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호 수출산업공업단지
1960년대 우리나라는 수출산업을 촉진하기 위해 해외자본 특히 제일교포들의 투자를 유치하여 국가산업의 기반을 구축하는데
힘썼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먼저 행정적 뒷받침과
수출상품을 생산할 산업단지조성이 시급하였다.
이에 정부는 1963년 3월 “수출산업촉진위원회”를
발족하고 수출전진기지로서 첫 산업단지는 서울 구로구에 조성하였다.
총면적 14만평
규모로 1965년 3월에 국내기업이 18개 업체였다.
이후 한국수출공업단지는 개발과 확장을 거듭하여 제2단지 총면적 약 10만평과 제3단지 총면적 30만평을
추가로 지정하였고 인천의 부평과 주안에 제4, 5, 6단지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대한민국 수출의 원동력이었으며 산업단지로서의
최초의 단지가 현재의 구로공단이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우리나라 경공업의 대명사였던 “구로공단”은 수많은 농촌 젊은이들이 꿈과 희망을 안고 모여든 곳이었다.
밤낮없이 땀 흘려 일하던 그들은 우리나라
산업화 시대를 대표하는 수출산업의 역군이었다.
1967년 4월 1일
박정희 대통령은 구로동 수출산업공업단지 준공식 축사에서 “허허벌판을 불도져로 밀어 붙인다고
수출공장이 되겠냐며 의심한 사람도 많았지만 우리는 결국 해냈다.
정부는 이 단지를 25개 공장이 더 들어설수 있도록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공단에 입주한 업체 중 최초로 동남전기가 139,893달러의 트랜지스터 라디오와 TV수상기를
일본으로 수출하였다.
우리나라는 1971년에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하고 1977년에는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하게 되었는데
이 중 구로공단에서만 11억 달러의 수출을 달성하는 등 구로공단은 우리나라 수출의 전진기지였다.
이후 정부는 첨단산업을 주도하는 도시형
산업단지로의 전환을 위해 2000년 9월
구로공단이라는 명칭을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꾸고 첨단IT업종의
산업단지로 탈바꿈하였다.
서울디지털산업단지로 바뀌고 첨단IT업종이 들어서면서 핵심의 건물이 아파트형공장이었다.
대한민국
1호 산업단지, 서울디지털산업단지는 그 명맥이 대한민국의 경제와 일맥 상통하는 의미있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아파트형공장, 그리고 현재의 지식산업센터로 변모를 통해서 대한민국의 경제적 흐름을 한눈에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