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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