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하루] 향수

정지용

 

향수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비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흙에서 자란 내 마음
파아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려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전설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 벗은 아내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 리야.

 

 

[정지용]

출생 1902. 6. 20. 충청북도 옥천

사망 1950. 9. 25.

도시샤대학교 영문학

1926년 학조 창간호 ‘카페 프란스’

2018년 금관문화훈장

1945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수

1945 경향신문 편집국 국장

1939 문장지 추천위원

작성 2023.09.26 07:59 수정 2023.09.26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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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