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산정천리] 두타행을 통해 불국과 무릉도원에 이르다

세속을 벗어나 정진의 길로 떠나는 두타산 대간길 산행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바로 두타산(頭陀山)이요 두타행(頭陀行)이다. 다시 말하면 두타산을 지나 부처의 가르침대로 마음과 몸을 닦은 수행자들이 들어가는 산이 바로 극락의 세계인 청옥산(靑玉山)인 것이다. 두타행을 통해 극락의 세계에 이르렀으니 무릉도원이 곧 그곳에 펼쳐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아닌가.

 

6월 어느 날, 지상의 백두대간을 따라 두타와 무릉도원을 거닐면서 극락의 세계로 들어가 보기로 한다.

 

산행 들머리인 댓재는 황장산과 두타산을 연결하는 백두대간의 고갯마루다. 삼척 사람들의 모산 두타산의 영역은 댓재부터 시작된다. 고갯마루의 댓재 산신각에 모신 두타산신에게 인사를 올리면 두타의 품에 안기게 된다. 여기서 두타산 정상까지는 6남짓, 시간은 2시간 30분쯤 걸린다.

 

댓재에서 원시숲이 내뿜는 달고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30분쯤 가면 작은 봉우리 햇댓등에 올라붙는다. 햇댓등 부근에는 유독 밑동 굵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그득하다. 사람이 관리하는 소나무에서 볼 수 없는 야성이 흘러넘친다. 햇댓등에서 두타산까지는 고도를 약 450m 끌어올려야 하는데 산을 세 개 정도 오르내려야 한다.

 

두타(頭陀)는 버리다, 씻다, 닦다 등의 뜻을 지닌 산스크리트어로서 두타행(頭陀行)이라 하면 세상의 모든 번뇌를 버리고 불도를 닦는 수행을 뜻한다. 따라서 이 산길은 세속을 벗어나 정진의 길을 떠나는 두타행이다. 어찌 허투루 걸을 수 있는 만만한 길이겠는가.


 

댓재와 두타산의 중간인 통골목이(통골재)부터 두타산 전위봉 격인 1,243봉까지 가파른 30분 코스 오르막이 오늘 산행의 고비다. 통골목이는 댓재와 두타산의 중간 지점으로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댓재, 햇댓등, 명주목이, 통골목이 그러고 보니 지나온 곳마다 이름이 예쁘다. 가쁜 숨을 토하며 1,243봉에 올라선다. 여기서부터 두타산 정상까지 부드러운 능선은 그야말로 천상의 야생화 천국이다. 지천으로 깔린 얼레지가 길섶에서 자꾸 발목을 붙잡는다. 그 사이사이로 노루귀, 노랑제비꽃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작은 풀꽃들은 몸을 낮추어야 볼 수 있다. 완만한 등로 좌우의 야생화를 실컷 구경하다가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면 널찍한 두타산 정상이 나타난다.

 



해발 1,353m의 두타산 정상은 풍광도 일품이다. 사방을 둘러보면 청옥산(1,403m), 쉰움산(683m), 덕항산(1,071m) 등 백두대간의 준령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옥산을 지나면 고적대, 갈미봉, 이기령, 백복령으로 이어지는 잘 다듬어 놓은 아담한 암봉들이 펼쳐진다. 산정은 그동안 답답한 시야를 보상하듯 시원한 조망을 보여준다. 청옥의 넉넉한 품은 달려가 안기고 싶고, 그 오른쪽으로 휘어지며 출렁이는 백두대간 능선은 참으로 통쾌하다.


 


정상에서 북동쪽을 바라보면 청옥산과 고적대, 갈미봉으로 이어지는 대간의 마루금이 장쾌하게 펼쳐진다. 두타산 정상에서 산줄기는 둘로 나뉜다. 서쪽으로 뻗은 산줄기는 백두대간 분수령, 동북으로 갈라진 산줄기는 두타산성과 쉰움산를 거쳐 동해로 이어지는 지맥이다. 오늘은 짙은 해무로 시계가 좋지 않지만 아스라이 찰랑거리는 동해가 두타의 발끝을 간질이고 있다.

