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시대적 고찰을 통한 반성의 시간

                                                                                                                                                                                          이 동 용 (수필가/인문학자)



다음 학기를 준비하며 반시대적 고찰을 다시 꺼내 읽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민주주의를 탄압했던 비스마르크의 시대를 살아가며 품었던 철학자 니체의 역사적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독일이 겪을 두 번의 세계전쟁을 예감했던 것일까요. 부정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습니다.


내가 중고등학생 때의 선생들은 스스로를 하나 같이 4.19세대라고 칭했습니다. 현재 탑골공원이라고 불리는 당시 파고다공원에는 그때도 어른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누구를 만나도 어김없이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었습니다. 분노가 이들의 입을 열게 했습니다.


민주주의는 거저 주어지지 않습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에서 그 나라가 외교적으로도 주권까지 거머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역사적 변화는 깨어 있는 자들에 의해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주권 의식을 갖고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실로 기적과 같습니다.


요즈음 다시 친일 문제가 이슈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정치 현장이 전하는 소리는 왠지 기싸움에서 진 느낌뿐입니다. 친일을 펼치면서 편해지는 것은 나라가 아니라 특권층이라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실감나는 때입니다. 일제강점기 때도 배부른 친일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내 회사가 돈을 벌어야 나라에 헌금도 내지!’ 하면서 비겁하게 자기를 합리화했습니다.


이렇게 자발적으로 주권을 넘겨버린 친일 행위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던 민족주의자들은 목숨을 걸고 민족을 위해 소리를 드높였지만 가진 게 별로 없어서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습니다. 목소리도 돈이 있어야 먹혔던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일본 땅이 되면 좋은 일들이 벌어질 것이라는 망상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그런 희망에 맞서는 것은 무모한 짓이었습니다.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뭐가 문제인가?’ 이게 친일파의 주장이었습니다. 창씨개명, 즉 이름을 바꾸면 일본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정작 일본사람들은 자신의 권리를 그렇게 쉽게 나눠가질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민족을 노예로 삼을 생각에 자긍심만 드높아졌을 뿐입니다. 당시 우리 민족은 정말 순진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을 바라보면 저절로 하대하는 버릇이, 동시에 한국 사람들은 일본인들을 당연히 존대하는 습관이 생겨났습니다. 스스로 하대하는 버릇에서 상대를 높여버리는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종의 ‘식민지사관’이란 것까지 탄생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역사관의 일종인데, 스스로를 식민지의 국민으로 인정하는 그런 시각에서 탄생한 역사인식이었습니다. 식민지사관에서 일본은 영원한 칭송의 대상이 되기 일쑤였던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역사에서 맹점은 악덕 기업의 논리입니다. 자본도 자본 나름입니다. 기업도 기업 나름입니다. 땅값이니 부동산 시장이니 투자 가치니 하면서 아파트를 떠올리게 했고, 멋진 삶이라 말하면서 기업이 공장에서 만들어 낸 상품으로 치장한 모습을 연결 짓게 했으며, 상품이 예술 작품을 흉내 내게 했습니다. 이런 맥락을 인식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 나쁜 기득권의 생각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하는 일입니다.


일본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반성의 시간을 가져야 할 때입니다. 친일의 흔적은 대한민국이 잊지 말아야 할 대표적인 교훈의 역사입니다. 공든 탑이 무너지면 억장이 무너집니다. 그동안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쌓아 올린 역사의 현장을 무시하고 나면 남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의식이 없으면 팔다리가 잘려 나가도 아픈 줄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친일 행위는 아무리 이득을 운운하며 포장을 해 놓아도 결국에는 민낯을 드러내고 말 것입니다. 누구를 좋아하는 것은 자유이지만, 민족까지 배반하며 좋아하는 것은 결코 진정한 자유의 행위가 아닙니다. 그것이야말로 굴종의 역사를 위한 불행의 씨앗이 될 뿐입니다.


작성 2023.03.27 10:24 수정 2023.03.27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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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