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상 칼럼] 날아라 높이 날아라

이태상

어린이가 하나님이다. 어린이는 신의 화신이다. 천국의 문은 어린이에게 프리패스다. 어린이에게는 참도 없고 거짓도 없다. 선도 없고 악도 없으며 아름다운 것도 없고 추한 것도 없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다. 그러므로 어린이는 하나님이다. 동심을 잃는 순간, 하나님에게 멀어진다. 하나님은 어린이 마음속에서 우주라는 자연과 소통하고 있다. 인생을 관통하는 삶의 도가 있다면 동심을 잃지 않는 일이다. 

 

동심이 삶의 도다. 도를 멀리서 찾느라고 온 세상을 다 돌아다녀 봐도 찾을 수 없다. 바로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도를 아는 사람이 바로 코스미안이다. 코스미안은 가슴에 동심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어린이처럼 가슴 뛰는 대로 사는 사람이 바로 코스미안이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가 도인이며 코스미안이다. 순수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코스미안이다. 모든 어린이들은 본능적으로 타고난 공감력을 발휘한다. ‘검은 고라니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아메리칸 인디언 마법사는 이런 말을 했다. 

 

“어른들은 어린아이들로부터 배워야 한다. 어린아이들의 마음은 순수하므로 어른들이 놓치는 신비로운 것들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맺고 우주와 하나임을 깨달을 때 평화롭고 신비로운 충만감을 누리게 된다.”

 

어린아이들은 우주에서 온 별들이다. 아름답게 반짝이는 작은 별이다. 어린아이들의 마음에는 우주의 비밀이 숨어있다.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는 아이들의 마음속에 있다. 수우족 인디언들에게 구전으로 내려오는 기도문에 그 해답이 있다. 

 

바람 속에 위대한 당신의 목소리가 들리고 

당신의 숨결은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맑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어린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으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물건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예민하게 하소서 

 

당신이 내 부족 사람들에게 가르쳐준 것들을 알게 하시고 

당신이 나뭇잎과 돌 틈에 감춰둔 교훈을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나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에게 갈 수 있게 하소서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해아’ 같이 제각기 ‘수호천사’로부터 늘 가호를 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어찌 이 험난하고 험악한 세상을 지금껏 순간순간 큰 탈 없이 살아올 수 있었으랴! 사람이 머리로 하는 것이 사상이라면 가슴으로 하는 것은 예술이리라. 어려서부터 다정다감 감수성이 예민했던 사내도 노래가 좋았고 음악을 즐겼다. 노래를 들으면 그 노랫말에 심취했고 음악 멜로디에 넋을 잃었다. 그러나 타고난 음치였을까. 사내는 노래 한 소절도 제대로 따라 부르지 못했다. 그런데 이 웬 돌연변이일까. 아이들 셋이 다 음악을 전공하게 되었으니. 집에서 반대하는 결혼을 하느라 친정과 거의 의절하다시피 한 아이들 엄마를 위해 결혼 후 사내는 제일 먼저 피아노와 최고급 스테레오 전축과 수많은 레코드판을 사들였다. 이화여중 입학 기념으로 부모님이 사주셨다는 피아노는 물론 이대 영문과 졸업하고 외환은행 다니면서 받는 봉급으로 사 모은 전축과 레코드판들을 다 친정에 놓고 온 아내에 대한 사내의 보상심리에서였다. 

 

아내는 어려서 좀 배우다 만 실력이어서 피아노는 한낱 집안 장식품에 지나지 않았다. 애들이 태어나면서 함께 장난삼아 쳐보는 정도였다. 더구나 거리의 소년처럼 자라온 사내에게 음악, 특히 서양 고전음악은 고관대작이 아니면 갑부 집 애들이나 할 수 있는 귀족놀음으로 생각했었다. 한국에서는 해방 후 특권층 정상배들이나 즐기는 스포츠가 골프였듯이 말이다. 그러다가 사내의 가족이 영국에 가서 살면서 애들이 동네 유치원에 다녔는데 하루는 큰애 반에서 악기 배우고 싶은 아이들은 손을 들어보라고 해 일주일에 하루 순회음악교사가 찾아와 십 분씩 개인 지도를 해주었다. 

