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계봉의 인문기행] 새해 해맞이 열풍은 언제부터?

여계봉 선임기자

 

갑진년(甲辰年) 푸른 용의 해인 2024년이  코앞에 다가왔다. 새해의 시작을 알리는 해돋이는 독도에서 시작된다. 매년 어김없이 전국의 해맞이 명소들은 새해 첫 일출을 보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룬다. 1월 1일, 어김없이 시작되는 하루가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새해 첫 일출을 두 눈으로 직접 보기 위해 해돋이 명소를 찾아 나선다. 구름처럼 몰려든 인파 속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새해 소원을 빌고 각오를 다지는 모습은 우리 옛 전통인 듯하지만, 사실 새해 첫날의 해맞이 풍습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 시작은 1995년 방영된 드라마 '모래시계'가 열풍을 일으키면서 생겨난  ‘정동진 해돋이 열차’였다. 특히 새해 첫날 새벽이면 일출을 보기 위해 정동진 넓은 모래사장에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붐비자 전국적으로 새해 일출 관광객 유치를 위한 해맞이 명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이제는 우리나라 모든 곳에서 ‘새해 해맞이 행사’가 열리면서 새해 첫날의 풍습으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새해 해맞이' 열풍의 원조, 강릉 정동진의 새해 일출

 

새해 첫날과는 상관이 없지만 조선 시대에도 해맞이 풍습은 있었다. 낙산사와 해금강 총석정, 지리산 천왕봉 등은 누구나 한번쯤 가서 떠오르는 붉은 태양을 보고 싶어 하는 일출 명소였다. 그리고 이곳을 찾은 숱한 문인들이 벅찬 감동을 글과 그림으로 남겼다.

선조 때(1586) 지리산에서 일출을 기다리던 조선 선비 양대박(梁大樸)은 한밤중에 일어나 날씨가 맑기를 기원했다. 그 덕분인지 “붉은 구름이 만리에 뻗치고 서광이 천 길이나 드리운 일출”을 보고 「두류산기행록(頭流山紀行錄)」을 남겼다. 또 다른 일출 명소인 해금강의 총석정을 찾은 연암(燕巖) 박지원(朴趾源)도 일출을 기다리며 잠을 설쳤다. 다행히 어둠을 뚫고 솟은 태양을 목격한 연암은 그 장엄한 모습을 ‘총석정관일출(叢石亭觀日出)’이란 시로 표현했다.

 

해돋이 그림은 조선 시대 화가들의 단골 메뉴였다. 조선 후기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겸재 정선(鄭敾)도 해돋이 그림을 여럿 남겼다. 양양 낙산사의 일출을 담은 ‘낙산사도(洛山寺圖)’, 서울 남산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그린 ‘목멱조돈(木覓朝暾)’, 강원도 고성 삼일포 인근의 해돋이 풍경을 담은 ‘문암관일출도(門巖觀日出圖)’ 등이다.

 

겸재 정선, 문암관일출도(門巖觀日出圖),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중 근래에 대형 화재로 전각 대부분이 불타는 바람에 우리에게 큰 아픔을 준 낙산사는 조선 시대 최고의 일출 명소였다. 조선 산수화의 대가 겸재(謙齋) 정선(鄭敾, 1676∼1759)은 정철이 「관동팔경(關東八景)」에서 노래한 낙산사를  ‘낙산사도(洛山寺圖)’로  그려내었다. 이 그림은 정선이 금강산 일대를 여행하고 그린 '해악진경(海嶽眞景)' 8폭의 병풍에 수록되어 있는데,  진경산수의 진가가 유감없이 표현된 그림이다. 낙산사의 창건 설화를 담아 넘실대는 동해 바다 먼 곳에서 오르는 붉은 해, 이화대(梨花臺) 바위에 앉아 일출 맞이를 하는 선비들, 그리고 산사를 감싸안은 듯한 소나무 군락 등 한 화면에 사찰 전체를 담아낸 수작으로 평가받는다.

 

겸재 정선, 낙산사도(洛山寺圖),  간송미술관 소장

 

19세기 왕실 화원이었던 백은배(白殷培)는 함흥 귀경대(龜景臺)의 일출 장면을 그렸다. 함흥십경(咸興十景) 중 하나인 귀경대는 동해안으로 돌출된 전망대 같은 절벽이다. 그림 속 거북이 머리처럼 튀어나온 귀경대 위에는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선비 몇이 저 멀리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손을 뻗어 붉은 해를 가리키는 모습이 요즘의 해맞이 관광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세월은 많이 흘렀지만 해를 맞이하는 우리네 풍습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해 보인다.

 

백은배, 귀경대도(龜景臺圖), 서울역사박물관 소장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올해 마지막 날인 31일까지는 눈·비가 계속돼 해넘이를 보기는 어렵겠으나, 새해 첫날은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해돋이를 볼 수 있다고 하니 독자께서는 집 가까운 해맞이 명소를 찾아 나들이할 것을 권해 본다.
 

 

[여계봉 선임기자]

수필가

공학박사

이메일 : yeogb@naver.com

 

작성 2023.12.31 09:38 수정 2023.12.31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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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