 

박달령을 사이에 두고 청옥산과 쌍둥이처럼 마주 서 있는 두타산은 부처가 누워 있는 형상이다. 정상에 서면 첩첩 산 물결을 이룬 백두대간 분수령, 동해 파란 바다...

 

수도자가 두타행 끝에서 얻는 즐거움이 이러할까.

 


두타산에서 급경사로 내려갔다가 완만한 조릿대 길을 걸으면 이내 박달령이 나오고 계속 가면 청옥산이다. 키작고 유순한 조릿대는 버티기 힘든 외풍에 굴하지 않고 악착같이 견뎌낸 우리 민초들 모습 같다. 청옥이 이 산에서 발견되었다하여 산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아미타경에 나오는 일곱 가지 보석 중 하나이다. 두타와 함께 이 부근에서 성행했던 불교와 아주 깊은 인연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산의 형세도 이와 같아 두타는 울퉁불퉁하나 날렵한 골산(骨山)이고, 청옥은 완만하여 듬직한 육산(肉山)이다. 하기야 수행자가 가는 고행의 길이 완만할 리 없고, 극락세상을 상징하는 산이 울퉁불퉁할 리 없다. 두타는 두타답고 청옥은 청옥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두타의 길은 청옥이 있음으로 완성되고 청옥의 문은 두타의 길로 인해 열리는 것이 아닌가.

 


청옥산을 버리고 박달령에서 박달계곡으로 내려선다. 경사가 아주 급한 너덜지대를 한참 내려오면 깊은 계곡에 반향된 청량한 물소리가 귓가를 간지른다. 기암괴석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는 수목들의 아름다운 자태는 산객의 탄성을 자아내며 쌍폭포의 물줄기는 매끄러운 암반 사이로 흘러내리며 청량감을 더한다. 쌍폭포 아래 무릉계(武陵溪)는 단연 압권이다. 용이 승천하는 모양을 하고 상탕, 중탕, 하탕 등 삼단으로 떨어지는 용추폭포를 비롯해 쌍폭, 박달폭포, 관음폭포 등 계곡미가 넘친다. 두타산과 청옥산에서 흘러내린 물이 동해로 흐르는 품안에 무릉계가 있다. 맑은 계류를 따라 펼쳐진 널따란 반석과 조물주의 작품인 양 기이한 모양으로 우뚝 선 바위들, 그리고 쌍폭과 용추폭으로 대표되는 수많은 폭포들. 눈이 호강하는 곳이다.

 

 

 


두타와 청옥이 만든 그 계곡에 자리 잡은 천년사찰 삼화사(三和寺)는 화려한 연등으로 치장하고 있다. 무릉계의 정신을 지탱해 온 절집으로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는데 고려시대에 삼화사로 개칭했다. ‘삼국을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는 뜻이다.



 

산행 날머리이자 산행버스가 기다리는 공원 주차장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까지 제법 여유가 있다. 그래서 무릉계곡 초입의 무릉반석에서 신발 끈 풀고 첨벙 옥류에 발을 담그고 반석에 드러누운 채 슬며시 눈을 감는다. 번뇌조차 이내 먼지처럼 사라져 버린다.

 

이것이 바로 탁영탁족(濯纓濯足) 아니던가.






여계봉 선임기자

 
















편집부 기자
작성 2019.06.20 11:48 수정 2019.06.20 14:02
Copyrights ⓒ 코스미안뉴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편집부기자 뉴스보기
댓글 0개 (1/1 페이지)
댓글등록- 개인정보를 유출하는 글의 게시를 삼가주세요.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Shorts 동영상 더보기
2025년 4월 25일
2025년 4월 25일
전염이 잘 되는 눈병! 유행성 각결막염!! #shorts #쇼츠
2025년 4월 24일
2025년 4월 23일
2025년 4월 22일
나는 지금 '행복하다'
2025년 4월 21일
2025년 4월 20일
2025년 4월 19일
2025년 4월 18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7일
2025년 4월 16일
2025년 4월 15일
2025년 4월 14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5년 4월 13일
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