 

이렇게 해서 큰 애가 바이올린을, 두어 달 후에 둘째가 첼로를, 또 두어 달 지나 막내가 또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시작한 지 몇 달 안 되어 사내는 영국을 떠나 애들 고모님들과 할머니가 사시는 하와이로 이주하게 되었다. 그동안 짧게나마 음악을 좋아해 열심히 하다 보니 곧잘 했었는지 애들이 떠나는 것을 몹시 애석해하던 선생님의 주선으로 영국 맨체스터에 있는 취탐 음악학교에 오디션을 보라는 편지를 받았다. 사내는 선생님의 성의도 고맙고 아무리 가능성 없다고 해도 애들에게 찾아온 0.001%의 기회라도 버릴 수 없다는 생각에서 왕복 비행기표 값을 날리는 셈 치고 영국으로 돌아가 아이들에게 오디션을 받게 했다.

 

아이들 셋 중 하나도 안 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셋 다 합격하고 말았다. 그러나 일반 교육과목과 함께 음악교육을 시키는 보딩스쿨(기숙학교)이라 한 아이의 1년 학비가 지금의 달러로 환산해서 5만 달러가 넘었다. 그러니 애들 셋 학비가 십오만 달러가 넘어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학교에서 장학금을 주어 꿈도 꿀 수 없던 특수 음악학교에 아이들이 다니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 아이들 나이 여섯, 일곱 반, 아홉의 딸 셋이 다 일찍 집을 떠나 출가한 셈이 되었다. 만일 부모가 애들에게 음악을 강제로 시켰더라면 처음에는 마지못해 좀 하는 척하다가 벌써 그만뒀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무엇이고 제가 좋아서 하면 억지로 노력할 필요 없이 절로 재미나고 신나서 하게 되는가 보다. 

 

평생토록 젊음과 동심을 갖고 살아주기 빌고 바라는 뜻에서 사내는 아이들의 이름에 한자로 아이 ‘아’兒 자를 모두 붙였다. 자라면서 나이를 아무리 먹어도 마음만은 날마다 더 젊어지라고, 꾸밈없이 아름답게 자라면서 열심히 배워 죽도록 사랑하라고. 간절히 빌고 바라건대 바다의 낭만과 하늘의 슬기와 별들의 꿈을 먹고 살라고. 이와 같은 기원과 염원에서 바다 해海, 빼어날 수秀, 별 성星을 넣어 아이들의 이름을 해아海兒, 수아秀兒, 성아星兒라고 이름 지었다. (아메리카대륙 원주민 인디언도 자신의 이름을 얻기 위해 숲속으로 가 며칠씩 머물며 계시받는다고 한다) 부부가 오래 같이 살다 보면 얼굴까지 서로 비슷해지고 개도 주인을 닮는다고 하는데 어느 부모에게나 어린 자식들이 다 늘 소중하고 사랑스럽겠지만 어린 것들이 때때로 어른들 소름 끼치게도 하고 때로는 근엄하고, 엄숙한 선생님들을 요절복통하게 만드는 것이다. 

 

얼굴 생김새부터 성격과 성정이 너무도 징그럽게 자기 자신을 꼭 빼닮은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 어떠할지는 자식도 제 자식 가져볼 때라야 알게 될 것이다. 막내딸 성아는 별 성星 자의 이름을 가져 그런지 어려서부터 스타 기질을 타고난 것처럼 티비에 나오는 가수나 배우들 흉내를 기가 찰 정도로 잘 내고 하는 짓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매혹시키곤 했다. 유치원 가기 전부터 저를 에워싸는 사내아이들을 말 한마디 없이 눈빛, 표정 하나로 파리 쫓아버리듯 하고 제가 어른같이 어른들을 어린애 다루듯 하면서 말도 어른들 용어만 썼다. 이런 성아에게 사내는 아빠로서 야단칠 수가 없었다. 그러려다가는 번번이 어처구니없이 무색해지고 말았다. 

화가 나서 소리를 버럭 지르는 사내에게 성아는 쪼끄만 인지를 입술에 살짝 갖다 대고는 쉿 소리를 냈다. 그런가 하면 들리지도 않을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왜 큰 소리 내?” 

