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을 품은 신학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염치 불고하고 나의 희망을 말합니다. 나에게 희망이 있다면 인문학을 품은 신학의 탄생 소식을 접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위한 뜨거운 태양이 영광스럽게 떠오르는 현상을 목도하는 것입니다. 중세 천 년 동안 신학은 만학의 주인이었습니다. 신학은 신화시대를 파괴했습니다. 신들의 이야기를 몰락의 형식으로 만들어버린 또 다른 지혜의 산물이었습니다.


근대 르네상스는 다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중세의 기세를 꺾어 놓았습니다. 신적인 너무나 신적인 시대를 끝장내고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시대를 시작하게 해 놓은 것입니다. 르네상스는 어둠의 시대가 끝났음을 선포했고, 새로운 시대의 인간적인 빛을 보여 주는 데 주력했습니다.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근대는 중세를 죽였습니다.


텅 빈 하늘만 바라보던 눈을 자연 속 대지로 옮겨 놓은 것이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들입니다. 신만 바라보던 눈 속에 사람의 지극히 자연스러운 육체를 채워 놓은 것입니다. 신성한 신의 현상 대신에 아름다움으로 충만한 사람의 빛나는 몸을 형상화해 내는 데 주력했던 것입니다. 사람의 몸을 바라보면서도 행복해질 수 있다는 새로운 양심을 형성해 준 것입니다.


허공만 바라보며 형이상학적 이념을 떠올리던 중세는 이제 역사 속으로 넘어 갔습니다. 이제는 현상 속에서 다양한 사물을 바라봐야 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눈은 제대로 뜨지 못한 상태입니다. 니체는 중세가 남겨 놓은 정신을 혼낸다고 떠나버릴 그런 귀신쯤으로 간주하면 안 된다고 경고까지 해둡니다. “우리는 지금도 중세의 빙하 속에서 살고 있다.” 빙하 속에 갇혀 있는 정신을 해방시키려면 ‘반시대적 고찰’만이 해답이고 열쇠입니다.


형이상학적 이념을 무너뜨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생각은 자유라지만, 생각 하나 바꾸는 것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나이가 들수록 생각은 굳어질 뿐입니다. 다른 생각은 전혀 할 수 없는 지경에 처해집니다. 생각이 생각에 갇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어리석은 중생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그들은 멀리 본다지만 그저 처음 했던 생각만 반복할 뿐입니다.


진정 구원을 받는 사람의 표정은 전혀 다른 현상을 보여 줄 것이 틀림없습니다. 고대 신들의 세계를 무너뜨린 중세, 그리고 신 중심으로만 생각을 펼쳤던 중세를 무너뜨린 근대, 그리고 인간미를 추구하던 근대를 무너뜨린 현대, 그리고 자본주의 정신을 미화하는 현대를 무너뜨릴 미래의 정신, 그 새로운 시대의 주인이 될 정신은 아직 떠오르지 않은 태양처럼 세상의 저편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잔뜩 움츠린 자세로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나는 “신은 죽었다”고 말하는 니체의 생철학적 이념까지 품어 낼 수 있는 거대한 신학의 출현을 꿈꿔 봅니다. 부정의 힘까지 포용하고, 바다처럼 드넓으며, 우주처럼 광활한 새로운 신성을 품고 나타나는, 완전히 새로운 형식과 내용의 학문으로서 신학이 나타나 주길 고대하는 것입니다. 나는 새로운 신학이 연출해 내는 새로운 신의 등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생각은 자유입니다. 자유가 생각을 이끌면 현대는 극복될 것입니다. 머지않아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세상의 중심이 될 날도 꿈꿔 봅니다. 온 세상이 우리의 역사를 공부하는 날도 있을 것입니다.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불이익을 당하고 모든 기회를 잃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했던 호랑이는 세상 저편에서 기다리고 있는 태양처럼 대기 중입니다. 초인이 인문학의 주인공일 뿐만 아니라 새로운 신학의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호랑이의 때는 기어코 오고야 말 것입니다. 단군신화를 비극의 형식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세대는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고야 말 것입니다. 우리 민족은 그런 식으로 살아남을 것입니다. 수천 년이 지나도 자기 목소리로 자기 역사를 창출해 내고 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작성 2023.03.20 10:23 수정 2023.03.20 10:53

RSS피드 기사제공처 : 출판교육문화 뉴스 / 등록기자: ipec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