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강(東江) 백운산 자락에 사는 동강할미꽃을 만나고 싶어 눈이 드문드문 내리는 강원도 길을 달려서 점재마을에 도착한다. 동강할미꽃을 빨리 볼 욕심으로 다리를 건너자마자 강가로 내려서서 할미꽃 군락지가 있는 영월 쪽 방향으로 1 km 정도 강을 따라 내려 낸다.
동강에 기대 사는 사람들은 이 꽃을 그냥 ‘할미꽃’이라 불러왔다. 그러던 것이 ‘동강할미꽃’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얻게 된 것은 동강지역에서만 발견되는 한국 특산 식물임이 밝혀지자 지역명인 '동강'을 붙여 세계 학계에 공식 발표하기에 이른 것이다. 그 때문에 학명에 서식지인 동강이 표시되는 아주 귀하고 특별한 꽃이 되었다. 그 즈음 동강댐 건설을 추진 중이던 정부의 정책을 포기하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동강할미꽃이기도 하다.
동강할미꽃은 강원도 평창과 정선 지역을 지나는 동강 주변 석회암 바위틈에서 자라는 야생화다. 동강할미꽃은 꽃이 땅을 보고 피는 일반 할미꽃과는 달리 하늘을 향해 피고 바위틈에서 자라는 것이 다르다.
동강할미꽃과의 ‘짧은 만남, 긴 여운’의 조우를 마치고 이제 노루귀 서식처인 칠족령으로 가기 위해 백운산을 오른다.
백운산은 정선에서 흘러나온 조양강과 동남천이 합쳐져서 이루어진 동강을 따라 크고 작은 6개의 봉우리가 이어져 있고, 동강 쪽으로는 칼로 자른 듯 급경사의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다. 오늘 산행은 점재마을을 출발하여 정상에 오른 후 칠족령을 지나 제장마을로 하산하는 약 9km 코스인데, 산행의 시작과 끝에는 동강을 건너야 한다.
유홍준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국토의 오장육부’라고 표현한 정선, 평창, 영월 땅을 차례로 적시고 흐르는 동강은 험한 석회암 절벽을 굽이돌아 흐르는 전형적인 사행천이다.
백운산 산행의 백미는 뱀이 또아리를 튼 것 같이 굽이굽이 돌며 흐르는 동강의 강줄기를 능선을 따라 계속 조망하는데 있다. 그러나 능선 왼쪽 동강 쪽은 급경사의 단애로 군데군데 위험구간이 있고 경사가 가팔라서 산행 내내 조심해야 한다.
백운산은 오르막도 빡세지만 내리막길도 까칠하다. 정상에서 칠족령 가는 길은 경사가 급한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여 밧줄구간이 많다. 오늘은 눈 때문에 길이 미끄러워 산객들 모두 긴장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칠족령이란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옛날 옻칠을 하던 백운산 뒤 선비집의 문희라는 개가 발에 옻 칠갑을 하고 도망가서 그 자국을 따라 가보니 이곳까지 오게 되었는데, 여기서 바라본 풍경이 장관이어서 옻칠(漆)자와 발족(足)자를 써서 칠족령이라고 이름 붙였다고 한다. 이 개 때문에 마을 이름도 문희마을이다.
영월 신동에서 큰 고개를 넘으면 나오는 나래소에서 시작하여 동강을 따라 가수리를 지나 정선까지 이어지는 강변길은 기자가 수 십 년 동안 가슴에 혼자 숨겨두고 몰래 찾았던 비경의 길이었다. 하지만 이 아름다운 강변길 주변에 각종 위락 시설과 펜션, 전원 주택지가 우후죽순처럼 들어서 이제 원시의 비경이 사라질 위기에 처했으니 가슴이 너무 아프다.
제장마을 다리를 건너면서 스마트폰으로 정선 아리랑을 듣는다. 정선은 아리랑의 고장이다. 특히 정선 아리랑은 고단했던 민초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소리고 노랫말이다.
그렇다면 이곳에서 널리 알려진 동강할미꽃은 민초들의 들꽃이 아니던가.
그러고 보니 허리를 펴고 정선 아리랑 한 자락 뽑아내는 우리 할미 모습 같기도 하다.
오늘도 동강할미꽃은 동강에 흐르는 정선 아라리 자락에 피고 진다.
여계봉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