 

그렇게 정색하고 사내를 나무랐다. 이럴 때면 이 아이가 어느 전설이나 동화책에서 톡 튀어나온 어떤 요정같이 느껴지곤 했다. 공부하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사내가 옆에서 사설이라도 늘어놓을 듯하면 사내의 말은 전혀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사내의 얼굴만 빤히 쳐다본다. 그럴 때면 마치 동물원에 온 아이가 창살 너머 고릴라라도 구경하듯 했다. 

 

둘째, 수아 또한 빼어날 수秀자, 제 이름 탓인지 어려서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그야말로 청개구리처럼 무슨 일이든 누가 시키면 절대로 안 하고, 하지 말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어코 하고 마는가 하면, 언제나 제가 하고 싶은 짓만 골라 하고, 제가 하고 싶을 때만 하고, 제가 하고 싶은 만큼만 하는 아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아가 또 광기 났다고 자주 말을 하곤 했다. 한 번 발동이 걸리면 말릴 수 없었다. 수아는 웃어도 그냥 웃지 않고 땅바닥에 떼굴떼굴 구르면서 웃고, 놀아도 미친 듯 신나게 열중해 지쳐 떨어지도록 놀아 저녁 밥상에 앉아 밥그릇을 베게 삼아 코를 골기도 했다. 그런 만큼 수아는 말썽꾸러기이기도 했다. 

 

1972년 2월 14일 사내의 가족이 영국에 도착, 하트포드셔 킹스랭리라는 동네에 머물 때였다. 침실과 목욕, 화장실은 이층에 있고 아래층에 부엌과 식당, 그리고 응접실이 있는 집을 얻어 살았다. 수아가 걷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한 살 반 때의 일이었다. 어느 일요일 아침, 사내는 잠자리에서 일어나 애들 방을 들여다보니 큰 애와 막내는 아직 자고 있는데 수아의 침대가 비어 있었다. 아래층에 내려가 보니 부엌에 식당 의자를 갖다가 그 위에다 또 동그란 나무의자 스툴을 올려놓고 기어 올라가 제일 높은 찬장 선반에 둔 유아용 아스피린 병을 꺼내 병 속에 있던 애들 먹기 좋으라고 달게 코팅한 알약 수십 개를 사탕같이 다 먹어버리고 말았다. 질겁한 사내가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펌프질해서 다 토해내고서야 수아는 살아났다. 

 

또 그해 여름, 사내의 가족이 영국 서남부 해안 콘월이란 지방으로 휴가를 갔을 때의 일이었다. 이때 사내의 가족은 이동주택 캐러밴을 빌려 썼는데 바닷가 언덕 위에 세워놓은 캐러밴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다가 창밖을 내다보니 옆에 세워둔 자동차가 언덕 밑으로 굴러 내려가고 있었다. 더 놀랄 일은 굴러 내려가는 자동차에서 수아가 운전석의 열린 차 문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다. 그때 만일 수아가 차 밑으로 굴러떨어졌으면 어쩔 뻔했을까. 아찔한 순간이었다. 차는 언덕 밑 도랑에 처박히고 말았다. 차에 올라 운전석의 이것저것 만져보던 수아가 걸려 있는 핸드브레이크를 풀어버린 것이었다. 또 수아가 서너 살 때 일이었다. 매주 사내가 출장 갔다 주말에나 집에 오면 아내와 할 말이 많았다. 그런데 수아는 할 말이 엄마보다 더 많았는지 엄마와 아빠가 이야기하는데 자꾸만 귀찮고 성가시게 말을 시키는 것이었다. 견디다 못해 집사람이 수아 보고 좀 기다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랬더니 눈 하나 깜짝 않고 또 말을 시키는 수아한테 이번에는 사내가 더 큰 소리로 입 좀 다물라고 호령했다. 그러자 아이는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럼 아빠, 이제 엄마하고 이야기 계속해” 

 

그렇게 한마디 하고서야 수아는 방 밖으로 나갔다. 이처럼 어떠한 경우에나 수아는 기죽는 법 없이 마지막 말은 제가 꼭 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수아는 거의 매사에 척 하면 삼천리였다. 쇼핑할 때도 어린 수아에게 이걸 살까 저걸 살까 물어보면 명쾌한 답을 얻을 수 있었다. 또한 수아는 언니 해아가 학교에서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엄마와 아빠도 모르게 해아의 바이올린 선생님을 찾아가 자기는 바이올린보다 첼로 소리가 더 좋으니 첼로 선생님을 한 분 소개해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아의 청을 거절 못한 선생님이 특별히 주문해 빌려준 제일 작은 4분의 1 크기의 첼로를 받아서 온 날 수아는 밥도 먹지 않고 여덟 시간을 계속 켜댔다. 

