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니스트 노중평
한국 고대사에 편입이 가능한 역사 가설을 하나 말하기로 한다. 선진(先秦) 시대에 조선이 있었다. 조선은 초기에 단군조선으로 불리던 진조선과 번조선의 양국(兩國) 체제로 운영되다가, 말기에 가서는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의 삼국(三國) 체제인 삼소(三蘇)로 운영되었다.
삼조선이 진한(秦漢)에게 멸망한 후에, 전한에서 조조(曹操)가 나와, 오촉(吳蜀)을 통일하고, 위국(魏國)을 세웠다. 중원에서 잡다한 소국들이 전부 사라진 후에, 중원 밖 북쪽에 남은 세력은 흉노(匈奴)로 불리는 인종뿐이었고, 흉노 중에서 선비(鮮卑)가 조선의 뒤를 이어서 삼소 체제로 운영되고 있었다. 선비란 조선의 후예라는 뜻이다.
조조가 위국을 세울 때, 선비의 삼소가 위국 건설에 어떻게 기여했는가를 밝혀 보려는 것이 이 글을 쓰는 목적이다.
鮮卑
根據《魏書》等史書的記錄, 在鮮卑族拓跋部創建代國、北魏王朝的過程中, 它的發展與匈奴族諸部落獨孤部、賀蘭部、鐵弗部有十分密切的關係。
其中, 鐵弗部比較明顯, 則鐵弗部劉虎及其子孫劉務桓、劉衛辰、赫連勃勃, 雖然表面上與拓跋部維持婚姻關係, 但事實上世與它爲仇敵, 雙方經常打仗, 不僅不支持拓跋部的復國運動, 反而多方阻撓, 勢不兩立, 長期扮演著拓跋部競爭者的角色。
在此背景之下, 拓跋部領首們運用他們之間的反目与互相牽制, 再結合拓跋部舊勢力, 順理達成了代國復國與建國北魏的目標。(5胡16國時期匈奴族鐵弗部與鮮卑族拓跋部之關係硏究)김영환 /Young-Hwan Kim 1 1남서울대학교
《위서《魏書》》 등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선비족鮮卑族 탁발부拓跋部가 국가를 창건한 연대는 북위 왕조北魏王朝를 창건하는 과정에서, 흉노족匈奴族의 여러 부족인 독고부獨孤部, 하란부賀蘭部, 철부부鐵弗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노중평의 해석) 이 기록에는 우리가 밝혀야 할 위국 건국 역사의 비밀이 숨어 있다고 생각 된다. 위국은 번조선의 후예인데, 흉노의 탁발부, 하란부, 철부부가 진조선의 후예이므로, 번조선의 후예인 위(魏)의 건국을 방해하지 않겠다고 서약했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렇게 보면 선비(鮮卑)의 비(卑)자에는 선(鮮)의 후예라는 뜻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중에서도 철부부鐵弗部는 비교적 뚜렷한데, 철부부 유호劉虎와 그 자손인 유무환劉務桓, 유위진劉衛辰, 혁련발赫連勃은 비록 표면적으로는 탁발부拓跋部와 혼인관계婚姻關係를 유지하지만 실제로는 그것을 원수로서 쌍방이 자주 싸워서 탁발부의 복국운동復國運動을 지지하기는커녕 다방면으로 방해阻撓하여 양립할 수 없어勢不兩立, 오랫동안 탁발부의 경쟁자 역할을 하였다拓跋部競爭者的角色.
(노중평의 해석) 탁발부는 跋자가 있는 점으로 보아서, 이들이 발족(發族)이라, 순수 진조선 파로 볼 수 있고, 철부부는 유(劉)씨가 잡고 있어서, 한(漢)의 유방(劉邦)의 후예로 볼 수 있으므로, 초(楚)의 후예와 한(漢)의 후예의 대립으로 볼 수 있다. 이들 두 부족은 적대감을 해소하기 위하여, 혼인 관계를 유지했는데, 번조선의 후예인 조조의 세력이 강성해져, 위국을 건설하려 함으로, 위국 건설을 묵인하던가, 반대하던가 선택해야 할 입장에 서게 되었다.
이러한 배경 아래 탁발부의 영수들은 그들 사이의 반목과 상호 견제를 구사하고, 다시 탁발부의 옛 세력과 결합하여 순리적으로 대국복국代國復國과 북위건국建國北魏의 목표를 달성하였다
(노중평의 해석) 진조선을 복국(復國)하자는 탁발부와, 진조선의 복국을 반대하는 철부부의 대립은 조조가 위국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하였다. 위 문장에서 의문을 갖게 되는 부분은 대국(代國)이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나는 대국을 진조선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 한다. 탁발부는 멸망한 진조선을 복국하려 하려 한 세력이었다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때 조조가 세우고자 했던 나라는 번조선의 복국(復國)이었다고 볼 수 있다. 위(魏)자에 그런 뜻이 들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위(魏)자에서, 위(委)는 조조가 번조선을 복국 하라는 위임을 받았다고 볼 수 있고, 귀(鬼)자는 죽은 번조선의 조상으로 볼 수 있다.
(노중평 해석) 선비는 흉노의 일족인데, 선(鮮)자를 쓴 점으로 보아서, 진조선의 일족으로 볼 수 있다. 비(卑)자를 쓴 점은 선비의 국가적인 지위가 진조선의 좌현이나 우현에 해당함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선(鮮)자에는 소(蘇)성과 강(姜)성이 결합했다는 의미가 있다.
삼한시대에 마한에 속한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이 있었는데, 초산은 형산(荊山)의 다른 명칭이다. 해석하면 초산에 살며 소도(蘇塗)를 운영하던 선비족(鮮卑族)의 탁발부족이 초산을 떠나와 한반도에 와서 정착하여 세운 나라가 초산도비리국이라고 생각된다.
한국 역사에서는 초산도비리국이 있었던 곳을 2곳으로 비정한다. 초산도비리국을 천관우(千寬宇)는 도산현(徒山縣)이었던 지금의 전라남도 진도군 군내면으로 비정한다.
이병도(李丙燾)는 백제의 정촌현(井村縣)이었던 정읍(井邑)을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 초산(楚山)이라고도 하였으므로, 지금의 전라북도 정읍에 비정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