 

그 후 정식으로 두세 번 레슨을 받고 하루는 수아가 청소년 오케스트라 연습장에 언니를 따라갔었다. 그날 저녁 음악회에 해아도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연주하는 것을 보려고 아내와 사내는 막내 성아를 데리고 음악회 시간에 맞춰 갔다. 강당 맨 앞줄에 미리 잡아놓은 좌석에 앉아 음악회 연주가 시작하도록 아무리 기다려도 수아가 제 자리 찾아 옆에 와 앉지를 않았다. 이 말썽꾼 사고뭉치 수아가 또 어떤 문제라도 일으키지 않았을까 하며 가슴 조마조마하게 걱정하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앉아 연주하는 무대석을 바라본 순간 사내는 정말 기절할 뻔했다. 중고등학교 학생들도 낀 저보다 몇 배나 큰 아이들 틈에서 다섯 살짜리 수아가 의자에 앉아 두 다리 달랑거리며 작은 첼로지만 제 몸보다 큰 악기를 열심히 그어대고 있었다. 수아와 말을 하다 보면 사내는 무안을 당할 때가 많았다. 사내가 하려는 말을 제가 미리 알아 반론까지 하는 식이었다. 

 

큰 아이 해아 역시 제 이름 때문일까. 겉으로는 늘 조용하지만, 속으로는 무궁무진한 정열과 열정, 용기와 신념을 갖고 있는 아이라고 선생님들마다 감탄하며 칭찬이셨다. 상상력이 지식보다 중요하다는 상대성 이론의 창설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말이나 네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이미 현실이라고 한 피카소의 말대로, 사내가 바란 대로, 상상한 대로, 꿈꾼 대로 해아가 사내 앞에 나타나 준 것이었다. 그 어떤 사실보다 더 경이로운 진실로, 그 어떤 현실보다 더한 축복으로, 그 어떤 꽃보다 더 아름답고 그 어떤 무지개보다 더 신비로운 기적 중의 기적이었다. 

 

사실 사내는 첫 아이로 쌍둥이를 보았었다. 쌍태아이어서인지 체중 미달로 낳자마자 조산아 보육기 인큐베이터에 들어갔고 태어난 지 하루 만에 한 아이는 숨지고 한 아이만 살아남았다. 산모가 해산도 하기 전에 사내는 애들 이름부터 지어놓았다. 한 아이는 태양처럼 언제나 빛나고 만물을 육성하며 희망을 주는 아이가 되라고 태양 ‘해’자, 아이 ‘아’자 ‘해아’. 또 한 아이는 바다같이 무궁무진한 삶의 낭만이 넘치는 아이가 되라고 바다 ‘해’자, 아이 ‘아’자 ‘해아’로 지었다. 그런데 한 아이를 잃고 보니 남은 아이가 잃은 아이 몫까지 두 몫을 하게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웬일인지 해아는 저절로 잘도 커 주었다. 태양의 정열과 순진무구한 바다의 낭만을 지닌 아이로 커 주었다. 해아는 언제나 주위 사람들의 마음과 혼을 사로잡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항상 매사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낙천적인 해아이므로. 

 

햇빛처럼 눈부신 

해아의 표정은 

세상을 밝게 해주고 

별빛처럼 반짝이는 

해아의 눈동자는 

꿈을 불러주고 

바람처럼 신선한 

해아의 숨소리는 

음악이며 

이슬처럼 맺히는 

해아의 눈물은 

사랑이기에. 

해아는 세상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기쁨을 맛보기 때문이리라. 

그래서 해아한테는 

나쁜 날씨란 없고. 

여러 가지 다른 좋은 날씨가 있을 뿐이리. 

 

이것이 정말 해아의 이름 까닭인지 아니면 이 세상에 같이 태어났다 하루 만에 먼저 떠나버린 해아가 수호천사처럼 살아남은 해아를 지켜주고 선도해주기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해아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해아같이 제각기 ‘수호천사’로부터 늘 가호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 어찌 험난하고 험악한 세상 지금껏 순간순간 큰 탈 없이 살아올 수 있었으랴! 사내는 어린 시절의 기억으로 거침없이 달려갔다. 미군부대에서의 하우스보이 시절, 사령관은 사내에게 미국으로의 입양을 권하며 줄리아드음대에 보내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어쩌면 그래서였을까. 사내의 둘째 딸 수아는 줄리아드음대를 졸업했다. 유엔의 한국원조기구에서 하우스보이로 있을 때 사내를 특별히 사랑했던 영국인 부사령관은 암으로 죽기 전에 입버릇처럼 사내에게 옥스퍼드대학에 보내주겠다고 말했다. 사내의 큰딸 해아는 말로만 듣던 그 옥스퍼드대학을 3년 만에 학사와 석사학위까지 받고 졸업했다. 말이 씨가 된다는 말대로 그대로 되었다. 

 

초등학교 다닐 때 잠자리를 나는 잠자리채로만 잡지 않고 둘째 손가락으로도 잡았었다. 책에서 읽었는지 아니면 선생님께서 들었는지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잠자리는 수도 없이 많은 눈을 갖고 있다 했다. 머리와 얼굴이 거의 전부 눈이라는 것이었다. 울타리에 앉아 있는 잠자리를 보면 나는 가만가만 접근, 근처까지 가서 손가락으로 천천히 처음에는 커다랗게 잠자리 주위로 원을 그리기 시작해, 점점 나사(螺絲) 모양으로 빙빙 나선상(螺旋狀) ‘그물’을 쳐나갔다. 그러면 그 많은 눈으로 나의 손가락 끝을 따라 빙빙 돌아가던 잠자리가 어지럼증을 타서인지 ‘얼’이 빠져 날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잡히곤 했다. 

 

그 후 내가 중학교에 진학해 생물 시간에 구아사과(溝芽蛇科)에 속하는 독사의 일종으로 아프리카, 대만, 말레이시아, 필리핀, 인도 등지에 분포하며 개구리, 쥐, 새 등을 잡아먹는다는 코브라 이야기를 듣고 궁금증이 생겼다. 개구리나 새는 몰라도 새가 어떻게 뱀에게 잡혀서 먹힐까? 나뭇가지에 앉아 있다가도 얼른 날아가면 될 텐데…. 선생님이 설명해주셨는지 아니면 내가 혼자 궁리궁리해 본 것인지 또한 기억이 확실치 않지만, 코브라가 새를 쳐다보면서 긴 혓바닥으로 날름거리면 이를 내려다보던 새가 홀리다 못해 혼이 빠져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날아갈 능력이 마비된 채 떨어져 뱀의 밥이 되고 말리라는 풀이로 나는 그 해답을 얻었었다.

 

또 그 후로 6.25 사변을 겪은 뒤, 내가 그 누구의 체험담인지 수기를 읽어보니, 사람이 총살을 당할 때 총알을 맞기도 전에 미리 겁먹고 죽는 수가 있다고 했다. 물론 그렇게 미리 놀라 총소리 듣기도 전에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얼마 후 정신이 들어 살아난 사람도 있었겠지만… 우리말에 ‘토끼가 제 방귀 소리에 놀란다’고 하듯이 내가 아마 서너 살 때 일이었으리라. 두 살 위의 작은 누나하고 연필 한 자루 갖고 ‘내 것이다’ ‘네 것이다’ 싸우다가 마지막에는 약이 오를 대로 오른 내가 ‘사생결단(?)’을 하다못해 너 죽고 나 죽자며 누나의 손등을 연필로 찔렀다. 

 

그러자 연필심이 부러지면서 누나의 살 속에 박혀 버렸다. 그런데도 야단은 누나만 맞았다. 누나가 어린 동생하고 싸웠다며.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연독이 몸에 퍼져 누나가 죽게 되면 순사(일정시대 경찰관)가 와서 나를 잡아갈 것이라는 겁에 새파랗게 질린 나는 순사가 우리 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기 무섭게 나는 미리 죽어버리리라. 그렇게 마음먹고 큰형님이 갖고 계시던 사냥하는 엽총 총알 만드는 납덩어리 하나를 나는 한동안 손에 꼭 쥐고 있었다. 그때 만일 순사인지 아닌지 확인도 안 하고 누가 대문 두드리는 소리만 듣고 내가 그 납덩어리를 꿀꺽 삼켜버렸더라면 나의 삶이 아주 일찍 끝나버렸을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지 않았어도 그 후로 나의 몸에는 흉터가 몇 군데 생겼다. 

 

젊은 날 첫사랑에 실연당하고 동해바다에 투신했다가 다쳐 척추 수술받고 허리에 남게 된 큰 수술 자리 말고도 내 바른쪽 손등과 왼쪽 눈 옆에 흉터가 남아 있다. 눈 옆에 난 흉터는 내가 중학교 시절 예수와 교회에 미쳤을 때 하도 교회 목사님들이 설교로 사람은 다 ‘죄인’이고 매 순간순간 바로 전 순간순간에 생각으로 매순간마다 숨 쉬듯 짓는 ‘죄’를 ‘회개하라’고 하시는 말씀을 문자 그대로 따라 길을 가면서도 수시로 눈을 감고 기도하며 ‘회개하다’가 길가에 있는 전봇대 전주(電柱)를 들이받고 이 전주에 박혀 있던 못에 눈 옆이 찢어져 생긴 것이다. 그 즉시 즉시로 회개하지 않으면 당장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떨어지는’ 줄 알고. 그때 눈 옆이 아니고 눈을 찔렸었더라면 나는 애꾸눈 장님이 되고 말았으리라. 그리고 손등에 난 흉터는 내가 너더댓 살 때였을까 장난이 너무 심하다고 나보다 일곱 살 위의 큰 누나가 나를 혼내주겠다고 앞마당에 있는 장독대 밑 컴컴한 지하실에 가두자 그냥 있다가는 그 지하실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고 죽는 줄 알고 다급하고 절박한 나머지 주먹으로 지하실 유리창 창문을 깨는 바람에 생긴 것이다. 

 

이처럼 사람이나 동물이나 너무 눈앞에 어른거리는 현상에만 집착 현혹되다가는 얼마든지 쉽게 벗어날 수 있는 궁지에서 빠져나오기는커녕 그 수렁에 더 깊이 빠져들어 가는 것 같다. 흔히 여자고 남자고 “기왕에 버린 몸’이라고 ‘될 대로 되라”며 자포자기하는 수가 많지만 어쩌다가 실수로 아니면 신수가 사나워 어떤 불행이 닥치더라도 이를 더 큰 불행을 예방하는 하나의 예방 주사 맞는 액때움으로 삼을 수 있지 않으랴. 좀 짓궂게 얘기해서 가령 네가 너무 웃다가 또는 오래 참다가 오줌을 찔끔 쌌다고 하자. 그렇다고 네가 똥까지 싸고 주저앉아 뭉갤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얼른 씻고 옷을 갈아입으면 될 것을.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릭 입센(1828-1906)이 그의 작품 ‘유령들’에서 하는 말을 우리 함께 음미해 보리라. 

 

“나는 거의 결론적으로 생각한다. 우린 모두 유령들이라고. 유령처럼 우리 앞에 수시로 나타나는 것은 우리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것만이 아니다. 우리 속에 깊이 처박혀 있어 떨쳐버릴 수 없는 갖가지 사장된 생각들과 화석화된 미신의 믿음들이다. 신문 한 장만 들춰 보면 이러한 유령들이 활자 사이로 지나치는 것을 우리는 볼 수 있다. 바닷가 모래사장에 있는 모래알들만큼 많다. 그리고 우리는 너 나 할 것 없이 너무도 유감스럽고 한심스럽게도 밝은 개명천지를 두려워하고 있다.”

 

 

[이태상]

서울대학교 졸업

코리아타임즈 기자

합동통신사 해외부 기자

미국출판사 Prentice-Hall 한국/영국 대표

오랫동안 철학에 몰두하면서

신인류 ‘코스미안’사상 창시

이메일 :1230ts@gmail.com

 

작성 2024.01.13 10:16 수정 2024.01.13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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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30 10:21:54 / 김종현기자